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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귀거래사] 의료복지·빈민문제 치료하는 강동진 치과의사 ... "삶은 곧 의미다"

 

문이 열리자 마자 풍기는 특유의 약품 향. 치과 한켠 책꽃이에는 대기하는 동안 지루해할 환자들을 위해 잡지가 마련돼 있다. 그 중 노동시사잡지 ‘워커스’가 눈에 띈다.

 

이 잡지의 자문위원인 치과의사 강동진(54) 전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지난 8월부터 제주시 애월읍 신엄리에서 ‘연세우리동네치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그가 서울에서 고향인 제주로 돌아온건 35년만이다.

 

어릴적 소아마비를 앓았기 때문일까. 그는 줄곧 의사가 꿈이었다. 어릴때부터 아픈 이들을 치료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공부도 곧잘했던 그는 1986년 연세대 치과대학에 입학, 제주를 떠나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학업을 위해 간 서울이지만 막상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는 크게 흥미가 없었다. 그의 눈길이 저절로 닿은 곳은 전공책이 아닌 세상이었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이를 구성하는 사람들,  특히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밟혔다.

 

의료복지개선 위해 누군가는 꼭 해야할 일 ... 멀리 보니 모두 이어져 있었다

 

불편함을 겪고 있는 이는 그만큼 타인의 불편함에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자이기도 하다. 

 

군사독재 시절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이른바 ‘운동권’이었던 그는 학교를 졸업한 후 월급쟁이 의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1993년, 아프지만 돈이 없어서 병원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던 시절이다.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은 보잘 것 없었다.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몸을 아프게 하는 질병 뿐만 아니라 사회의 곪은 부분을 치료하고 싶었다. 그는 ‘민중의료연합’과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에서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가 오랜 시간 대표로 있었던 민중의료연합에서는 의료를 공공으로 제공해야한다는 논의가 처음으로 이뤄졌다. 

 

‘글리벡’. 유일한 백혈병치료약이다. 하지만 비싼 가격 탓에 가난한 환자들은 쉽게 먹을 수 없었다. 먹더라도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강씨를 비롯한 민중의료연합 회원들과 백혈병 환자들은 글리벡 제약회사를 상대로 약값 인하 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매출액 가운데 일부를 사측에서 지불, 약값을 내리는 성과를 얻기도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연대 진료를 나가기도 하고, 시·도별로 나뉘어 있던 건강보험을 통합하는 운동도 벌였다.

 

“그 당시에 했던 활동들이 최근에는 많이 알려지고 있고, 사회적 관심사로 부상했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적었죠. 그래도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바꾸는데 중요하고 핵심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고, 누군가는 꼭 해야하니까요.”

 

하지만 아픈 사람들이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것은 의료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권리는 하나로 끝이 아니고 모두 이어져 있어요.” 강씨가 활동을 지속하고, 공부를 하면서 정의내린 인권의 속성이다. 빈민.노동자들의 건강이 나빠지고 있는 배경에 노동시장 유연화 같은 제도적인 문제가 근본적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튼튼한 사회복지제도가 필요했다. 울창한 숲이 만들어지려면 뿌리가 튼튼하게 자리잡을 수 있는 흙을 다져야 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혼자할 수 없다

 

“이 돈으로 어떻게 살라는 겁니까!” 1998년 서울 명동성당에 한 여성장애인의 외침이 울려퍼졌다.

 

국가의 외환위기로 인한 피해가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던 시기다. 하루아침에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다는 언론 보도가 쏟아져 나왔고, 출퇴근길마다 지하철역에서 보이는 노숙인의 수는 빠르게 늘어났다.

 

그 무렵 그도 어렵사리 치과의원의 문을 열었다. 근로자들이 밀집한 지역인 서울 구로구 온수동에 1998년 개업했다. 가슴 속에 담아둔 푸르름의 상징처럼 푸르게 살고 싶은 마음에 치과의 이름도 '연세늘푸른치과'로 지었다.

 

하지만 당시 출범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는 한달에 26만원. 1인 농성은 함께 고민하던 개인과 사회단체들에게도 메시지를 던졌다. 강씨도 그 중 한명이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꾸려진 연대체는 이 제도만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빈곤 문제와 관련된 모든 개인과 단체들이 연대해 하나의 깃발 아래 공동행동을 펴나가기 시작했다.

