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제주로 밀려오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다. 마치 '문명의 충돌' 기세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동북아 한국과 중국의 인연은 깊고도 오래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과거의 안목으로 종결될 인상이 아니다. <제이누리>가 중국 다시보기에 들어간다. 중국학자들 스스로가 진술한 저서를 정리한다. 그들이 스스로 역사 속 궁금한 것에 대해 해답을 찾아보고 정리한 책들이다. 『역사의 수수께끼』『영향 중국역사의 100사건』등이다.
중국문학, 문화사 전문가인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가 이 <중국, 중국인> 연재 작업을 맡았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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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媽祖, Mazu)는 중국 민간 전설 중의 여신이다. 항해하는 사람들을 평안하게 보우하는 신력을 지녔다고 전한다.
마조는 송나라 때 복건(福建) 보전현(莆田縣)에 살았던 전기적인 인물이다. 후에 영녀(靈女), 용녀(龍女), 신녀(神女)로 존경받고 중국의 ‘해신(海神)’으로 추앙받는다. 이 여신은 어디서 왔는가?
마조는 북송(北宋) 건륭(乾隆) 원년(960) 3월 23일에 임(林) 씨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났다고 전한다. 출생 후 만 한 달이 됐어도 울지 않아 ‘黙(묵)’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녀의 부친 유각(帷慤)은 오대(五代) 민(閩) 때 도순검(都巡檢, 연해 치안 순시를 책임졌던 관원)을 역임했다. 모친 왕(王) 씨는 1남 6녀를 낳았다. 그중 막내가 마조다.
마조는 어릴 적부터 남달리 총명했다고 한다. 8세에 사숙에서 공부했는데 한 번 보고는 모두 외웠다고 한다. 10세 때에 불교를 믿어 향을 피우고 독경을 했는데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했다. 13세 때에 도사 현통(玄通)이 “선골을 갖추고 있기에 응당히 득도(得度)해야 한다”며 ‘현미비법(玄微秘法)’을 전수했다. 16세 때 법 중의 요지를 깨달아 신통력을 얻어 사람들의 병을 치료해주기 시작하면서 ‘통현령녀(通賢靈女)’라는 존칭을 얻었다. 28세, 즉 송나라 옹희(雍熙) 4년(987) 9월 9일 마조는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서 대낮에 승천했다고 한다.
신화 전설 중의 마조는 신비하게 태어나 시집을 가지 않았다. 벼슬아치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배를 잘 몰고 물질을 잘해 위난에 처한 사람을 구원했다. 자비를 가지고 선행, 제세를 자신의 소임으로 삼았다. 그래서 대대손손 연해의 어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마조는 도순검의 여식이 결코 아니고 민간의 무녀(巫女)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역사서나 지방지에 “무축(巫祝)을 행했다”, “리중무(里中巫)이다”라는 기록이 증명한다고 본다. 또 다른 사람들은 정사에서 마조의 부모의 명확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면 마조는 일반 백성의 여식이 신화된 것이라 보기도 한다. 후대 사람들이 신령스러움을 존중해 신의 출신과 혈통을 조화시켜 고귀하게 만들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마조는 나중에 천비(天妃), 천후(天后)에 봉해졌는데 실제로는 수신(水神), 지지(地祗)의 별칭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광대한 신력을 갖추고 있은 것으로 보면 보통의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확실히 있다고 여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주립방(周立方)의 연구에 따르면 마조는 그저 보통 여자일 뿐으로 그녀의 마음씨가 선량하고 남달리 지혜로웠으며 몸을 바쳐 남을 구하고 선행을 베풀었으며 무사 봉헌하는 고귀한 성품을 갖추고 있어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을 뿐이라고 했다.
보자. 봉건 통치의 잔혹한 억압 아래 사회의 동란으로 인해 어찌할 수 없는 처지의 백성들의 불안 심리에 의해 마조의 전설은 점차 미화되고 신화화됐으며 ; 흥화(興化, 보전莆田) 지역의 문화 발달과 송대의 도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문화적 배경과 ; 거기에다 복주(福州), 천주(泉州) 사이의 미주(湄州) 도서가 해상의 요충지가 된 사회적 환경 등 ; 여러 문화적 배경 아래 해난사고를 구조하고 위난을 당한 사람을 구해내는 ‘해신(海神)’인 마조가 탄생했다고 본다면 그리 이해하기 힘든 것도 아니다.
더 나아가 송나라 때 천주, 보전 지역은 해상 무역이 발달했다. 해상 항해는 늘 위험이 뒤따른다. 마조 신앙은 바로 사람들이 신령의 보호를 구하는 심리의 요구에 의해서 생겨났고 뒤이어 마조가 해상 항해의 보호신이 됐다.
