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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파이트 클럽 (1)
주류문화에 저항하는 컬트 무비 ... 리더에 맹목적인 영화 속 사람들
美 트럼프 지지자도 마찬가지 ... 韓, 컬트적 지지자 유독 많아
가족 · 친구보다 정치인 더 신뢰 ... 컬트적 숭배, 공공 이익에 반해

젊은이들이나 일부 특정 취향의 관객들로부터 ‘숭배’에 가까운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독특한 영화를 ‘컬트 무비(cult movie)’라는 장르에 묶어 집어넣는 모양이다.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 감독의 ‘파이트 클럽(Fight Club·1999년)’은 가장 성공적인 컬트 무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컬트 무비는 기존의 지배적인 주류문화와 사회질서에서 이탈하거나 저항하고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주류문화의 관점에서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불온한’ 영화일 수도 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무기력증에 빠진 한 남자가 자기 애인의 어머니와 불륜에 빠지는 내용을 담은 ‘졸업(Graduation ·1967년)’이 1960년대 미국 사회에 충격을 가하고 숱한 논란에 불을 지폈던 1960년대의 대표적인 컬트 무비라면,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은 졸업만큼이나 충격을 안겨준 컬트 무비로 기록된다.

‘햇살 가득하고 번듯한 곳’이 주류사회라고 한다면 ‘어둡고 칙칙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은 비주류들의 공간이다. 영화 파이트 클럽의 모든 장면들은 어둡고 칙칙하고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전개된다. 

‘파이트 클럽’의 창시자이자 리더는 비누를 만들어 파는 타일러 더든(Tyler Durden · 브래드 피트)이란 남자다. 파이트 클럽 회원들은 밤에만 모인다. 그들이 모이는 장소는 어둑한 변두리 술집 버려진 지하공간이다. 

그들이 어두운 지하공간에서 벌이는 짓들은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 불가능할 정도로 엽기적이다. 매일 밤 그곳에 모여 더든의 주재 아래 아무 이유 없이 짝을 이루어 둘이 죽기살기로 맨손 난투극을 벌인다. 응급실에 실려가야 할 정도로 입술이 터지고 눈이 찢어지고 피떡이 되도록 싸운다. 그런데 아무런 적개심이 없다. 싸움이 끝나면 서로 두 손을 맞잡고 껴안고 너무나 만족스럽고 행복한 포옹을 한다. 

파이트 클럽 회원들은 이런 엽기적인 싸움질이 아니면 더든의 지시에 따라 지방 흡입 시술을 하는 병원 폐기물 처리장에 잠입해서 비만환자들 몸에서 추출한 피와 뒤범벅된 기름덩이를 훔쳐서 비누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그 지방을 원료로 폭발물을 만들어 아무 이유 없이 밤거리에 나서 번듯한 브랜드 매장들을 폭파시키곤 한다. 

이들은 더든의 지시에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으로 복종한다. 무기력에 빠졌던 회원들은 파이트 클럽에서 더든이라는 지도자의 지시와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자신들이 살아있다는 희열을 느낀다. 이들은 더든이라는 그들 자신도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을 ‘컬트적’으로 숭배하고 따른다.
 

 

이들은 파이트 클럽에서 누군가와 ‘계급장 떼고’ 맨주먹 격투를 벌이면서 위축됐던 자신을 회복한다.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숭배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또한 자신들을 소외시킨 사회질서를 파괴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희열을 느낀다. 

요즘 많은 미국인들이 또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보에 불안한 시선을 보낸다. 트럼프의 정치 행태와 그의 지지자들의 모습에서 많은 컬트적인 모습들을 발견하면서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최근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교수 베타니 브룸(Bethany Brum)이 하버드 대학신문(Harvard Gazette)과의 인터뷰에서 정리한 컬트 숭배자들의 특성이 흥미롭다. “컬트 숭배자들은 연령별로 다양할 수 있지만, 대체로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이다. 젊은이와 노인들 중에서 컬트 숭배자가 많은 것은 이들이 사회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는 취약한 사람들은 ‘거대한 힘’의 일부로 편입돼 위대함을 느끼고 싶어 한다.”

또 다른 심리학자 호건 셔로(Hogan Sherrow)가 USA투데이에 기고한 글에서 분석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컬트적 행태도 흥미롭다. “이들은 트럼프를 절대적으로 믿는다. 2023년 미국 CBS 뉴스의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지지자 중 71.0%는 트럼프가 하는 말을 신뢰한다고 답했다. 이는 가족이나 친구(63.0%), 보수 매체(56.0%), 종교지도자(42.0%)의 신뢰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어떤 정치인을 가족보다 더 믿는다면 이것은 정치적 지지가 아니라 ‘컬트적 숭배’다. 이쯤 되면 트럼프가 무슨 말을 해도 믿는다. 1. 이들은 트럼프가 이민자들이 미국인들보다 흉악범죄를 더 많이 저지른다고 하면 그대로 믿는다.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는다. 2. 이들은 트럼프 주장을 비판한 내용의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은 채 비판자를 조롱한다. 3. 이들은 트럼프 지지가 곧 애국이라고 믿는다. 그러다보니 이들은 트럼프가 의사당을 점거하라는 ‘사인’만 보내면 성조기를 흔들면서 국회의장실을 점거해버린다. 
 

 

마치 ‘지도자’ 더든이 파이트 클럽 회원들에게 ‘이 도시를 파괴하라’는 지시를 내리면 이유도 묻지 않고 무조건 밤거리에 폭발물 들고 몰려나가 닥치는 대로 폭파해 버리는 모습만큼이나 엽기적이다. 파이트 클럽 회원들이나 트럼프 지지자들이나 모두 대단히 컬트적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컬트적 성향을 바라보는 미국 교수님들의 걱정을 듣다보면, 낯선 미국의 이야기들인데도 왠지 생소하지 않고 무척이나 익숙한 모습들이다. 미국은 트럼프의 컬트 정치가 처음이라 모두들 당황한 듯하지만, 우리는 ‘친박 연대’ ‘형광등 100개 아우라’에서 시작해서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 ‘개딸’ 등 특정 이념이나 정책도 아닌 특정인을 향한 광신교 집단과 같은 컬트 정치에 단련된 덕분인지 덤덤하다. 

영화 속에서 더든을 신봉하고 절대복종하는 파이트 클럽 회원들은 그래서 행복해졌을까. 트럼프를 결사옹위해서 대통령직에 복귀시키면 그 지지자들은 과연 행복해지고 미국도 그들의 슬로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처럼 정말 다시 위대해질 수 있을까.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를 뿜어대면서 ‘친박’을 하고,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하게’ 했으며, ‘친윤’ ‘개딸’ 등으로 대표되는 특정세력이 당을 쥐락펴락하게 만들어놓은 우리의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을까. 

하버드 대학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베타니 브룸 교수가 이 질문에 미리 대답을 해주는 듯하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특정 정치인를 향한 ‘컬트적 지지자’들의 행태는 너무나 명백히 그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국가와 사회의 이익에 반(反)한다는 것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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