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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복시환(福市丸)사건 ... 모리배, 관리, 미 군정청이 연루된 밀수입 비리

 

해방 후 현재에 있어 제주지역의 가장 큰 문제는 밀수입, 해방 후 수입된 물품은 실로 4억에 이른다. 경찰당국에서는 근래 이를 근절시키고자 힘쓰고 있으며 얼마 전에도 700만원 어치를 실은 밀선을 체포. 그러나 주민의 말을 들으면 제주도에 들어오는 물자는 간상배의 활동이라기보다는 일본을 위시한 각지에서 돌아오는 동포들의 물건이 태반. 수십년간 고혈을 기울여 저축한 재산을 그대로 버릴 수 없는 재일동포들은 할일 없이 물건을 사가지고 외국관헌의 눈을 속여 가며 본국을 찾아 우선 제주도로 들어오는 것. 현재 법령이 그들의 재산반입을 아직 인정하지 않은 이때에 그들이 이와 같은 밀수입을 하게 됨은 막을 도리가 없는 일이다(자유신문 1946년 12월 19일).

 

해방 이후 제주지역 경제는 일본과의 ‘단절’로 인해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 이로 인해 사회전체의 생산활동이 마비되고 생활필수품 품귀현상이 심화되자 이를 타개하려는 긴급대책으로 해외로부터 물자 도입이 시도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과의 ‘무허가(無許可) 사무역(私貿易)’ 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즉, 국내 물자가 부족하고 가격이 폭등하자 소형발동선을 타고 일본을 왕래하며 물자를 조달하려는 밀무역(密貿易)이 성행하게 된 것이다.

 

제주도가 일본으로부터 밀수입의 근거지이며 더욱 근간에는 7,000만원의 물자가 들어왔다는 설에 대하여 군정청 공보부에서는 20일 다음과 같이 그 사실을 부정. “제주도에는 일본 대판 재류동포가 많아서 약간 그 재산을 가지고 오는 일은 있으나 이것은 당국으로부터 묵인되고 있다. 그러나 다량의 물품은 엄금하고 있으며 경찰당국은 철저한 감시를 하고 있으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대동신문 1947년 1월 21일).

 

일본과의 밀항 중심지인 제주도에는 일본제품 중 특히 양단 모본단 등 직물을 위시하여 유리 설탕 기계부품 약 등 각종 물자가 밀수입되어 있다 한다. 일본제품을 매입하려는 모리상인들이 경성, 인천, 목포 등 각지로부터 몰려들며 밀무역 경기가 흥성하다고 한다(서울신문 1947년 1월 25일).

 

일본으로부터 밀수물자가 대량유입 돼 남선일대에서 모리배가 속속 제주도로 운집, 화폐팽창에 따른 경제적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제주신보 1948년 2월 2일).

 

이처럼 해방 직후 제주도는 대일(對日) 밀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는 원래 재외동포들이 해방이 되면서 그들의 재산을 고향에 반입하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다가 점차 한국 내 시장에서의 물품부족, 그에 따른 양국 간의 가격 차이를 노리는 상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확대되었던 것으로 보아진다.

 

이 당시 시장에서 거래가 활발했던 상품을 보면, 피복류, 문방구, 화장품, 아루마이트 제품, 의약품(특히 마약), 당구스텡선, 고무신 등으로 가격은 대부분 고가이고 부피가 작고 밀수(密輸)에 용의한 것들이 많았다.

 

 

이러한 밀무역 과정을 살펴보면, 해방 후 일시적으로 무궁화 지폐가 통용되어 그 지폐가 밀수입금의 대가로 도내는 물론 목포, 부산 등지 연안에서 재일(在日) 하주(荷主) 명의로 하여 예금증서 또는 토지 건물 등 부동산을 매수한 증서를 하주에 교부하고 상품과 교환했다.

 

이로 인해 제주읍내 주택은 서울보다 고가였으며, 농경지도 밭은 평당 최고 오백원, 논은 천원에 거래되었다. 일본으로부터 상품 도착 당시 상품은 제주도민들은 전혀 알 수 없고 중간 브로커를 겸영(兼營)하는 일부 여관주인만이 알았다. 도매상 거래는 항시 브로커를 경유해야 가능하고 브로커는 매주(買主)와 매주(賣主) 양쪽에서 이중으로 수수료를 챙겼다.

