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 시장 동향과 정부의 정책 대응을 보노라면 국가의 존재 의미와 정치의 책무에 의문을 품게 된다. 국민, 특히 서민의 주거안정을 위해서라는 임대차법 개정 취지에 반대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국민의 재산권과 주거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제도 변화에 대응하는 정부와 정치권 자세는 낙제점이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담은 임대차보호법이 여당인 민주당 단독으로 국회를 통과하고 7월 31일 전격 시행되자 시장에선 적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전셋값이 급등하고, 전세매물이 품귀현상을 빚었다.
사실 이런 부작용은 예견됐고, 여당도 알고 있었다. 민주당이 법 개정 한 달 전 6월 30일 개최한 ‘민생공정경제 연속 세미나(주거 분야)’ 발제문에 임대차법 도입 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이 상세히 거론됐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제도의 특수성부터 도입 초기 전셋값 급등, 장기적으로 임대주택 공급 위축, 의무계약기간 장기화 및 고정화 등.
무능했던지, 무책임했던지 정부 여당은 후속 대책 없이 강행했다. 불만이 쏟아지자 참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던 중 법 해석상 혼선까지 빚었다. 7월 말 개정 임대차법이 시행될 때 집주인이 바뀌면 기존 세입자는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한 달 뒤 국토교통부는 기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 상태라면 새 주인은 2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담은 해설서를 배포했다. 그 여파로 다주택 논란 속 살던 집을 팔기로 한 경제부총리가 뒤늦게 계약갱신청구권을 주장한 세입자에게 뒷돈을 주고 매매계약을 성사시켜야 했다.
개정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 넉달째다. 임대차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린 임대차법이 시행된 1990년에도 전세시장이 요동쳤다. 그해 1~4월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급등했다가 5월부터 수그러들었다. 이를 아는 국토부가 이번에도 시간이 지나면 정착될 거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러 측면에서 30년 전과 다르다. 임대차 기간이 4년으로 당시의 두배다. 게다가 4년 동안 올릴 수 있는 임대료가 5%로 제한된다. 임대차 기간이 두배로 긴 데다 임대료 상승폭까지 제한하자 시장에 미치는 충격파가 클 수밖에 없다.
시간이 갈수록 전셋값 상승률이 높아지고 있다. 상승세가 서울에서 전국 도시로 확산하고 있다. 전셋값이 치솟자 전세수요가 매매로 돌아서며 서울 외곽과 수도권 중저가 아파트값을 끌어올린다.
국토부의 호언과 달리 시장이 거꾸로 가는 데는 주택시장 상황도 가세했다. 1990년은 노태우 정부가 영구임대 25만호를 포함한 주택 200만호 공급계획을 적극 추진하던 시기다. 경기도 분당ㆍ일산 등 신도시가 그때 건설됐다. 주택공급이 넉넉했다.
그런데 지금은 잇따른 규제로 주택공급이 위축돼 있다.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2만5931채로 올해의 절반 수준이다(부동산114 자료). 수도권 3기 신도시 아파트는 토지보상 등 절차가 늦어지며 정부가 약속한 2024년부터 입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다급해진 정부가 2022년까지 전세주택 11만4000호를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현 정부 출범 이후 24번째 부동산대책이다. 3개월 넘게 비어있는 공공임대를 전세로 바꿔 무주택자에게 소득 제한 없이 공급한다. 민간 건설사와 매입 약정을 통해 다세대ㆍ오피스텔 등 신축 건물을 공공임대로 내놓는다.
최장 6년간 시세보다 싸게 거주할 수 있는 ‘공공전세’도 공급한다. 빈 상가와 호텔을 주거용으로 바꿔 공급하는 방식도 처음 도입한다. 임대주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고품질 중형 주택도 공급한다.
동원 가능한 전세공급 확대 방안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한 모양새다. 이것저것 모아 숫자 채우기에 급급한 데 머물러선 안 된다. 이른 시일 내 국민이 정책 효과를 체감하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야당과 여론의 질타를 받는 호텔 리모델링부터 제대로 해 선보여라. 국토부장관 공언대로 ‘저렴한 임대료의 질 좋은 1인 가구 주택’으로.
적지 않은 정책이 정치 바람을 탄다. 임대차법과 전세대란은 내년 4월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물론 2022년 3월 대선에서도 뜨거운 정치 공방의 대상이 될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임대차법을 사흘 만에 단독 처리 시행한 데 대한 책임의식을 갖고 전세대란을 누그러뜨리는 데 매진하라. 정책 책임자가 진솔하게 사과하고 물러나는 것도 성난 부동산 민심을 다독이는 방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야당인 국민의힘도 정부 여당을 공격만 하지 말고 현실적 대안을 찾아 제시하라.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