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의 4분의 3이 바닷물 높이보다 낮은 나라, 지하자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나라가 ‘네덜란드’다. 국토가 넓지도 않으며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17세기 네덜란드는 유럽 최강국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성공 뒤에는 나쁜 조건을 기회로 바꾸는 지혜가 있었다.
소빙기로 날씨가 추워지자 해수온도가 낮아지면서 청어 어장이 아이슬란드 해역에서 북대서양으로 남하했다. 다른 나라는 폭풍이 잦아지고 날씨가 나빠지자 청어잡이 어선을 줄였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대규모 선단으로 고기잡이에 나섰다. 유럽의 다른 모든 나라가 잡은 고기보다 네덜란드가 잡은 청어가 훨씬 많았다. 청어는 훈제하거나 소금에 절여 전 유럽에 팔렸다.
‘네덜란드의 금광’이라고 불릴 정도로 청어는 네덜란드의 엄청난 부를 가져다 줬다. 이들의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는 미힐 드 로이테르(Michiel De Ruyter)의 해상전술에서도 잘 나타난다.
네덜란드 함대사령관이었던 로이테르는 적이 예측하기 어려운 창의적인 장군이었다. 그는 해전에서의 풍상측(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전함의 경우 바람을 등지고 싸울 수 있는 곳을 풍상측, 반대로 바람을 가슴에 안고 싸우는 쪽을 풍하측이라 부름)의 이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를 이용했다.
범선이 전함으로 사용되던 당시에 풍향은 승패에 많은 영향을 줬다. 풍상측 전함이 갖고 있는 이점은 전투를 마음대로 계속하거나 중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풍상측은 공격방법을 선택하거나 공세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장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진형을 불규칙하게 만들어버리거나 적의 포사격에 노출되기 쉽고 공격하는 쪽의 포화를 손실할 확률이 높다는 단점도 있다.
이에 반해 풍하측 전함은 적을 공격할 수 없다. 적이 선택한 조건에서 방어적인 태도만을 취해 전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함대의 전형 유지가 비교적 쉽다는 점과 적의 응사가 멈췄을 때 집중사격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당시 영국과 네덜란드 해군은 풍상측을 이용해 공격하는 전술을 즐겨 사용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사령관 로이테르의 뛰어난 점은 반드시 풍상측만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전쟁의 흐름에서 오히려 풍상측의 이점을 버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풍하측으로 위치를 바꿔 전투를 벌였다.
한편 지난 1672년 영국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네덜란드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것이 바로 ‘제3차 영국-네덜란드 전쟁’이다. 당시 네덜란드 함대는 91척이었고 영국-프랑스 동맹군의 전함은 101척이었다.
네덜란드의 로이테르는 전함을 이끌고 도버 해협의 해상으로 나갔다. 하지만 남서풍이 불어 동맹군 함대와 맞서 싸우기 불리해지자 작전상 후퇴해야만 했다. 함대를 이끌며 네덜란드 해안으로 돌아갔다.
영국-프랑스 동맹군 함대는 네덜란드 전함들을 추적하지 않고 영국 동쪽 해안에 있는 사우스올드(southwold) 부근 솔베이(solebay)만 쪽으로 들어갔다. 네덜란드 해안으로 돌아가던 로이테르는 바람이 동풍으로 바뀌자 전 함대를 영국쪽으로 돌렸다.
영국-프랑스 동맹군 함대는 그 누구도 네덜란드 해군이 공격해 오리라 생각지 못했고, 동맹군의 많은 장병들이 급수와 휴식을 위해 상륙한 상태였다. 감시가 소홀했던 틈을 타 로이테르가 이끄는 네덜란드 전함들이 들이닥쳤다. 퇴각하는 척 하면서 방향을 바꿔 영국-프랑스 동맹군 함대를 기습한 것이다.
당시 네덜란드는 평상시 네덜란드 해안에 있는 위험한 해안과 여울을 전략적으로 이용한다는 작전을 수립했다. 대양으로 나가 건곤일척의 해전을 치르는 것은 가급적 피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해상 작전이 소극적으로 수행됐다. 네덜란드는 이러한 전술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의 강국들과 전쟁을 치르는 동안 국가 재정은 매우 어려워졌고 전함의 손실을 빨리 보충할 수도 없었다. 또 인구가 적어 해군병사들의 모집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방어와 공격작전으로 전쟁을 수행했다. 바람이 영국-프랑스 동맹군 함대에 유리한 경우, 로이테르는 해안에 있는 섬들 사이에 머물거나 적어도 적이 쉽게 추격해올 수 없는 장소에 머물렀다.
하지만 바람이 네덜란드에 유리하게 불어올 때는 방향을 바꿔 적을 공격했다. 이것이 바로 솔베이 해전의 승리를 ‘로이테르의 승리’라고 부르는 이유다.
단 한명의 뛰어난 리더만 있어도 그 나라는 행복하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조선의 마지막 희망이었으며 국민의 자랑스러운 영웅으로 현재 남았다.
강대국 틈 사이에서 쇠락해가는 네덜란드의 마지막 희망은 바로 ‘로이테르 제독’이었다. 그는 지금도 네덜란드 인의 커다란 자랑이다. <온케이웨더>
☞반기성은?
=충북 충주출생. 연세대 천문기상학과를 나와 공군 기상장교로 입대, 30년간 기상예보장교 생활을 했다. 군기상부대인 공군73기상전대장을 역임하고 공군 예비역대령으로 전역했다. ‘야전 기상의 전설’로 불릴 정도로 기상예보에 탁월한 독보적 존재였다. 한국기상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군에서 전역 후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위원을 맡아 연세대 대기과학과에서 항공기상학, 대기분석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기상종합솔루션회사인 케이웨더에서 예보센터장, 기상사업본부장, 기후산업연구소장 등도 맡아 일하고 있다. 국방부 기후연구위원, 기상청 정책자문위원과 삼성경제연구소, 조선일보, 국방일보, 스포츠서울 및 제이누리의 날씨 전문위원이다. 기상예보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표창,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날씨를 바꾼 어메이징 세계사>외 12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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