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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여행 (15)]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영웅이 아니라 생명을 지키는 영웅

 

세계적인 역사학자 배리 스트라우스(Barry Strauss)는 미 육군 계간지 2005년 여름호에 ‘한국의 전설적인 장군(Korea's Legendary Admiral)’이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 기사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한 사람(풍신수길)은 역사에 자기 자리를 새겨넣었다. 다른 한 사람(이순신)은 잘 알려지지 않은 수군 장수였다. 그는 시련 많은 경력을 느리게 통과해서, 조선의 한 지방 해안을 담당하는 단순한 사령관이 됐다.

 

한 사람은 ‘오락관저(Mansion of Pleasure)’라고 불리는 자신의 호화로운 관저에서 일본의 국왕을 접대했다. 다른 한 사람은 군대의 밥을 짓는 세부기술을 손봤다. 한 사람은 거대한 육해군 침략을 시작했다. 다른 한 사람은 전쟁이 시작됐을 때 수하에 단 24척의 전선이 있었다.

 

한 사람은 신 같은 초연함으로 뒤에서 전략을 계획했지만, 다른 한 사람은 그의 어깨에 적탄을 맞을 만큼 부하들의 위험을 충분히 함께 나눴다. 하지만 초라한 지휘관은 섭정을 이겼고, 쉽게 따돌렸으며, 결국 왕국의 진로가 바뀌었다. 그 한국 제독의 이름은 이순신이다.

 

임진왜란은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습니다. 일본이 동원한 군사만 30만이 넘는 총력전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국력은 조선의 네배 이상이었습니다. 그런 일본의 국가 최고지도자가 100년 내전으로 발달한 전쟁기술·장비·전투원을 총동원했습니다.

 

그에 비해 조선은 시작부터 문치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였습니다. 특히 건국 후 200년 동안이나 평화가 이어졌습니다. 나름의 군대가 있었지만 육군 중심의 체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조선의 해군이, 총사령관도 아니고 지역의 제독 정도인 지휘관이 일본의 국력이 총동원된 공격을 막아내야 했습니다. 이보다 열악한 환경을 극복한 승리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습니다. 이순신은 위대한 승리의 주인공임에도 오랫동안 변방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가 역사의 중심이 된 것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였습니다.

 

방어전의 전쟁 영웅

 

이순신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영웅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영웅이었습니다. 이순신은 침략전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키기 위한 전쟁, 방어를 위한 전쟁을 했을 뿐입니다. 임진왜란과 함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이순신은 임진왜란의 종결과 함께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순신이 탁월한 전략가는 몰라도 성웅(聖雄)은 아니었다고 주장합니다. 여느 지휘관처럼 군법의 범위 내에서 조선 사람을 참하고, 교묘한 계략을 동원했으며, 적을 붙잡아 효수(梟首)한 일도 많고, 동료 지휘관과 군공을 다퉜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본사 제휴 The Scoop=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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