 

일본 상품 반입자와 도매상인은 보통 수인(受人), 수신인(受信人)이 합자(合資)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위험 분산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한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은 일본을 내왕하는 밀수업자 중에 여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이는 검거되었을 때 인정에 호소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에서의 밀수입은 소형 선박 한척에 시가 약 칠백만원의 물자를 적재하였다고 한다. 1946년 말 현재 일본에 억류된 선박이 삼백 척에 달하였는데 이에 기준하여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21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상에서 보면 당시 제주도는 일본과 목포나 부산, 서울 등지를 연결하는 중간지로 각광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제6단 보고에 따르면 1월 2일 -17일 사이에 미구축함 1척이 한국해역에서 불법으로 수하물을 선적한 소형 선박 5척을 억류했다. 억류된 물건은 쌀, 면화, 가솔린, 비단 등이 대부분이다. 이 선박들은 제주도나 목포로 가기 위한 것이다”(제주도의회, 2001, 제주 4.3 자료집-미군정 보고서).

 

“일본으로 한번 밀수해 성공만 하면 그 이익은 아주 엄청납니다. 억류되어 배와 짐이 몰수 되더라도 손해보다는 이익이 큽니다.”(편지날자, 1946년 12월 31일)(제주도의회, 2001, 제주 4.3 자료집-미군정 보고서).

 

"이것은 해안경비대의 몇몇 대원들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한 보고입니다“
“제주도에 거주하는 장이라는 사람이 다음과 같은 보고를 했다. 부산연안을 순시하는 해안경비대의 몇몇 부정직한 대원들은 상품을 싣고 일본에서 돌아오는 모리배의 밀수선을 탐지하면, 자주 물건을 매점하기도 하고 그들과 같이 밀수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보통 상당량의 뇌물을 받았을 경우, 그들은 밀수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눈감아 버린다”(제주도의회, 2001, 제주 4.3 자료집-미군정 보고서).

 

당시 밀무역은 해방 직후 암울했던 사회․경제적 구조 하에서 생겨난 왜곡된 무역의 하나로 위험에 비해 이익이 많아 이에 참가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미군정청(美軍政廳)은 밀수선이 늘어나자 밀수선 단속에 주력하였다.

 

그 당시 단속에 나선 기관들은 경찰, 세관, 해안경비대, 항무서, 물가감찰서 등이었고 나중에는 서청(西靑)도 참여했다. 심지어 일제강점기 순사 출신들을 미군정 경찰로 둔갑시켜 밀수품 단속에 나선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경찰이나 관리가 개입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그들 가운데는 모리배들과 결탁하여 밀수선을 적발할 경우, 뒷거래로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는 경우도 만연했다.

 

해방 이후 제주는 일부 비애국적인 모리배들이 대일 밀수출입의 기지로 화하여 가지가지의 죄악의 씨를 뿌리고 있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모리배를 취체 방지할 책무를 지닌 감독관청의 책임자까지 모리배와 부동이 되어 범죄를 조장...(경향신문 1947년 2월 5일).

 

이러한 행각으로 미군정 관리, 경찰, 나중에는 서청 등에 대한 도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당시 제주지역 밀무역에 경찰이나 서북청년단들이 사익을 갈취할 목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많아 그로 인해 제주도민들의 민원과 불만이 많았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제주도민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악화시켰던 경우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사건이 ‘복시환사건(福市丸事件)’이다.1947년 1월 11일 일본 대판의 법환리(法還里) 출신 건친회(建親會)에서 고향에 보내는 전기 자재와 주민 학생들에게 줄 주단, 광목, 고무신, 학용품을 싣고 오던 복시환이 밀수선을 단속 중이던 해안경비대에 나포되었던 사건이다.

 

이 배는 목포항으로 회항하다 잠시 산지항에 잠시 기항하였는데 그 사이 일부 모리배가 화주를 회유해 배에 있던 물자를 빼돌린 것이다.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들 모리배와 결탁한 미군정청과 경찰 간부들이 이들을 공공연히 비호하고 화주를 협박한 것이 밝혀져 사회적 문제로 불거졌다. 이 사건은 당시 제주사회에 만연했던 모리배, 관리, 미 군정청이 연루된 밀수입 비리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복시환사건은 관련 경찰의 비리가 신문지상에 열린 보도되면서 전국적인 파문을 일으켰는데, 중앙조사반의 현지조사 결과 미군정 고위관리들이 모리배들과 결탁, 비리를 저질러 온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의 여파로 감찰청장이 파면되었고 제주도 미군 군정장관이 교체되었다. 또한 이 사건으로 미군정청과 경찰에 대한 제주도민의 불신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제주대 사범대를 나왔으나 교단에 서지 않고 동국대에서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2011) 학위를 받았다. 제주도 경제특보에 이어 지금은 지역산업육성 및 기업지원 전담기관인 제주테크노파크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겸임교수로 대학, 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등이 있으며『문화콘텐츠기술과 제주관광산업의 융복합화연구』(2010),『제주형 첨단제조업 발굴 및 산업별 육성전략연구』(2013),『제주자원기반 융복합산업화 기획연구』(2011) 등 보고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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