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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중의 [프로빈셜 홀(Provincial Hall)(8)] 천태만상 조배죽.잠 안 재우기 고문

 

김철수는 망가진 몸을 회복하고자 강하게 처방을 받은 일주일치 약 봉지 중에서 마지막 한 봉지를 입에다 털어 넣었다. 조배죽들의 눈치를 보아가며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약을 먹어야 하는 성가신 일이었다. 약을 먹는 일을 멈추어 버렸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기 시작하고 왼쪽 눈의 시력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프로빈스에는 조배죽과 조배죽이 되고자 하는 자들, 조배죽의 똘마니들로 득실대고 있었다. 돌아서면 함정, 다시 돌아서면 지뢰밭이다. 피할 길이 없다. 조배죽들은 독특한 방법으로 반대파들을 괴롭히면서 충성심을 과시하려 들었다. 총독이 헤아려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충성 경쟁은 천태만상이다.

 

변태 사무관

 

우변태(禹變態)는 저녁에 술을 한잔 걸치고 한량같이 어슬렁거리면서 여기저기 사무실을 배회했다. 야근하는 직원 중에 만만하다 싶으면 뒤로 돌아가서 검지 손가락으로 직원의 귓구멍에 질러 넣어 돌리는 버릇이 있다.

 

짜증내며 돌아다보면 우변태는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개기름을 질질 흘리고 있다. 악수 할 때는 손가락으로 상대편의 손바닥을 긁어 대기도 하고 남자 직원의 엉덩이를 주무르기도 하면서 쾌감을 느끼곤 했었다. 손버릇을 보아하니 성도착 증세가 심한 것 같다.

 

우변태가 김철수의 뒤로 조용히 다가가 손가락을 귀에 넣으려 하자 김철수가 손가락을 낚아채서 비틀어 버렸다. 멱살을 잡아 밀쳐 사무실 밖으로 내쳐 버렸다. 우변태는 거꾸로 화를 내면서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너는 왜 반항하냐? 두고 보자‼”고 투덜대면서 삐졌다. 자신은 지배세력인데 피지배자가 감히 저항을 하느냐는 뜻이다.

 

미국의 유명한 성희롱 사건 판결에서 피해자는 “성희롱은 권력의 문제입니다”라고 증언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권력은 모두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는 자들의 문제다.

 

우변태는 불쑥 “이 ⅩⅩ, 걸리기만 해봐라. 죽여 부켜(버리겠어)”라고 내뱉었다. 김철수가 “그래 죽여 봐라‼”하면서 다시 멱살을 잡을 기세로 덤벼들자 우물쭈물 내빼 버렸다. 우변태는 김철수를 혼내 주었다고 자랑삼아 어디론가 보고하면서 충성심을 과시하려 들 것이다.

 

따라쟁이 사무관

 

김철수는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벌써 두달 째다. 하루도 빠짐없이 주말과 공휴일을 포함해서 매일 새벽 네시까지 버텨야 했다. 천정이 빙빙 돌아가고 구역질이 올라왔다. 급한 일이나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정상적인 사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잠을 안 재우는 고문이 진행되고 있었다. 군 특수부대에서도 잠을 재우지 않는 특별한 훈련을 시키기는 하지만 일주일 정도다.

 

우명구(㬂熐佝)는 자칭 외자유치전문가가 만든 투자의향서로 공을 세우려 들었는지 두 장짜리 서류를 만들어 냈다. 컴퓨터로 자신만이 아는 글을 만들어 프린트를 해서 까만 점이 생기자 면도칼로 긁어 지우개로 지우더니 먼지를 훅훅 불어댔다. 이를 다시 복사했다. 또다시 칼로 긁고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불어댔다. 하루 종일 이 짓거리를 반복하면서 밤을 새워 다음날 아침까지 서류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만족하지 못했다.

 

아침부터 이 짓거리를 하다가 싫증이 났는지 김철수에게 이 짓을 지시했다. 낮에는 사우나에 잠을 자러 갔는지 자리를 비웠다가 저녁에 들어와서는 이 짓거리를 하는 것을 감독했다.

 

새벽 2시경 사무실로 들어와서 다그쳤다. “생산적으로 하란 말이야‼”

 

“이 짓거리가 생산적이라는 겁니까?” 따져 물었다.

 

“이 짓이라니? 건방지게‼ 총독이 옛날에 중앙에 근무할 적에도 이렇게 했다.”

 

“총독이 이런 짓거리를 매일 새벽까지 반복했다는 겁니까? 그런데 도대체 이게 공문서를 만드는 일입니까? 이게 일하는 겁니까?”라고 대들었다.

 

“하라면 할 일이지 말이 많아. 야밤에라도 총독이 들리면 바로 보고해야 되는 거다.”

 

일도 아닌 일을 만들어가며 매일 심야에 근무하는 모습으로 충성심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대단한 지혜를 가르치려 들었다. 우명구는 “엠오유(MOU)를 가져 와라”고 짜증을 부렸다.

 

“엠오유가 어디 있습니까?”

 

“투자의향서도 몰라?”

 

“투자의향서는 엠오유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럼 뭔데?”

 

“엠오유는 양해각서(MOU, Memorandum of Understanding)를 말하는 것이고, 투자의향서는 엘오아이(LOI, Letter of Intent)라 합니다.”

 

“전문가들(자칭 외자유치 전문가들)이 엠오유 엠오유 하는데 그건 뭐야?”

 

“그 자들이 제 멋대로 쓰는 겁니다.”

 

“아는 척 하지 말고 그거나 제대로 하란 말이야‼”

 

우명구는 자신의 무식함을 덮으려 김철수에게 윽박질렀다. 하는 수 없이 다시 프린트 하고 칼로 긁고 지우개로 지워서 훅훅 불어 찌꺼기를 날리고 다시 복사해서 이 짓을 밤을 새워 반복하고 반복했다. 그러나 우명구는 복사할 때 생기는 바늘구멍만한 검은 점을 용납하질 않았다. 이 두장 짜리 서류 다듬는 짓거리는 두달 동안 계속되었다.

 

그 사이에 한 번도 총독이 들리지 않았고 두장 짜리 서류는 휴지통으로 갔다. 김철수는 이미 몸이 난도질 당하여 회복할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새벽에 사무실을 나서다가 심한 현기증으로 주저앉아 구급차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몇 일 후 출근한 김철수에게 우명구가 다시 시비를 걸어왔다.

 

“외국 갔다 오면 다야?”

 

“죄송합니다. 잘못 했습니다.”

 

김철수가 해외연수를 다녀 온 이유는 조배죽들의 증오를 불러 일으키면서 반대파라는 낙인이 찍히고 미운털이 깊이 박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조배죽들의 시비는 '사표를 내라'는 압박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만약에 영영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였다면 우명구는 총독에게 조르르 꽁지가 빠지게 달려가서 “밤 새워 일하다가 쓰러졌습니다” 아니면 “반대파를 제거 했습니다”라고 충성심을 과시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충성심이 가상하다”는 칭찬을 받게 된다. 직원을 희생시킨 대가로 간신배들이 쓰는 전형적인 수법이 돋보였다. 그럼에도 김철수는 다시 일어섰으나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끝이 아니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시중은? = 제주특별자치도의 사무관으로 장기간 근무하다가 은퇴하였다. 근무 기간 중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캘리포니아 웨스턴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최근에는 제주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는 제이누리 객원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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