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ㆍ3 내란 사태 후 경제지표가 온통 빨간불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정치적 혼돈과 불안이 경제난을 가중시켰다. 기업들이 새해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투자심리가 냉각됐다. 소비심리도 얼어붙어 연말ㆍ성탄절 특수를 앗아갔다. 그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ㆍ소상공인과 서민들 삶은 더 팍팍해졌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4로 11월 대비 12.3포인트 급락했다. 코로나19가 극심했던 2020년 3월(-18.3포인트)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실제로 12월 첫주 신용카드 이용금액이 그 전주 대비 26.3% 줄었다. 연말 특수를 기대하는 12월 초순 카드 이용액이 이렇게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수 침체 장기화로 힘들었던 자영업자들은 한계상황으로 내몰렸다. 여기저기서 빚내 생활하는 취약 자영업자의 3분기 대출 연체율이 11.55%로 치솟았다. 2013년 3분기(12.02%) 이후 11년 만에 최고치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비상계엄ㆍ탄핵 정국 등 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기업의 경기 전망도 암울해졌다. 한국경제인협회가 매출액 상위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년 1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84.6으로 12월 BSI (97.3)보다 12.7포인트 급락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강타했던 2020년 4월(-25.1포인트) 이후 최대 낙폭이다.
BSI는 기준치 100보다 낮을수록 경기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BSI는 2022년 4월(99.1) 100 밑으로 내려간 뒤 34개월 연속 기준치를 밑돌았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전국경제인연합회 시절인 1975년 1월 BSI 조사를 시작한 이래 50년 만에 최장 연속 부진 기록을 경신했다. 종전의 최장 부진 기록은 2018년 6월∼2021년 2월(33개월)이었다.
게다가 원ㆍ달러 환율이 치솟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수준이 됐다. 환율은 12ㆍ3 사태 이후 속절없이 1450원대에 고착화한 모습이다. 26일에는 1460원선도 뚫었다. 내년 초 1500원대 전망까지 나온다.
환율 상승은 원유ㆍ천연가스와 식료품 등 수입물가를 자극해 경기 침체 속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사료 값이 오르고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소ㆍ돼지ㆍ닭 등 축산물 가격이 상승한 여파로 계란 한판 가격이 3년여 만에 7000원을 오르내린다. 장바구니 물가에 다시 비상등이 켜졌다.
세수가 펑크 나고 내수가 침체한 상황에서 근근이 경제에 숨통을 틔워온 수출마저 증가율이 정점을 찍고 내리막이다. 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내년에 잠재성장률(2% 수준)을 밑도는 1%대 저성장은 물론 경제가 장기 침체 국면에 빠져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작금의 경제 불안은 비상계엄 선포와 그에 따른 대통령 탄핵 등 정치 혼란에 기인한 것이다. 새해 벽두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하며 더욱 노골적인 미국 우선주의와 고율 관세 부과 등으로 경제안보 및 정치ㆍ외교 안보를 위협하는 압박 카드를 들이밀 판인데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무방비 상태다. 국가의 현재와 미래가 암울한 데다 복합적인 대외 리스크가 엄습해 기업들은 경영계획을 짜기 난망이다. 가계도 딱 필요한 것만 구입할 뿐 마음 편히 소비하기 어렵다.
12ㆍ3 사태 이후 국민의 일상적 삶이 망가졌다. 천신만고 끝에 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지만, 보름이 넘도록 당리당략에 골몰하는 정치판은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걱정과 불안이 가시지 않는다. 다사다난했던 2024년을 보내고, 내년에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새해 효과’를 맞이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내년도 예산의 75%를 상반기에 배정해 조기 집행하기로 했다. 여야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재정 확대에 공감하면서도 연초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과 내년 5~6월 검토론을 펴는 국민의힘이 맞서 있다. 입으로만 ‘여야정협의체’ 구성을 외치지 말고, 대화하고 타협해 중소기업ㆍ자영업자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지원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여야정협의체는 경제와 정치 현안을 분리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 투자세액공제 연장ㆍ밸류업 세제 지원 등 중단된 경제정책 협의를 재개하고, 반도체특별법ㆍ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 등 경제 살리기 법안은 조속히 처리함으로써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이려 애쓴다는 신호를 나라 안팎에 보내야 한다.
예측 가능한 탄핵 스케줄로 금융ㆍ외환시장 변동성을 진정시키고, 기업ㆍ가계로 하여금 심리적 공황 상태를 벗어나게 해야 한다.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과 내란ㆍ김건희특별검사법 문제를 놓고 논란을 벌일 때가 아니다. 한국의 시스템이 탄탄하고 정상 작동한다는 점과 건강한 민주주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대외신인도를 올리는 최선의 방법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