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사태가 사회 전반에 충격을 주고 국가 이미지를 손상시켰다. 비상계엄 선포는 고용시장에 직격탄을 가했다. 지난해 12월 취업자가 전년 동기 대비 5만2000명 감소했다. 월별 취업자 감소는 코로나19 사태가 극심했던 2021년 2월(-47만3000명) 이후 3년 10개월 만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2월 이후 15년 만의 일이다.
침체기에는 고용 취약계층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지난해 12월에도 상용직은 증가한 반면 일용직은 15만명 감소했다. 실업자가 111만5000명으로 17만1000명 늘었다. 실업률도 3.8%로 0.5%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청년층 실업률은 5.9%까지 올라갔다.
지난해 연간 고용 실적도 저조했다. 취업자 증가폭이 15만9000명으로 2023년(32만명)의 절반에 그쳤다. 정부 목표(23만명)에 한참 모자랐다. 장기화하는 내수 부진을 방치하고 이렇다 할 일자리 창출 정책을 펴지 못한 결과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12월 1394.7원에서 1472.5원까지 치솟았다. 한달 새 원화가치가 5.3% 급락했다. 주요 30개국(G30) 중 전쟁 와중인 러시아(-6.4%) 루블화에 이어 두번째로 하락폭이 컸다. 달러화 강세가 세계적 현상이라지만 중국 위안화(―0.8%)·멕시코 페소화(―2.2%)보다 큰 통화가치 하락은 그만큼 계엄의 충격이 컸다는 방증이다.
계엄과 정국 불안에 놀란 외국인 ‘셀 코리아’도 코로나 사태가 극심했던 2020년 3월 이후 4년9개월 만에 최대였다. 지난해 12월 외국인의 국내 증권(주식+채권) 투자자금은 38억6000만달러 순유출을 기록했다.
환율 급등은 수입의존도가 높은 석유류와 원자재의 가격 반등과 소비자물가 상승을 초래했다. 설 성수품 수요와 맞물려 체감물가를 끌어올렸다. 고환율이 지속되면서 기업의 투자 및 수출입 리스크도 커졌다.
계엄 선포 이전인 지난해 1∼11월 의류, 자동차, 가전, 식품 등의 소비가 동반 위축되면서 국내 소비는 전년 동기 대비 2.1% 감소했다. 2003년 신용카드 사태 이후 21년 만에 최악이었다. ‘소비 절벽’ 수준이다.
이 통계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지난해 12월 신용카드 이용금액은 전달 마지막 주 대비 9.9% 감소했다. 계엄 한파와 정국 불안에 소비자는 지갑을 닫고,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보류하고 있다.
내란 사태 이후 한국 경제는 원·달러 환율 급등과 고물가, 다른 한편으론 소비심리 위축과 내수 침체가 문제였다. 통화당국 입장에선 기준금리를 내리자니 환율을 자극할까 신경 쓰이고, 그냥 두자니 경기침체 장기화가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고심하던 한국은행이 16일 올해 첫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연 3.00%로 동결했다.
27일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연휴가 엿새로 늘었지만, 설 경기는 예전 같지 않다. 설 차례상 화두는 정치 의제일 것이다. 현직 국가원수를 수사기관에 데려오는 일이 충돌 없이 이뤄졌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 체포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 원칙을 실현하고 대한민국이 법치가 작동하는 나라임을 보여줬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여부 결정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정국은 조기 대통령선거 국면으로 전환되는 모습이다. 여당 국민의힘과 야당 더불어민주당 지지율 차이는 오차범위 이내다.
관건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 여당 후보를 지지하느냐’ ‘정권 교체를 위해서 야당 후보를 지지하느냐’는 선택의 문제다. 관련 여론조사 데이터가 속속 발표되고 국민은 물을 것이다. 대통령의 책임과 자질론에 대해서.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417 대 379. 탁구선수 출신인 유승민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이 대세론 속 3선을 노린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을 38표 차이로 꺾었다.
유승민 당선인은 ‘모든 체육인을 만나겠다’며 지역 체육현장과 비인기 종목 선수들을 찾아갔다고 한다. 선수와 지도자 중심의 바닥 표심이 ‘체육계 부조리’와 관련돼 있었다는 지적을 받은 이 회장보다 ‘체육계 변화’를 내세운 유 당선인으로 기울었다는 분석이다. 체육계의 선택이 여야 정치권에 시사하는 점은 적지 않다.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선 ‘할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탄핵 정국에 갇힌 대한민국은 그만큼 어려운 상황이다. 정치 리스크가 환율을 흔들고, 떨어진 원화가치는 물가를 자극하면서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물가상승 속 경기침체)에 빠져들 수 있다. 고용이 감소하면 가계소득이 줄고, 이는 다시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를 침체시키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민생경제와 국격 회복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야정 지도자들은 협의체를 진정성있게 가동해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해야 마땅하다. 고용 취약계층 보호 방안을 강구하고,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합의해 내수 활성화에 나서야 한다. 탄핵 정국 민심을 오독오도(誤讀誤導)하지 않고, 제대로 읽고 할 일 하는 쪽이 국민 선택을 받을 것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