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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파이트 클럽 (7)
인간 포함 대부분 동물 자웅이체 ... 정부와 집권당, 섭리 따라야 하지만
당정일체 미명 하에 자웅동체 모습 ... 총선 참패 후, 다른 모습 보일까

영화가 진행하면서 ‘파이트 클럽’ 운영자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은 주인공인 화자(話者)가 만들어 낸 환각의 인물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주인공은 출장에서 돌아와 자신의 아파트를 누군가 불질러 버렸다는 것을 발견한다. 망연자실한 주인공 앞에 비행기에서 만났던 더든이 홀연히 나타나 당분간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권한다.

 

 

주인공은 더든을 따라 거의 헛간 수준의 그의 폐가에 입주한다. 더든의 폐가에 입주하고도 주인공은 변함없이 직장에 무기력하게 출근을 계속한다. 그 폐가에 주인공이 고통의 현장을 ‘눈팅’하면서 만났던 말라(Marla)도 합류한다. 

더든은 말라와 매일 밤 낡아빠진 폐가의 천장이 내려앉을 정도로 짐승 같은 성관계를 한다. 주인공은 그런 더든과 말라를 ‘짐승같은 것들’이라고 경멸한다. 주인공은 그렇게 자신이 만들어낸 또 다른 자아인 더든을 통해서 말라를 향한 자신의 욕망을 채우면서도 그 짐승 같은 놈은 더든이지 자신은 아니라고 스스로 믿는다. 

주인공의 아파트를 불질러 버린 것은 더든이었다는 것도 밝혀진다. 더든은 주인공이 만들어낸 환상이었고, 결국 주인공 스스로 자신의 집을 불질러버리고 폐가로 옮겨온 것이다. 주인공이 더든과 치고받는 장면에서 카메라가 시점을 바꾸어 멀리서 그 장면을 비추는데, 주인공 혼자서 자기 멱살을 자기가 잡고 자기가 자기 얼굴을 두들겨 패고,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고 있다. 

주인공의 몸속에는 자신과 더든이란 2개의 자아가 공존하고 있다. 주인공은 전형적인 뇌신경정신장애 중 하나인 다중 인격 장애 현상을 보인다. 자기 안에 다른 이름, 경험, 정체성을 갖고 있는 또 다른 자아들이 번갈아 지배권을 가지며, 서로 갈등하고 다른 자아를 부정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자기 스스로 차마 하기 어려운 일은 모두 또 다른 자아인 더든에게 맡겨버린다. 그토록 ‘영끌’해서 장만한 아파트가 스스로 수치스러워도 차마 자기 손으로 불태워버릴 용기가 나지 않아 또 다른 자아인 더든을 불러내 아파트를 불지른다. 

‘거리의 여자’인 말라를 향한 수치스러운 욕망도 더든의 몸을 빌려 해결한다. 자신은 감히 용기가 나지 않는 ‘도시 테러’도 슬그머니 더든에게 맡기고 자신은 착실한 회사원으로 남는다. 분명히 서로 달라야 할 2개의 자아가 한 몸속에 공존하고 있다. 

결국 ‘동체’인 주인공과 더든이 ‘세상을 모두 파괴하자’는 무력혁명파와 ‘그건 안 된다’는 온건개혁파로 나뉘어 투쟁한다. 주인공 혼자 자기 멱살을 자기가 쥐고 자기를 두들겨 패기도 하고 허공에 주먹질을 하면서 처절하게 싸운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 주인공은 더든을 자기에게서 분리시키려 하지만 실패한다. 결국 주인공은 더든을 없애버리기 위해서는 더든을 만든 자신이 죽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긴다. 

주인공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ditos)의 신화와 같은 비극적인 존재다. 헤르마프로디토스는 경계를 넘어 양쪽 세계를 넘나드는 전령(傳令)의 신(神) 헤르메스(Hermes)와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가 불륜관계를 맺어 낳은 불륜의 씨다. 애초에 태어나서는 안 되는 존재다. 이름도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이름을 섞어서 지었다. 

이렇게 태어난 헤르마프로디토스의 운명도 기구해 살마키스(Salmakis)라는 님프의 요정이 자신의 구애를 거부하는 헤르마프로디토스를 껴안고 ‘둘이 한 몸이 되게 해달라’고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기도하자 정말 ‘자웅동체(雌雄同體)’ 인간이 돼버렸다고 한다.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일반적으로 자웅동체를 가리키는 학명(學名)이기도 하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암수를 섞어버린 이 엽기적인 존재는 이질적인 물질들을 혼합해 금을 만들고자 했던 과학의 경계를 뛰어넘는 중세 연금술사들의 신으로 추앙받기도 하지만, 또한 나약하고 아무 정체성 없는 무기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동물은 암수로 구분된 자웅이체(雌雄異體)다. 이는 자손이 암수 유전자를 각각 절반씩 물려받음으로써 유전적으로 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을 높게 만들어 새로운 환경과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 자연의 신비로운 장치다. 

자웅동체의 동물들은 지렁이·달팽이 등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보이는 하등동물들밖에는 없다. 동물들과 달리 대부분의 식물은 자웅동주(雌雄同柱)지만 이 식물들도 자가수정을 피하기 위해 암술과 수술이 최대한 거리를 둔다.

어떤 꽃이든 구조상 다른 개체로부터 꽃가루를 받아서 수정하게끔 만들어져 있다. 자가수정은 가루받이가 원활하지 못한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이뤄지는 최후의 수단일 뿐이다. 

지난 몇달 동안 ‘블랙홀’처럼 우리사회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던 총선이 끝났다. 역대 많은 총선들이 그래 왔듯이 이번 총선도 대통령을 보유한 집권당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끝에 참패를 당한 모양이다.
 

 

자연의 섭리대로 자웅이체가 돼야 할 대통령의 정부와 집권당이 ‘당정일체(黨政一體)’라는 이름으로 자웅동체가 돼 헤르마프로디토스와 같은 민망한 모습을 보인 결과인 듯하다. 동물들이라면 지렁이가 보이는 무기력함이고, 식물들도 최후의 수단으로나 동원하는 ‘자가수정’만을 거듭한 결과인 듯하기도 하다. 

아마 그리스의 조각가들도 무척 난감해하면서 작업했을 듯한 헤르마프로디토스의 모습은 비너스의 몸에 남성의 생식기가 달린 난감한 모습이다. 자연의 섭리대로 분리된 암수가 ‘한 쌍(雙)’이 되지 못하고 ‘한 몸’이 돼버린 헤르마프로디토스와 같은 집권당과 정부의 모습은 그처럼 난감하다.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와 ‘한 쌍’이 된 집권당이라면 불패(不敗)가 당연할 텐데, 정부와 집권당이 헤르마프로디토스처럼 ‘한 몸’이 돼버리면 필패(必敗)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주인공은 본래의 자아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몸에서 더든을 내쫓으려 필사적인 노력을 하지만 더든은 주인공의 몸에서 나가기를 한사코 거부한다. 자웅동체가 됐던 집권당이 항상 막판에 되풀이해왔던 대통령의 탈당·출당이라는 민망한 모습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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