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신문이나 인터넷에 오르는 글을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뜻이 다른 단어를 잘못 쓰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한자를 거의 쓰지 않게 되면서 정확한 뜻을 확인하기보다는 대충 의미만 통하면 된다는 생각에 적당히 쓰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한자를 쓰지 않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본래 지니고 있는 말뜻까지 헷갈려서는 곤란합니다.
1. 곤욕과 곤혹
꽤 많은 사람들이 ‘곤혹’과 ‘곤욕’을 혼동해서 씁니다. 다음 보기들은 각각 무엇을 써야 옳은지 생각해 봅시다.
① 클린턴 후보는 개인 이메일 계정을 사용한 문제로 계속 (곤혹/곤욕)을 치르고 있다.
② 요즘은 젊은 층에서도 허리 통증으로 (곤혹/곤욕)을 겪는 경우가 많다.
③ 오늘 오전 해양수산부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 참가한 한진해운 관계자들이 (곤혹/곤욕)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곤욕(困辱)’은 ‘심한 모욕. 또는 참기 힘든 일’을, ‘곤혹(困惑)’은 ‘곤란한 일을 당하여 당황스러움’을 뜻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정답은 ‘①곤욕/②곤욕/③곤혹’입니다. 간단히 생각해서 ‘겪다’, ‘치르다’, ‘당하다’ 앞에서는 곤욕, ‘~스럽다’에 붙여 쓸 때는 ‘곤혹’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2. 대담과 대범
‘대담’을 쓸 자리에 ‘대범’을 쓰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① ‘대범’한 컬러와 현란한 패턴
② 상가 유리문 깨고 28차례 절도…‘대범’한 도둑
③ 성적조작 공시생, 1차 시험엔 시험지 훔쳐…교직원 사칭까지 ‘대범’
①~③은 최근 여러 신문에 실린 기사의 제목에서 찾아낸 예(마음만 먹으면 하루에도 몇 개씩 찾아낼 수 있습니다)인데, 모두 ‘대담’으로 바꿔 써야 합니다. ‘대범(大汎/大泛)’은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으며 너그러움’을, ‘대담(大膽)’은 ‘담력이 크고 용감함’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도둑에게 ‘너그럽다’고 하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언제부터인가 범죄자들의 대범함을 강조하는 보도를 자주 접하면서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3. 파문과 파장
말 나온 김에 하나만 더 짚어보겠습니다. 요즈음 대부분 신문과 방송에서 ‘파문(波紋)’을 쓸 자리에 ‘파장(波長)’을 쓰고 있습니다. 오히려 바르게 쓰는 경우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이젠 심지어 표준국어대사전에서조차도 ‘파장’을 ‘충격적인 일이 끼치는 영향 또는 그 영향이 미치는 정도나 동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해서 파문 대신 쓰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다른 데에 미치는 영향’을 뜻하는 말은 ‘파문’이지 ‘파장’일 수 없습니다.
① 신문 기사의 파장은 매우 컸다.
② 이번 사건은 사회적ㆍ경제적ㆍ정치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③ 그의 발언은 정가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①~③은 모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예로 든 것인데, 셋 다 ‘파문’이라고 쓰는 것이 옳습니다.
원래 ‘파문’이란 고요한 물에 돌을 던졌을 때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것, 즉, ‘물무늬’를 뜻하고, ‘파장’이란 그 동심원을 이루는 물결의 골과 골 사이의 간격을 뜻합니다. 따라서 ‘멀리 퍼져 나가는 것’은 파문일 뿐 파장이 길고 짧은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일파만파로 점점 퍼져나가는 것을 말할 때는 ‘파장’이 아니라 ‘파문’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당장 내일도 수많은 신문 방송들에서 계속 ‘파문’을 외면하고 ‘파장’을 쓸 것이 확실하기에 씁쓸합니다.
다시 생각해 봅시다. 물에 돌을 던졌을 때 퍼져 나가는 것은 파문인가요, 파장인가요? [김효곤/ 서울 둔촌고등학교 교사]
☞김효곤은?
=연세대 국문과를 나와 35년여 고교 국어교사를 하고 있다. 청년기 교사시절엔 전교조신문(현 교육희망)의 기자생활도 했다. 월간 <우리교육> 기자와 출판부장, <교육희망> 교열부장도 맡았었다. 1989년 이후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주최하는 대학언론 강좌를 비롯해 전국 여러 대학 학보사와 교지 편집위원회, 한겨레문화센터, 여러 신문사 등에서 대학생·기자·일반인을 상대로 우리말과 글쓰기를 강의했다. <전교조신문>, <우리교육>, <독서평설>, <빨간펜> 등 정기간행물에 우리말 바로쓰기, 글쓰기, 논술 강좌 등을 연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