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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시평] 선거판 '정치작물'의 유산 ... 지금도 그 시대인가?

지금으로부터 13년여 전인 2002년 5월26일의 일이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한 목장부지에 언론사 기자들이 몰려 들었다. 그 해는 민선 3기 6·13지방선거가 예정된 때였다.

 

현장에 기자들이 몰려든 이유는 단 하나-. 도지사 선거에 출마, 불꽃 경쟁을 벌이던 두 후보간에 벌어진 논란 때문이었다. A후보가 상대방 B후보를 향해 “지사 재직 시절 피땀 어려 키운 농민들의 감귤을 수매, 땅에 파묻었다”고 주장했고, 애지중지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정서를 자극했다. 두 후보는 사실 모두 지사를 역임한 라이벌이었고 당시 선거는 말 그대로 치열했다.

 

급기야 허위사실 유포 공방전이 벌어졌다. A후보는 신문에 광고로 감귤매립 논쟁의 불을 지피더니 당일 언론사 기자들을 불러 모아 직접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헤치고 파묻힌 감귤을 보여주며 B후보를 공박했다. 물론 현장에서 파묻힌 감귤이 나온 건 맞지만 도무지 어느 지사 재직시절 매립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열매는 공세를 편 쪽에서 따 먹었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도 이 사건은 진실공방이 이어졌고 B후보의 대응과 조사, 추후 증언 등으로 볼 때 결국 B후보완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랬다. 사실 그 진실은 제주정치사를 유심히 들여다 본 이라면 실제 누구(?)의 소행인지 대부분 짐작을 한다.

 

 

어쨌든 “감귤을 파묻었다”고 폭로·비방공세에 나선 A후보는 실컷 재미를 봤다. 결국 그해 지방선거에서 A후보는 당당히 지사로 당선, 재선의 영광을 안았다. 물론 1998년 6·4선거에 이어 두 번이나 A후보와 맞붙은 B후보는 어이 없게도 똑같은 소재인 ‘감귤매립’ 논란으로 두 번이나 두들겨 맞고 나자빠졌다. ‘대학나무’로 불리며 제주를 상징했던 감귤이 ‘정치작목’의 결정판 역할을 한 드라마틱한 역사다.

 

사실 B후보는 선거전에 임하기 전부터 A후보에게 공격을 당할 빌미를 수도 없이 내줬다. B후보의 지사재임 시절 지론은 ‘감귤경쟁력 강화’였고, 그의 생각은 “감귤을 파묻어서라도” 또는 “태평양 바다에 버려서라도”였다. 풍년으로 가격이 하락, 오히려 수입이 뚝 떨어지는 감귤시장의 현실을 직시, 생산량을 줄이고 철저히 고품질 감귤 생산에 주력하자는 취지였다.

 

13년 전 그렇게 당당히 선거에 승리한 A후보는 그 후 한 차례 더 지사를 역임했다. 궁금할 수 있지만 A후보가 누군지, B후보가 누군지를 거명하는 건 그리 중요치 않다. 핵심보다 곁가지에 더 집중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제주사회에선 더 그렇다. 요즘도 달을 보라는데 손가락만 가리키는 이들이 제주사회엔 더 많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이 쯤에서 말하고 싶은 건 따로 있다. 바로 ‘정치작물’이란 점이다. 선거에 이용됐고, 감귤농민의 환심을 사고자 제대로 정책을 펴지 않는 바람에 벌어진 결과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근본적인 구조개혁과 의식전환, 치열한 전투정신으로 중무장하고 시장에서 움직여도 힘 든 판에 오랜 세월 우리 감귤농가들은 단기처방, 단기약발, 쥐꼬리 보상과 지원에 핏대를 세웠다. 또 거기에 만족했다. 그걸 지난 제주도정이 부추겼다.

 

제주도가 15일 지난해 산 감귤유통처리 결과를 발표했다. 69만6천톤을 팔아 6707억원을 벌었다는 뉴스다.

 

1990년대 초만 해도 감귤과 관광은 제주산업의 양대 축이었다. 수입도 관광과 감귤 두 양대 축이 각각 6000억~7000억원으로 비슷했다. 하지만 그 후 감귤은 가격 대폭락 시기엔 연간 3000억원으로 뚝 떨어질 때도 있었다. 지금 연간 제주행 관광객은 1300만명을 넘어선다. 물론 연간 관광 총수입은 5조원을 웃돈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정치작목으로 변질, 지원만 바라는 사이 수입과일이 득세하고 국내에선 딸기가 시장을 잠식, '겨울철 과일'의 대명사였던 감귤은 이미 시장에서 딸기에게 추월당한 지 오래다.

 

“세월호 침몰 및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소비자들의 소비 위축현상도 원인”이라는 제주도정의 일부 분석이 나왔지만 어림 없는 소리다. 그건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볼 멘 소리다.

 

감귤은 지난해만 해도 바나나(35만9000t)·파인애플(7만5000t)·기타(22만2000t) 등 모두 65만6000t의 수입과일이 국내 시장에 쏟아지면서 고품질의 국내 과일(사과·배·딸기) 등의 경쟁에서도 밀렸다.

 

더욱이 개방화로 인해 연중 넘쳐나는 수입과일과 고품질로 무장한 국내 과일과의 경쟁은 더 심해질 상황이다.

 

그런데도 또 황당(?)한 소리가 들린다. 일부 농민들 사이에선 “원희룡 도정이 내놓는 감귤정책을 보니 다음 번 선거에서 표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말까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오랜 세월 감귤문제에 고심한 한 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진작 고품질 감귤생산 체제로 변화하고, 농민들이 치열한 경쟁사회를 경험했더라면 이리 쇠락의 길로 접어들진 않았다. ‘득표놀음’하면서 정치인들이 환심사기를 하는 사이 우리 농민들이 스스로 일어설 힘조차 잃어버렸다.”

 

“오렌지·포도·자몽·체리·망고 등 당도 높은 수입과일이 대형 할인매장에 넘쳐 나는데 우리 감귤상자는, 라벨은, 브랜드는 모두 언제적 것인가? 상자포장 규격은 진정 이게 맞는가? 고작 크기만으로 상품과 비상품을 구분한다는 게 지금의 트렌드인가? 지금껏 열매를 매달아온 바로 그 나무만 그리 고집스레 부여잡고 있어야 하는가?”

 

 

쏟아지는 질문만으로도 제주감귤은 녹록한 현실이 아니다.

 

‘제주의 쌀산업’으로 불렸던 감귤이 진짜배기 ‘육지의 쌀’로 전락할 지경이다. 3만 농가가 2만ha에 매달려 짓고 있는 그 감귤은 이제 ‘대학’은 커녕 몇 푼의 ‘용돈’을 쥐어주기도 어렵게 됐다.

 

104년 전인 1911년 지금 제주농가에게 익숙한 온주감귤(Mandarine Orange)을 제주에 들여온 엄탁가(Esmile J. Taquet) 신부는 살아있다면 뭐라 말할까? 1950년대 말 제주에 그 온주감귤을 대량으로 유입시킨 재일동포들은 지금 어떤 생각일까?

 

선거판 ‘쇼’로 사리사욕만 채우고 정작 미래는 안중에 없는 정치인들은 ‘사기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제주의 ‘오렌지 드림’은 그리 허망하게 무너질 꿈이 아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양성철=제이누리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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