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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의사수는 국가별 특성 따라 달라 ... 의사수 급증은 장차 재앙

 

요즘 우리나라는 의대 입학정원의 증원에 따른 의료계의 반발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있다. 우리나라 의료의 특수성을 모르는 정치인들에 의해 우리나라 의료가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지경에 이르니 의사들이 분노하는 것에 대해 도무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의사가 몇 명이 적정한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각 나라의 의료제도나 국민의 의료기관 이용 형태, 그리고 국토의 구성요소 및 국민소득 등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나라처럼 의료보험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에서는(비록 그것이 비민주적 입법에 기인한 것이라 해도) 국민들께서 가벼운 질환에도 의료기관 방문을 주저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 1인 당 병원 방문 횟수가 많아지니(우리나라가 단연 1등이다) 당연히 의사가 많아야 하나, 우리나라 보험제도가 박리다매를 지향하고 있으니 한 의사가 진료하는 환자 수가 많을 수밖에 없어 환자 수에 비해 의사가 덜 필요하게 된다(여기에서 3시간 대기에 3분 진료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다가 전문의 진료에 제한이 없으므로 1차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일반의나 가정의학과 보다는 종합병원 선호도가 높아 의사 중 전문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이것은  의료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예전에는 전문의가 아니어도 지금 전문의가 진료하는 많은 부분을 담당했다.

 

예를 들면 한국병원 초창기에 심장에 칼이 찔린 환자가 왔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제주도 내에는 심장외과는 물론 흉부외과 전문의도 없는 상황이었다. 서울로 후송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러다가는 환자가 죽을 것이 명약관화였다. 그래서 일반외과의사가, 나중에 잘못 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하면서도, 환자를 살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수술해서 살려낸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전문의라 하더라도 세부전문의가 아니면 진료를 꺼리는 상황이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아산병원에서 병원 소속 간호사가 신경외과 의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두술(開頭術; 두개골을 열고 하는 수술)을 하는 신경외과 의사가 없어서 사망한 사건이다. 예전이면 신경외과 의사라면 대부분 하던 수술이다. 

인구밀도가 낮은 러시아나 미국, 호주 등은 국민들의 의료 접근성 문제로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보다 의사가 많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동차로 10분이면 의사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앞에 열거한 나라들에서는 10분 내에 의사를 만날 수 없는 지역이 너무나 많다. 그러니 국민 숫자에 비해 의사가 많아야 한다.

국민소득이 낮으면 의료기관 이용이 어렵게 되니 자연히 의사가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저개발 국가의 의사 수는 OECD 국가보다 당연히 적다. 그것은  국민소득이 올라가면서 의료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우리의 국민소득이 낮을 때에는 감기에 병원을 찾으면 집안 망할 놈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감기에 걸렸는데 병원 가지 않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 받는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의료도 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수요가 많으면 공급이 중가하고, 수요가 적으면 당연히 공급도 줄어든다. 우리나라에서 신생아가 줄어드니 소아과와 산부인과의원 운영이 어려워 폐업사태가 발생했고, 거기에다 어처구니없는 일심재판 결과로 소아과와 산부인과 전공의 지망자가 줄어들었다. 그런데 국민들께서는 과거에 병원 이용형태를 생각해서 10분 내에 이용할 소아과나 산부인과가 없다고 불평한다.

모 지방 의료원에서 3억5000만원이라는 연봉을 주겠다고 하였으나 지원하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없다고 하자, 국민들은 의사가 배불러서 그렇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의사 입장에서는 그런 병원에 가면 1년 365일 24시간 대기해야 하고, 응급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의사가 없으며, 사고가 나면 10억원이 넘는 보상금을 각오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젊은 의사들은 아이들의 학교 문제가 걱정되고, 나이 드신 분들은 체력이 걱정될 뿐만 아니라 신분 보장도 어렵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서귀포시에서 모슬포에 민관합동병원을 지어 많은 혜택을 주면서 운영할 의사를 물색하고 있으나 아직 개원하지 못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장래를 보장받지 못하는 곳에 가는 것을 꺼리는 것은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대기업에 입사하였으나 3년이 지나기 전에 퇴사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현상이다.

