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명절로 기록될 판이다. 추석 연휴가 낀 9월 마지막 주 월요일 28일부터 10월 11일까지 2주는 코로나19 특별방역기간이다. 명절 연휴에 면제했던 고속도로 통행료를 받는다.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점에선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없고 포장만 가능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고향 방문 자제를 호소한다. “불효자는 ‘옵’니다” 현수막이 나붙었다. 그 영향인지 1박 이상 고향 방문 계획이 있다는 사람들이 16.0%로 예년의 절반 밑으로 감소했다(한국갤럽 조사). 추석 차례를 지내겠다는 경우도 44.5%로 지난해보다 10%포인트 낮아졌다(농촌진흥청 조사).
풍선효과 우려도 제기된다. 제주도를 비롯해 동해안ㆍ남해안 숙박시설에 예약 문의가 많다고 한다. 전국적 인구이동은 코로나19 감염의 확산 고리가 될 수 있다. 보수단체들이 예고한 개천절 집회도 자제돼야 마땅하다. 경찰이 집결 신고인원 10명이 넘는 집회에 금지를 통보하자 일각에선 거리집회 대신 드라이브 스루 방식 차량시위를 제안하기도 했다.
기온이 내려가며 코로나19와 독감의 동시 유행, ‘트윈데믹’이 염려되는 와중에 국가의 독감 예방접종사업이 시행 전날 밤 전격 중단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백신은 제약업체 생산부터 접종 단계까지 냉장 보관이 원칙인데, 유통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됐다니 ‘K-방역’이 부끄럽게 됐다.
과거에 겪지 못한 일과 현상은 코로나 방역 분야 밖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저출산 현상이 심화함에 따른 사상 첫 인구 자연감소, 사상 최고로 치솟은 집값과 전월셋값에 따른 주거 불안정, 수도권 과밀화와 가속화하는 지방소멸, 증가하는 산업재해 사망자와 비정규직 등등.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인 나라’를 만들겠다고 강조하지만, 현실은 적지 않은 부문에서 ‘사람이 꼴찌인 나라’를 향해 가는 형국이다. 그래서인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채용, 공정, 병역, 사회, 문화 전반에서 공정하다는 것을 체감하느냐는 여론조사에서 51.1%가 체감하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체감 응답률은 44.6%였다(알앤써치 조사).
특히 20ㆍ30세대 젊은층에서 정부 정책의 공정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반응이 높았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민심을 잘 이해하고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47.8%)’와 ‘그렇다(47.0%)’가 팽팽한 것과 맥이 통한다.
세상이 어둡고 불합리한 일 천지인 것만은 아니다. 현대차 노사가 9월 21일 기본급을 동결하고 고용안정을 위해 노사가 협력한다는 임금교섭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현대차의 기본급 동결은 1998년 외환위기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11년 만이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도울 돈도 부족한데 웬 통신비 지원이냐는 지적을 받은 4차 추가경정예산안의 국회 심의 의결이 여야가 합의한 일정 내 마무리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13세 이상 전 국민 통신비 지급안은 철회되지 않고 16〜34세 및 65세 이상 지원으로 축소됐다. 아울러 야당인 국민의힘이 요구한 전 국민 독감 백신 무료접종이 일부 수용되면서 합의 처리됐다. 이로써 절박한 재난지원금의 추석 전 지급이 가능해졌다.
현대차 노사는 임금교섭 합의안 외에 부품업체와의 상생을 위한 사회적 선언을 함께 채택했다. 강성 노조의 대명사로 불린 현대차 노조의 현재 위원장은 지난해 말 중도실리와 사회적 조합주의를 표방해 당선됐다. 노조가 올해 임금협상에서 내세운 키워드는 ‘미래ㆍ변화ㆍ생존ㆍ공존’이다.
기업활동과 노사관계는 물론 여야 정당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정치판도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해야 지속 가능하고, 미래를 기약하며 변화시킬 수 있다. 자신만 옳다고 고집하며 상대의 희생과 양보를 강요해선 갈등과 다툼이 끊이지 않아 사회가 불안하고 국민이 힘들어진다.
국민은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명절을 이번 추석으로 끝내고 싶다. 정치권은 국민 바람에 부응해 4차 추경안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모처럼의 협치정신을 입법 현안과 민생 과제를 풀어가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현대판 상소문 ‘시무時務 7조’ 시리즈가 올라오고 있다. 필명 ‘삼호어묵’으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꼬집는 주부 논객도 등장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주재하거나 참석하는 수석보좌관회의나 이벤트 행사를 통해 누가 들어도 듣기 좋은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국민은 대통령의 간접화법보다 일자리 창출, 빈부격차 완화 등 국정 현안과 국가 비전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발언, 육성을 듣고 싶어 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