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ㆍ3 내란 사태가 미치는 파장은 전방위적이다. 금융ㆍ외환 시장이 시시각각 요동친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정치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국가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말 특수를 기대했던 음식점ㆍ숙박ㆍ여행업계는 고객들의 예약 취소로 한숨을 쉰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경계한다. 주가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튿날이자 국회의 계엄령 해제요구 결의안 의결 당일인 4일보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보이콧에 따른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된 이후 열린 6일 증시에서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 탄핵 정국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등의 불확실성이 커지면 외국인들이 투자금을 회수할 위험도 커진다.
원ㆍ달러 환율 움직임도 불안하다. 계엄 선포 전 1402원이던 환율은 계엄 선포 직후 한때 1440원대로 급등했다. 이후 1420원대로 내려가던 환율은 12일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는 사법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 “탄핵하든, 수사하든 이에 당당히 맞설 것”이라는 내용의 담화를 하자 1430원대로 뛰었다.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은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이나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 당시보다 심각하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기각 때 환율은 1160원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인용 당시 환율이 1150원대였던 반면, 최근 환율은 1430원대다. 원ㆍ달러 환율 급등으로 인해 외화 부채가 많은 배터리 업체와 항공사들, 원자재 수입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계엄ㆍ탄핵 정국으로 인한 정치 불안이 경제위기로 전이될 수 있다는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려댄다. 내수 침체 장기화에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앞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중국 경제 둔화 등 외부 악재가 겹쳐 고용과 성장률 지표가 악화하고 있다.
11월 취업자가 전년 동월 대비 12만3000명 증가했으나 수출과 직결된 제조업 취업자는 9만5000명 줄며 1년 7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내수와 직결된 도소매업 취업자도 8만9000명 줄었다. 올 들어 11월까지 부도난 건설업체가 27곳으로 2019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고, 11월 건설업 취업자가 9만6000명 줄었다.
한국의 정치상황 급변과 후폭풍에 미국 등 주요국들이 불안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정국 혼란과 불안이 장기화하면 경제 상황은 더 악화할 것이다. 주요 교역국에 한국의 경제 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확인시키는 일이 긴요하다.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11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화상 면담을 한 것은 적절했다.
정국 혼란 속에도 기업인들이 움직이고 있어 다행이다. 한국과 미국 기업인들이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만나 경제동맹을 재확인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계엄 사태 이전에 준비한 행사(제35차 한미재계회의)이긴 해도 4대 그룹을 포함해 역대 최대 규모의 민간 사절단 40여명이 참여했다. 트럼프 2기 정부 인사와도 만나 한국 기업의 대미(對美) 투자가 미국 내 생산ㆍ고용에 기여하는 점을 인식시키고 소통했다.
12월, 새해 경영계획을 세울 시점이다. 정치 불안이 이어지면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는다. 변동성이 큰 환율에 경영계획을 다시 짜고, 조세ㆍ산업정책이 바뀌는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수출과 해외 투자 계약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해외 파트너의 동향을 파악해야 하는 등 챙길 일이 많아진다.
경제부처가 더 부지런히 뛰어야 한다. 기업 현장을 찾아 정국 혼란 여파로 수출계약 취소나 대금 미지급, 수출물품 선적 차질 등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년 3월로 예정된 24조원 규모 체코 원전 계약과 K2 전차 폴란드 추가 수출 협상 등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살펴야 한다. 반도체 등 대규모 설비투자에 필요한 인허가와 세제 특례, 전기ㆍ용수ㆍ도로 등 인프라 지원도 지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내년 예산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여야가 제대로 협의하지 않은 채 야당이 단독으로 감액한 예산안이 처리됐다. 내수 부진 장기화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은 만큼 여야정이 속히 민생과 경제 회생을 위해 필요한 추가경정예산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치 불안과 불확실성을 해소하기까지 적어도 몇달이 소요될 것이다. 그때까지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면 금융ㆍ실물 경제위기와 기업의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 정권은 임기가 있어도, 경제는 한순간도 멈춰선 안 된다.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대거 참여한 MZ세대 젊은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물려줄 텐가.
정치가 후퇴한 마당에 경제마저 흔들리면 국가적 불행에 빠져들 수 있다. 여야 정당과 정부가 ‘여야정 비상경제협의체’를 조속히 가동해 대내외적으로 한국의 경제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관리된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아울러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근원인 기업을 살리는 정책 추진과 입법에 힘을 쏟아야 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