지금 의대 입학정원 증원이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와 의협 사이에 정부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필수 의료인력이 충원되기 시작하는 14년 후의 우리나라 인구와 지방소멸에 대한 시각 차이와, 지금 의료문제가 정부의 정책실패로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출생아 수는 1년에 27만명 정도다. 그에 비해 신규의사는 3000명이 양성되고 있다. 즉 신생아 100명 당 의사가 1.1명 불어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인구수는 해마다 30만 명가량 줄어드는데(앞으로 신생아는 30만명 미만인데 베이비붐 시대에 태어난 인구가 많기 때문에 사망자 수는 불어나 일 년에 60만명 이상이 될 것이고 당분간 이것은 점차 증가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인구소멸국가로 추정되고 있는 것이다.) 의사 수는 해마다 2400명가량 불어난다( 지금 돌아가시는 분들 때에는 신규의사가 한 해에 500여 명 정도였으나 신규의사는 3000명이  되니), 거기에 2000명을 중원하면 해마다 4400명가량의 의사가 증가하는 것이다. 이 속도면 14년 후에는 5만7000 명 정도의 의사가 불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속도로 의사가 증가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없는 일이며 장차 재앙이 될 것이다.

문제는 의사는 변호사와 더불어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대표적 직업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의료가 왜곡된 데에는 새로운 의료 행위가 너무 많이 또 빠르게 발생한 것이 원인이 된다. 다른 나라보다 미용이나 성형, 도수치료 등이 성행하는 것이 그 증거다. 미국의 ‘식코’사태가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영리병원 때문이라고 왜곡하고 있으나, 실은 미국의 변호사와 의사 수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많은 것이 의료소송의 증가로 이어졌고, 이에 대비하느라 의료사고에 대한 보험료가 급등하면서 치료비가 급등하니 의료보험에 들지 못하는 인구가 3000~4000만명이나 되어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실례로 국내 언론사 미국특파원이 사막을 지나다 차가 뒤집혀 목을 다쳤는데 1주일 지나자 괜찮아져서 병원에 가지 않았더니 변호사가 그러면 안 된다고 해 10개월 치료하였더니 소송해서 3만 달러 받아서 1만 달러는 치료비로, 1만 달러는 변호사비로, 그리고 1만 달러는 보상비라고 하며 가져 오더라는 것이다. 멀쩡한 사람을 10개월간 치료하고 3만 달러를 받아내니 보험료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이 분한테만 생긴 것이 아니고 일반화되었다는 것이다. 만일 정부안대로 정원이 늘어날 경우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식코’와 같은 현상이 생길 것이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국민들이 비난하는 악마가 아니며, 그렇다고 국민들이 원하는 천사도 아니다. 정부에서 바라는 노예는 더더구나 아니다. 그저 하나의 국민이며,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에 열심히 할 뿐이다. 의사들이 요구하는 정당한 주장에 대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에 순종하는 노예가 되기를 거부할 뿐이다. 국민들께서 알아야 할 것은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책임이며, 의사들은 그중 일부를 위임받아 실행할 따름이라는 사실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은 ‘평양감사도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것이다. 의사가 병역의 의무처럼 꼭 의료업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병역 중에도 장교는 본인이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것이다. 의사가 의료업을 신나게 하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며, 장래에 국가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칠 것을 예견하면서도 노예처럼 순종하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의사가 우려하는 사항에 대해서 불안을 해소시킬 책임은 국가에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알아야 한다.

광우병 파동에서 국민들이 미국 소를 수입하였을 경우 광우병이 생길 수 있다는 괴담까지도,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는 수입업자가 국민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해야 하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이나 올려도 장차 우리나라 의료에 큰 영향을 끼칠 염려가 없다는 것을 국가가 의료계를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한다. 환자를 본 적도 없는 의료관리학과 교수나 예방의학 학자의 주장과 통계에 세뇌되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행위는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필자는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병원장 입장에서는 의사가 불어나는 것이 무척 반갑다. 의사를 구하기가 한결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필자의 나이가 80이 넘었으니 이렇게 늘어난 의사들 때문에 피해볼 일도 없다. 그러나 이번 의대 입학정원 2000명 증가에 반대하는 이유는 역사에 기록되고 싶어서다. 먼 훗날 ‘식코’와 같은 현상이 생겼을 때에 후배나 도민들께서 사태가 이렇게 되도록 무엇을 했느냐고 물을 때에 ‘나는 그때에 이렇게 했다’고 당당하게 얘기하고 싶어서다. / 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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