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기준금리가 16일 역대 최저인 연 1.25%로 되돌아갔다. 그만큼 경기하강이 심상치 않음이다. 기준금리를 낮춘 한은은 물론 국내외 기관들이 잇따라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끌어내렸다. 올해 성장률이 정부 목표(2.4~2.5%)는커녕 2%도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런 판에 물가상승률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서 ‘D(디플레이션)의 공포’도 커지고 있다.
문제는 지금이 바닥이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대내외 경제여건이 언제 폭풍을 몰고 올지 모른다. 미중 무역분쟁이 ‘스몰딜’ 합의를 이뤘다지만 여전히 불확실하고, 독일 등 유럽국가들의 경기도 침체 상태다. 국내적으론 투자와 소비가 동반 부진한 경제적 요인 외에도 한일 갈등과 조국 사태로 인한 정치 불안정, 급속한 고령화 등 경제외적 문제가 산적해 있다.
시장에서는 조만간 추가 금리인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내년 1분기에 기준금리가 연 1.0%를 찍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러다간 한국 경제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0%대 금리 시대’에 직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경우 한국보다 금리가 낮은 국가는 스위스(-0.75%), 일본(-0.1%), 유럽연합(0 %), 영국ㆍ호주(각 0.75%) 정도만 남는다.
문제는 저금리 정책이 지닌 한계와 부작용이다. 10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부작용을 염려한 ‘동결’ 의견이 2명이었다. 시중 부동자금이 100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이미 충분히 완화적인 상황에서 1%대 금리를 0.25%포인트씩 조정하는 것이 효과를 내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만 해도 4개월 새 5.25%에서 총 3.25%포인트 대폭 낮췄다. 그러나 2015년 연 1%대 기준금리가 자리 잡은 뒤에는 10년 전만큼의 효과를 내기 어려워졌다.
금리인하가 경기를 살린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세월호 사고 여파로 내수가 냉각된 2014년 한은은 8월과 10월 기준금리를 0.5%포인트(2.50→2.00%) 인하했다. 그 뒤 나온 한은의 성장률 전망이 3.5%였는데 결과는 3.3%에 그쳤다.
이자가 낮아져도 돈이 돌지 않는 유동성 함정도 경계 대상이다. 은행 정기예금 잔액이 10분기 연속 증가하는 등 화폐유통 속도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자칫 집값 상승을 부추기고 가계부채를 불어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준금리 인하 이튿날 문재인 대통령이 긴급 경제장관회의를 소집했다. 문 대통령이 경제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한 것은 지난해 12월 이후 10개월 만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미국 출장으로 국내에 없는데도 하루 전 일정이 확정될 만큼 급히 추진됐다. 불과 나흘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한국 경제가 선방하고 있다”고 강변한 것과 다른 분위기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이 15일 한국 성장률 전망을 0.6%포인트나 하향 조정(2.6%→2.0%)한 데 자극을 받은 것 같다.
문 대통령은 회의에서 ‘투자’를 10번 언급한 반면 양극화 등 소득주도 성장 관련 어휘는 거론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재정지출 확대에 이어 이례적으로 건설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필요한 건설투자로 서민 주거 공급(3기 신도시)과 수도권 광역교통망(GTX)을 꼽았다. 두달 넘게 국정을 블랙홀에 빠뜨린 ‘조국 사태’의 출구를 찾는 한편, 내년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표심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된다.
요컨대 사상 최저 수준 금리에도 돈은 투자와 소비로 돌지 않고, 되레 부동산 불안 심리를 자극할 우려가 적지 않다. 이런 판에 정부가 내세운 핵심 대책이 재정 확대와 건설경기 부양이라니 답답하다.
확장 재정은 일정 부분 경기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지만, 불황 속 세금이 정부 예상보다 덜 걷히는 상황에서 재정지출을 마냥 확대할 수 없다. 건설경기 부양책은 야당에서 총선용이라며 반발해 정치판을 더 시끄럽게 만들고, 장기적으로 경제에 독이 될 수도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
투자와 소비가 부진해 경기가 침체한 데는 대내외 경제여건 외에도 충분한 검증과 준비 없이 급격하게 획일적으로 강행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요인이 적지 않다. 4차 산업혁명으로 연결되는 신산업 태동이 더딘 것은 얽히고설킨 규제를 방치하는 정부와 국회 책임이다.
기업 현장에서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는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등 소득주도 성장 핵심 정책에 대한 방향과 속도 조절,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구닥다리 규제혁파도 긴요하다. 절체절명의 과제는 놓아둔 채 대통령이 아무리 장관회의에서 “경제와 민생에 힘을 모으자”고 해도 공허할 뿐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