다른 쪽으로 보면 송나라 때에는 도교가 우위를 점했다. 도교 중의 음양학설은 “하늘은 양에 속하고 땅은 음에 속하니 물이 땅에 있기에 음에 속한다.” 또 “남자는 양에 속하고 여자는 음에 속하니 수신(水神)은 응당히 여성이 돼야 합당하다”고 한다. 이런 음양학설의 영향 아래 해난 사고를 구조하는 마조가 사람들에 의해 물의 신, 바다의 신으로 모시게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이외에 송나라 조정은 민간신앙을 순순히 따르면서 봉건 미신의 ‘마취제’를 보급해 백성을 통치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원래 보전 지역의 연해에 있던 신앙인 마조를 공개적으로 신과 같은 존재로 봉하고 확대시켜 나갔다. 특히 북송(北宋) 선화(宣和) 4년(1122) 노윤적(路允迪)이 고려에 사신으로 갔다 오다가 광풍을 만났으면서도 혼자 안전하게 돌아온 일이 있었다. 선원 이진(李振)이 ‘미주여신湄州女神’이 신통력을 발휘해 보우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조정에 보고했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마조를 모신 순제묘(順濟廟)에 편액을 내리고 공개적으로 마조를 승인하면서 널리 확대했다. 이후 점차 전국적인 신앙이 된 것이고.
조정에서 확대시키고 관원들과 부호들이 땅을 헌납해 묘(廟)를 지은 것 이외에 선원, 어민, 해상 무역상들도 마조 신앙 전파에 중대한 작용을 했다. 과학이 그리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 사람들은 신령에게 의탁하고 기도했다. 이미 마조는 공인된 해신이었기에 선원, 어민, 해상 무역상들이 이르는 곳마다 마조 묘를 세웠고 그에 따라 마조 신앙은 광범위하게 전파됐다. 예를 들어 원나라 태정(泰定) 3년(1326)에 처음 세워진 천진(天津) 천비궁(天妃宮)은 나중에 중국 3대 천후궁의 하나가 됐다.
명(明)나라 이후 마조 신앙은 중국 연해 지역으로 전파됐으며 심지어 해외 각지에 전파됐다. 미국의 서태평양의 호놀룰루, 샌프란시스코에도 마조 묘가 있을 정도다. 정화(鄭和)의 원정과 정성공(鄭成功)의 대만(臺灣) 합병 등 해양세력 확대에 따라 마조의 신도인 선원들이 각지에 퍼지면서 마조 신앙이 전파되는 매개체가 됐다. 이외에 대만 상인들은 자신들이 거둔 성공은 해신인 마조가 보우한 결과로 여겨 가는 곳마다 천후궁을 지었다. 이는 점차 풍조가 돼 묘가 많아졌으며 더더욱 화려하게 장식됐다.
사실 마조가 중국의 해신이 되고 신속하게 보급된 결정적인 것은 봉건 왕조의 추숭과 상층 계급의 찬양에 의한 것이다. 바로 대만 학자 임명욕(林明峪)이 “그렇게 제왕들이 존숭하고 아랫사람들이 따라한 결과 마조의 신앙 범위는 더더욱 확대됐고 참배해야 하는 분위기가 광대하게 형성됐다.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된 현상이 이루어 진 것은 실제 제왕들이 선도했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이 맞다.
마조 신앙이 탄생한 송나라 때부터 원(元), 명(明), 청(淸) 왕조의 역대 제왕들이 여러 차례에 걸쳐 추숭했다. 마조는 ‘부인(夫人)’, ‘천비(天妃)’, ‘천후(天后)’에서 ‘천상성모(天上聖母)’로 극상 했고 국가 제사가 됐다. 예를 들어 남송 왕조 때 마조의 존호를 추숭한 기록은 14차례나 된다. 봉건 통치자들이 적극적으로 추숭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처럼 광범위하게 전파될 수 있었겠는가?
해외로 나간 화교(華僑)도 마조 신앙이 해외로 전파되게 만든 매개체다. 다 아는 바대로 복건(福建) 화교들은 외국을 다니면서 무역으로 생계를 도모했다. 먼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다. 해상 활동의 순조롭기를 기도하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신령의 보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하다. 기도하면서 심리적 안위를 찾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마음이었을 것이고. 그렇게 마조는 자연스레 그들 항해의 보호신이 됐다.
그리고 화교들이 치부한 후에는 마조에게 감사를 드리며 묘를 세우고 마조에게 제사를 지냈다. 특히 명청(明淸) 이후 중국 연해에 많은 마조의 묘당이 세워졌다. 또 화교들은 사자가 되어 마조 신앙을 무형 중에 해외로 전파했다. 그렇게 마조는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중국 해신의 상징이 됐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명나라 말기 보전 사람 임북산(林北山)이 미주에 있는 마조 묘당의 신상을 일본 가고시마로 옮겨 안치했다고 한다. 대만도 임 씨 사당 옆에 500여 좌의 마조 묘당을 건립했다. 그리고 말레시아의 35개 천후궁에는 지금도 향불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1985년 준공된 쿠알라룸푸르 천후궁은 화려하기 그지없어 말레시아 건축물 중 최고를 자랑한다고 한다. 심지어 최근 몇 년 사이 대만, 마카오 화교들은 천리를 마다지 않고 미주(湄州)로 건너가 향을 올리고 관광을 하면서 다시금 ‘마조 붐’을 불러 일으켰다.
이렇게 대만, 일본, 그리고 동남아로 이주한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전파하면서 마조 신앙은 정점에 이르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