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유배됐던 유일한 임금인 광해군의 적거지(謫居址, 죄인이 귀양살이 한 곳)가 새롭게 밝혀졌다.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와 강문규 전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은 광해군의 적거지가 기존에 알려진 위치(제주시 이도일동 1474-1)가 아닌 제주목관아 서쪽 담장 너머로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찾아냈다고 10일 밝혔다.
이는 광해군의 제주 귀양살이에 관한 기록이 담긴 이형상 제주 목사의 저서 '남환박물' 박물관본(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이 최근 새로 발간돼 광해군 적거지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나오면서다.
'남환박물(南宦博物)'은 1700년대 제주도의 자연과 사회상 등을 엿볼 수 있는 제주 최초의 박물지다.
조선시대 제주 목사 이형상(1653~1733)이 쓴 제주도에 관한 책으로 1700년대 제주의 자연·역사·풍속 등에 관한 다양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어 '탐라순력도'와 함께 제주 역사를 연구하는 소중한 자료로 인정받는다.
남환박물은 현재 2종의 필사본이 전한다. 1979년 보물로 지정돼 이형상 목사의 문중에 소장된 '문중본'과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 있는 '박물관본'이다.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은 지난해 6월 박물관 역사자료총서 제6집 남환박물 완역본을 발간한 바 있다.
문중본은 광해군의 적거지에 대해 '제주 서쪽 성안에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박물관본은 제주목관아 안에 있는 2층 누각인 '망경루(望京樓) 서쪽 성안에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앞서 1996년 제주지역 언론사 한라일보는 제주시와 협약해 88개소 유적지에 표석을 세웠다.
당시 사람들이 광해군의 적거지 터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현 제주시 중앙로 제주신협 건물 앞(제주시 이도이동 1474-1)에 표석을 건립했다.
표석건립자문위원들은 광해군 적거지 위치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심의를 보류했지만 후일 명확한 기록이 나타나면 제 위치에 건립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우세해 표석을 세웠다.
제주도시재생센터는 지난 5월부터 강 전 소장 등 외부 전문가와 함께 광해군 유적지 찾기에 나섰다.
이들은 현재까지 제주 전통 와가(瓦家, 기와집)의 건축양식이 남아 있는 고옥(古屋) 한 채(제주시 삼도2동 1057번지)를 발견해 광해군 적거지와 관련한 유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새로 추정하는 광해군 적거지 위치는 기존 위치와 직선거리로 460여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앞으로 전문가 등 검토와 고증이 필요하다.
광해군을 비롯해 제주 유배문화를 연구한 양진건 제주대 명예교수는 "광해군의 적거지가 제주목관아 서문 안쪽에 위치한 것으로 새로 밝혀지고 있다"면서 "조선임금 출신 최초의 제주유배인 광해군과 최초의 제주도 서양유배인 36명의 하멜 일행의 적거지가 동일하기 때문에 동시에 기념하고 전시하는 매력적인 공간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광해군(光海君, 1575년 6월 4일~1641년 8월 7일)은 조선의 제15대 국왕(재위: 1608년 ~ 1623년)이다. 조선의 왕 중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왕이자 제주에 유배 온 유일한 왕이다.
후궁의 몸에서 서자로 태어나 일국의 왕이 됐다가 인조반정으로 한순간에 죄인의 몸이 됐다.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왕후를 유폐시켰다는 '폐모살제(廢母殺弟)'를 이유로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1623년)에 의해 폐위됐다. 1624년부터 기나긴 유배 생활을 시작한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충청도 태안으로 옮겨졌다가 강화로 다시 옮겼으며,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강화도 옆 교동도에 유배됐다. 병자호란이 끝난 1637년 6월 6일, 광해군은 제주 어등포(魚登浦 : 현 구좌읍 행원리)로 입항했다. 이어 다음날 제주 주성 망경루(望京樓 : 구 제주세무서) 서쪽 또는 제주 서성(西城) 안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배 생활을 하던 광해군은 1641년 7월 1일에 67세를 일기로 독살로 인해 사망했다. 그가 숨진 시기인 음력 7월 1일 무렵에 제주도에 비가 자주 오는데, 이를 '광해우'라 칭하기도 한다.
제주에 광해군에 대한 흔적은 남문로터리에서 탑동으로 가는 중앙로 서쪽길가에 위치한 국민은행 제주지점 입구 앞에 표지석인 ‘광해군의 적소 터’로 남아있다. 광해군의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