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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글래디에이터 (1)

 

 

 

명장(名匠) 리들리 스콧이 만든 ‘글래디에이터(Gladidatorㆍ2000)’는 명장의 작품다운 명품이다. 그해 아카데미 영화상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남우주연상, 작품상을 포함한 5개 부문을 휩쓸어버린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오로지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뛰어난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는 항상 조심스럽다. 뛰어난 이야기꾼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그럴듯하게 버무리는 재주를 지녔다. 사기꾼의 자질이기도 하다.

 

분명히 이어붙였는데 그 자국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실로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참고: 선녀(仙女)의 옷에는 바느질한 자리가 없다는 것으로, 성격이나 언동 등이 매우 자연스럽다는 의미.]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다. AD 180년께, ‘망조’가 깃들기 시작하는 로마제국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게르만 원정에 나서 막시무스 장군을 앞세워 승리를 거둔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아들(코모두스)이 아닌 충직한 장군 막시무스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려 한다. 

 

분노한 코모두스는 아버지를 목 졸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당연히 막시무스 일가족을 몰살시키려 한다. 아내와 아들은 무참하게 살해되지만 막시무스는 탈출해 살아남는다. 막시무스는 검투사로 돌아와 콜로세움에서 황제 코모두스와 결투를 벌여 난폭한 황제를 제거하고 위기의 로마를 구원한다. 이 흥미진진한 영화 ‘스토리’가 과연 사실(史實)이었을까.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아들이 코모두스인 것은 맞다. 루실라라는 딸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우렐리우스가 아들 코모두스 대신 루실라의 남편 폼페이아누스 장군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어했던 건 사실이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아우렐리우스가 아들 코모두스에게 목 졸려 죽은 건 사실이 아니다.

 

 

 

 

그는 원정길에서 콜레라로 추정되는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 코모두스는 자연스럽게 황제 자리를 물려받는다. 코모두스도 비명횡사하기는 했지만 검투사와의 결투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목욕탕에서 검투사 아닌 레슬링 선수에게 목 졸려 죽었다. 

 

이후 로마는 ‘개판 5분 전’처럼 혼란에 빠진다. 이것이 역사책 속의 플롯(plot)이다. 별로 재미없다. 이렇게 밍밍한 플롯을 재주 많은 스토리텔러 리들리 스콧 감독이 사실과 허구를 적당히 배합해 흥미진진한 스토리(sto ry)로 만들어냈다. 

 

플롯과 스토리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전혀 다르다. 플롯은 팩트의 시간적 나열일 뿐이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플롯 자체는 역사적 사실과 거의 부합한다. 가공 인물인 막시무스만 제외하고 그때 그곳에서 그 인물들이 그런 일들을 벌였다.

 

그러나 스토리로서의 ‘글래디에이터’는 플롯과는 다르다. 스토리는 팩트와 팩트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확인불가능한 유추와 짐작, 상상이 동원돼 정설이 아닐 수도 있다. 스토리텔러가 인물들의 성격(charac ter)까지 보정해 재탄생시키거나 아예 바꿔버리기도 한다. 

 

선악이 뒤바뀌기도 한다. “대왕이 죽었다. 얼마 후 왕비도 죽었다”고 하면 그것은 플롯이다. “왕비를 끔찍이 사랑했던 대왕이 죽었다. 얼마 후 슬픔을 이기지 못한 왕비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대왕을 따라갔다”고 하면 그건 스토리가 된다. 

 

플롯은 무미건조하지만 스토리는 흥미진진해질 수 있다. 하나의 플롯에서 수많은 스토리가 나올 수 있다. 플롯이 자동차 플랫폼(platform)이라면 스토리는 자동차다. 같은 플랫폼에서 서로 다른 다양한 자동차가 나온다. 우리가 타는 건 플랫폼이 아니라 자동차이듯, 우리가 듣고 싶어 하는 것은 플롯이 아니라 스토리다.

 

 

 

 

인간은 ‘호모 루덴스(유희적 동물ㆍHomo Ludens)’인 동시에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하는 ‘호모 나랜스(Homo Narrans)’이기도 하다. 인터넷을 통한 매체의 발달로 호모 루덴스와 호모 나랜스의 전성시대가 됐다. 우리는 유튜브에서 입맛에 맞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열심히 찾아본다. 수많은 유튜버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기에 여념이 없다.

 

재주 많은 스토리텔러 리들리 스콧이 아우렐리우스와 코모두스 황제의 플롯을 기반으로 창조한 ‘글래디에이터’라는 재미있고 그럴듯한 스토리에는 박수를 보낼 수 있다. ‘호모 루덴스’인 우리는 재미를 위해 역사드라마에서 리들리 스콧 정도의 ‘사실왜곡’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유튜브에서 뉴스와 속보라는 이름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면 그것은 좀 곤란해진다. 뉴스에서 콜레라에 걸려 죽은 아버지를 아들이 목 졸라 죽였다고 보도하면 ‘가짜뉴스’가 된다.

 

리들리 스콧은 그래도 되지만 유튜버는 그러면 안 된다. 뉴스는 창작물이 아니다. 아무리 뉴스가 ‘밍밍’해도 상상력을 동원해서 스토리로 재탄생시켜서는 안 된다. ‘스토리텔링’ 전성시대가 되다보니 뉴스까지 스토리텔링처럼 돼간다. 뉴스까지 자극적이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듯이 말이다.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고, 그럴수록 사회가 어지러워지기도 하는 ‘스토리텔링’ 전성시대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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