 

‘활동가’ 하면 현장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같은 목적을 위해 자신만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비정규노동자와 빈민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집단으로 진정서를 제출한 인권선언운동과 길거리 공동행진, 현행 최저생계비가 최저생계를 보장하지 못해 행복추구권·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헌법소원 등 …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간 ‘빈곤사회연대’의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강씨가 주도적으로 기획한 공동행동이다. 

 

그는 몸이 불편한 게 사실이다. 물론 낮에 병원 일로 현장에 나가지 못한다. 그랬기에 그 대신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벌일 것인지 기획했다. 아울러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글을 쓰고, 빈곤 문제를 인권 개념으로 전환시키는 데 필요한 정교한 ‘이론’을 만들기도 했다.

 

“뭐든지 혼자하는 건 어려워요. 예컨대 환자 한명을 진료하더라도 간호사와 협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해요. 사람 한명을 치료하는 데도 몇명이 노력하는데 세상을 바꾸려는 사회운동은 어떨까요? 혼자하기란 불가능하죠."

 

 

"주 정체성은 치과의사 아닌 활동가 ... 이런 의사도 필요하다"

 

 ‘생각하는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강씨가 마음 속에서 되새기는 문구다. 

 

그는 자신을 활동가라고 말한다. 치과의사로서 정체성은 이른바 ‘부캐(릭터)’다. 치과를 운영하면서도 가끔 진료를 제쳐두고,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원장이 병원에서 자주 빠지는데 잘 돌아갈리 없죠.” 그가 농담삼아 말했다. 결국 13년만에 문을 닫았지만 사실 해방감도 컸다.

 

계약직 치과의사로 일하다 기간이 끝나면 보이지 않는 사회의 허점을 수면 위로 떠올리는 일에 몰두하는 패턴을 3개월 주기로 반복했다. 흔히 ‘의사’하면 떠올리는 모습과 사뭇 다르다.  

 

“병을 치료하고,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일하는 게 의사가 하는 일의 핵심이에요. 병원도, 의사도 많아지고 의료복지체계도 개선되긴 했지만 치료를 못 받아 병을 앓고 있는 경제·사회적 약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요. 모든 의사들이 저 같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의사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람은 본인이 재미있는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하잖아요. 저는 이렇게 사는 게 올바르고, 즐겁고, 좋다고 생각해요.”

 

그는 집행위원장에서 물러난 후부터 지금까지 정치활동에 힘쓰는 중이다. 의료를 비롯해 빈곤·노동·장애인·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 및 문제를 구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은 정치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다소 생소한 ‘사회변혁노동자당’ 당원이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2년간 당내 사회운동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2018년 1년 동안 당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대도시에서의 삶은 치열했다. 서울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나기 전까지만 해도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즐겼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매일같이 새벽에 잠들었지만 그래도 힘든만큼 행복했다. 

 

“삶이자 의미죠.”

 

누군가 낮에는 의사로, 밤에는 활동가로 살아가면서 얻는 게 무엇인지 묻는다면 주저없이 말한다.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 없었다. 그에게 활동은 그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다. 

 

"언젠가 내려가야지." 마음으로 되뇌이다 돌아온 제주.

 

인생의 절반 이상을 타향에서 살다 돌아온 고향은 여전하다. 여기서 보내는 일상은 여유로운 한편 낯설기도 하다. 그는 요즘 제주에서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있다.

 

그가 요즘 주목하고 있는 문제는 ‘기후위기’다. 그는 이달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주요 의제나 쟁점, 각 나라의 기후운동 진영들의 입장 등을 조사한 후 회의에 참여하는 당원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또 탄소배출을 많이 하는 기업에 대한 책임이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지적하기도 한다.

 

“제가 바라는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세상,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이에요. 그렇지 못한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었기 때문에 노력해왔어요. 앞으로도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토대로 행동하며 살아가고 싶어요. ” 그가 꿈꾸는 세상에서 그가 소명으로 삼은 그의 몫이다. [제이누리=박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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