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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글래디에이터 (5)

로마의 전쟁 영웅 막시무스는 코모두스의 계략에 빠져 처형당하기 직전 극적으로 탈출한다. 어깨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가족이 있는 스페인 고향집까지 말을 몰아 달려간다. 지금으로 치면 오스트리아 어디쯤에서 스페인까지 말 타고 달려간 셈이니 대단하기는 하다. 하지만 고향집은 막시무스를 절망에 빠뜨린다. 

 

 

불행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아내와 어린 아들은 이미 코모두스가 보낸 군인들에게 살해됐다. 아무리 미워도 가족은 건드리는 게 아니다. 코모두스는 선을 넘었다. 이제는 갈 데까지 갈 수밖에 없게 됐다.

 

아내와 아들을 묻고 정처 없이 길을 떠난 막시무스는 얼마 못 가 황야에서 탈진해 쓰러지고 만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노예사냥꾼 무리가 막시무스를 발견해 ‘주워’간다. 거의 숨만 붙어있는 상태였지만 노예사냥꾼들은 놀라운 ‘선구안’으로 치료만 잘하면 쓸 만한 ‘검투노예’가 될 재목임을 알아챈다. 

 

노예사냥꾼에게 사냥당해 끌려가던 주바(Juba)는 썩어가는 막시무스의 상처에 ‘구더기 치료’를 해준다. 구더기는 모양새가 고약하긴 하지만 고름만 빨아먹고 항생물질을 분비해주는 신통한 벌레라고 한다. ‘구더기 치료’는 19세기 유럽에서 개발돼 미국 남북전쟁 당시 수많은 생명을 구해낸 당당한 ‘의료비법’으로 알려져 있다.

 

1930년대 중일전쟁 당시 마오쩌둥(毛澤東) 팔로군에서 활약한 캐나다 의사 헨리 노먼 베순(Henry Norman Bethune)은 폐결핵약이 없던 시절 결핵환자의 가슴을 가르고 구더기를 집어넣어 완치시켰다는 기록도 있다.

 

가히 현대판 화타(華佗)의 재림이다. 참혹한 전쟁이 벌어지면 어디든 달려갔던 진정한 의사이기도 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 모든 ‘구더기 치료’의 원조가 로마시대 ‘주바’였다고 주장하는데, 사실관계는 모를 일이다.

 

 

구더기 덕분에 목숨을 건지고 검투노예 양성소에 팔려온 막시무스는 검투훈련을 거부한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종교적 신념에 따라 ‘집총(執銃)’을 거부하듯 ‘집검(執劍)’ 자체를 거부한다. 당연히 두들겨 맞지만 초지일관이다. 게르만 전사들을 무지막지하게 베어 죽이던 막시무스가 갑자기 평화주의자라도 된 것일까. 

 

집검 거부의 이유는 곧 밝혀진다. ‘집검’을 거부하고 곤욕을 치른 후, 막시무스는 검투사 양성소 한구석에 박혀 투박한 칼로 어깨에 새긴 ‘SPQR’이라는 문신을 후벼 판다. ‘SPQR(Senatus Populusque Romanus)’은 로마 전 시대를 관통하는 로마의 상징과도 같은 엠블럼이다.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는 빠짐없이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게르만과의 전투를 지켜보는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뒤에도 어김없이 SPQR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SPQR은 ‘로마 원로원과 로마 인민’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다. 요즘으로 치면 ‘로마 의회와 국민’이 곧 로마임을 표방한다. ‘주권재민(主權在民)’ 정신의 효시이자 로마의 위대한 정신적 유산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Romanus(Roman Peopleㆍ로마 인민)는 로마제국에 사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로마의 ‘자유민’만을 일컫는다. 로마 전성기 시대 로마 인구가 약 7000만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중 1000만명 정도는 자유민이 아닌 노예였다고 한다. 노예는 SPQR 속 Romanus가 아니다. 로마 북부군 사령관 막시무스도 이제 Romanus가 아닌 노예로 전락한 셈이다.

 

막시무스는 로마의 자유민으로 ‘로마의 원로원과 시민’의 명령에 따라서는 칼을 휘두를 수 있지만, 검투 ‘노예’로서 칼을 드는 것을 거부한다. 영화의 도입부 게르만과의 전투에서 막시무스는 병사들의 선두에 서서 ‘로마의 영광을 위하여!’를 외치며 적진으로 돌진한다. 누가 시켜서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는 짓은 자유인의 명예에 반하는 수치스러운 짓이다. 노예로서 칼을 쥐기 위해서 어깨에 새긴 SPQR을 먼저 후벼 파 버려야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주바가 ‘그게 너의 신(神)이냐? 너의 신을 버리기로 했냐?’고 묻는다. 막시무스는 처연하게 웃는다. 자유인의 자유의지는 ‘신’과도 같은 것이다. 자유의지를 버린다는 것은 ‘신’을 버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어깨에 새긴 SPQR을 파 버리고 막시무스는 검투 프로모터 프록시모가 시키는 대로 아무나 닥치는 대로 죽이는 발군의 노예검투사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는 모두 자유인이기를 원하고 ‘자유 대한민국’에서 명목상 모두 자유인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자유인이기보다는 ‘노예검투사’ 같은 삶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조직에서든 직장에서든 나의 자유의지나 명분을 팽개치고 ‘프록시모’의 필요와 의지에 따라야 한다. 막시무스처럼 ‘집검’을 거부하고 싶은 순간들도 있고, 마지못해 ‘집검’하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간직한 저마다의 ‘SPQR’을 우선 파버려야만 하는 순간들도 있다. 

 

막시무스가 어깨에서 파버린 SPQR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간과 쓸개’쯤 될지도 모르겠다. 간도 쓸개도 버렸다는 것은 ‘노예’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예를 낳기 싫어서’ 결혼도 출산도 거부한다는 적지 않은 젊은이들의 자조自嘲가 마음 아프고 안타까운 오늘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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