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4월 21~22일 연속 700명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본격화한 3차 대유행의 여파가 가라앉기도 전에 4차 유행이 시작된 양상이다. 계속 연장되는 거리두기 조치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생계 절벽에 선 가운데 재난지원금 지급 재원이 바닥나고 있다.
진퇴양난이던 코로나 사태의 게임체인저로 등장한 것이 백신이다. 이스라엘과 영국이 백신 접종에 속도를 내면서 마스크를 벗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환자수와 사망률 등 방역에서 앞섰던 우리나라가 백신 확보와 접종에선 뒤처지며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국민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정부가 확보했다고 밝힌 백신은 총 7900만명분. 하지만 도입됐거나 상반기 도입이 확정된 물량은 11.4%인 904만명분 정도다. 구호로만 11월 집단면역 형성을 외쳐선 안 된다. 제때 필요한 물량을 확보하는 등 근거를 갖고 국민을 설득해야 할 텐데 상황은 꼬이고 있다. 코로나19가 재유행하는 가운데 백신 생산국들이 백신을 무기화하는 데다 미국은 변이 바이러스를 억제하겠다며 부스터 샷(3차 접종)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백신 스와프’를 검토하고 있는 사실이 공개됐다. 백신 스와프란 통화 스와프에서 착안한 개념으로 백신 수급에 여유가 있는 미국에 백신을 빌려 접종한 뒤 나중에 갚는 것이다.
스와프는 그 대상이 통화든 백신이든 현실적으로 주고받는 대상과 거래조건이 상호 매력적이어야 딜이 이뤄진다. 우리가 절실한 백신을 받는 대신 미국에 무엇을 줄 것인가. 뭘 준다고 해야 미국이 성큼 나설까.
답은 지난 12일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주재한 ‘반도체 공급망 회복 최고경영자(CEO) 회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날 반도체 웨이퍼를 손에 들고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기술 분야에 공격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을 삼성ㆍLGㆍSK 등 한국 기업들이 리드하고 있다. 미국에 첨단공장을 지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한편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에 관련 부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들 기업과 기업인들의 힘과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해야 할 것이다.
백신 접종률이 40%를 넘어선 미국은 머지않아 백신 공급이 수요를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기본적으로 백신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는 데다 흑인사회가 백신을 배척하고, 얀센 백신의 혈전 부작용에 따른 백신 주저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6월말까지 3억 도스의 잉여 백신이 쌓일 것이란 전망이 제기됐다. 백신은 유통기한이 있어 마냥 창고에 쌓아둘 수 없기 때문에 미국도 스와프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자체 개발한 백신으로 외교에 나선 점도 부담이 될 것이다. 백신국수주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갉아먹은 미국의 신뢰를 되찾겠다고 선언한 바이든 대통령의 약속에도 배치된다.
미국 내부에서도 잉여 백신의 해외 공급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워싱턴 민간단체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올여름까지 잉여 백신의 10%를 국제사회에 기부하고, 연말까지 50%를 내놓으라고 정부에 제안했다.
정의용 외교부장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관심을 가진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리가 도와줄 분야도 있다”며 민간 기업의 미국과의 협력 확대가 백신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20조원 규모의 미국 반도체 라인 증설을 검토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이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5월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반도체 기업의 힘과 기업인들의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백신 접종 속도전을 펼친 국가들이 마스크를 벗고 경제활동을 회복하기 시작했는데, 한국은 백신 접종 순위가 100위권 밖이다. 백신 개발국이 아닌 현실을 감안해도 백신접종 순위를 경제력 순위인 20위권 안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야 선진국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경제 활성화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을 것이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다. 헌법도 이를 명시하고 있다. 국민 생명을 지키는 데 국가 자원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단기적으론 화이자, 모더나 등 안전성과 효과성이 입증된 백신의 추가 도입을 서두르는 한편 러시아 스푸트니크 등 다른 백신도 확보해야 할 것이다.
해외 백신의 단순 위탁생산이 아닌 라이선스 생산으로 통제권을 확보하는 한편 선진국들의 백신 독점을 시정하려는 국제적 움직임에 동참하는 것도 긴요하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겠지만, 자체 백신을 개발하는 노력도 중단 없이 계속해야 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