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전년도 12월 말에 해온 새해 경제정책방향 발표가 2024년이 밝은 지 나흘째인 1월 4일 나왔다.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신분인 경제부총리를 교체하고, 경제부처 장관들을 대거 총선용으로 차출하는 정치 과열이 새해 경제정책 추진 일정을 꼬이게 만들었다. 예년보다 늦게 나온 만큼 현실을 직시하고 정책 방향을 제대로 제시해야 할 텐데, 현실 인식은 안이하고 처방은 선심성 포퓰리즘으로 얼룩졌다.
한국 경제는 사면초가 복합위기 상황이다. 미국·중국 간 패권 경쟁과 보호무역주의 장벽으로 수출이 부진하고 경상수지가 적자를 냈다.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넘어선 가계부채 탓에 내수도 냉각했다. 고물가 속 국민의 실질소득은 감소하고, 서민 살림살이는 팍팍해졌다. 부자 감세와 정부의 엉터리 추계로 지난해 60조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경제정책방향 첫 페이지에서 지난해 건전재정 기조를 확립하고, 세일즈 외교로 기업의 수출·투자 저변을 확대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제조업과 청년층 취업자가 감소했는데도 고용은 양호하다고 했다. 건설사들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만기가 시한폭탄처럼 다가오고, 시공능력 16위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는데도 금융시장은 위기 진정 국면에 진입했다고 딴 나라 정부처럼 진단했다.
정부는 경제정책방향의 목표를 ‘활력 있는 민생경제’로 정했다. 민생경제 회복, 잠재위험 관리, 역동경제 구현, 미래세대 동행의 4가지 키워드를 내세웠다. 자영업자와 영세 소상공인, 노인 등의 계층을 대상으로 한 정책에 집중해 사회안전망을 튼튼히 하고,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건설·투자 규제를 과감히 풀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말 종료된 설비투자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연말까지 1년 연장하고 연구개발(R&D) 분야에도 적용한다. 전통시장 사용분 소득공제율을 40%에서 상반기로 한정해 80%로 높인다. 영세 소상공인 126만명에게 20만원씩 총 2520억원의 전기요금을 감면한다.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2조3000억원+α 규모의 이자 부담을 경감한다.
노인 일자리 103만개를 창출하고 수당도 올린다. 저소득층의 생계급여를 역대 최대폭으로 인상한다. 비수도권의 개발부담금을 면제하고 개발제한구역 해제 요건도 완화한다. 기존 1주택자가 인구감소 지역 주택을 취득하면 1주택자로 간주해 세금을 면제해주는 ‘세컨드 홈 활성화’ 정책도 포함됐다.
상당수 정책과 예산의 1분기 조기 집행 방침은 4·10 총선을 의식한 일회성·선심성 용도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일시적 갈증을 해소하는 임기응변 정책으로는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앞서 발표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 대주주 주식양도세 부과 기준 완화 등도 포퓰리즘 논란을 낳은 터다.
선심성 정책은 시리즈로 나오고 있다. 정부는 10일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한 민생 토론회에서 지은 지 30년 넘은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용적률을 500%까지 상향하는 등 다양한 지원을 통해 임기 내 (신도시 재건축이) 착공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재개발·재건축을 억제한 정책 탓에 집값이 급등한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의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는 필요하다. 그렇다고 지은 지 30년 된 아파트를 안전 점검도 없이 재건축을 추진한다는 것은 국가적 자원 낭비다.
신축 소형 빌라와 오피스텔,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사면 세금 부과 때 주택 수 산정에서 제외해 주겠다는 대책도 나왔다.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도 폐지하겠다고 했다. 건설사 PF 부실, 주택 거래 부진 등에 따른 부동산시장의 경착륙을 막으려는 취지라지만, 지금은 누적된 ‘미친 집값’의 거품을 빼야지 자칫 투기를 부추길 소지가 있는 정책을 양산할 때가 아니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2.2%, 물가상승률은 2.6%로 제시했다. 지난해 1.4%에 그친 저성장 질곡에서 벗어날 것이라지만, 장담할 수 없다. 국내외 주요 기관의 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2.0%이고, 1%대 후반 성장에 머물 것으로 보는 기관들도 있다. 1%대로 추락한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과 규제 혁신을 비롯한 구조개혁이 필수다.
한국 경제는 내수 부진, 세수 부족 등 내부 문제에다 세계적 고물가·고금리, 공급망 등 교역 질서 재편, 국제정세 불안에서 비롯된 대외적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 이에 대비하는 산업 대전환 등 중장기적 로드맵 마련도 결코 소홀해선 안 된다. 경제정책은 허약한 체질을 개선하고 펀더멘털을 강화해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는 쪽에 맞춰야 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