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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SNS 민심에 제주시, 방향선회 ... 시민의견은 왜 안물었나?

 

"그 많던 야자수는 다 어디 갔나요?" 

 

"다 뽑았대요. 그런데 또 심는대요."

 

제주시 탑동로를 걷던 관광객과 상인의 대화다. 제주시는 지난 3월부터 이 곳 가로수도 심어졌던 워싱턴야자수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방향을 틀었다.

 

지금 탑동로에서는 야자수를 다시 심는 '재식재' 작업이 한창이다. 그 사이 도민 혈세 3억원 가까이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사실 워싱턴 야자수가 제주와 인연을 맺은 건 오래다. 1982년부터 제주도내 주요 도로와 관광지에 심어져 그동안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이색 풍경으로 자리를 잡아왔다. 한때 3500여 그루가 도내 곳곳에서 자라 제주의 또 다른 상징이 되기도 했다.

 

아열대 식물인 워싱턴 야자는 멕시코, 북아메리카의 애리조나주, 뉴멕시코주, 콜로라도주 등지에 주로 분포한다. 줄기는 하나로 곧고 원기둥 모양이며 회갈색이 난다. 잎은 꼭대기에 빽빽이 나며 부챗살처럼 돼 있다. 수명은 80~250년 이상이고 추위에 비교적 강해 제주지역 등에서 노지월동이 가능하다. 

 

최대 25m 이상까지도 자라 제주 곳곳에 심어진 워싱턴 야자들도 20m를 훌쩍 넘는 크기로 자랐다. 바람에 대한 저항성이 아주 강한 편인 수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주의 거센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는 일이 속출해 안전상의 문제가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제주시는 올해 탑동 이마트에서 제주항 임항로까지 이어지는 1.2㎞ 구간에 심어진 야자수 117그루를 제거하고 이팝나무로 교체하는 수종갱신 사업에 약 2억8700만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해마다 고가의 장비로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비효율적 수종'이라는 이유였다. 유지관리 비용 또한 수천만원에 이른다.

 

시는 이런 점을 들어 "도심 가로수로 적합하지 않다"며 제거에 나섰다.

 

 

그러나 '현장'은 다르게 움직였다. 탑동 일대 야자수가 사라지자 인근 상인들과 도민들은 "제주의 상징을 왜 없애느냐"며 반발했다.

 

"야자수 없애면 서울 도로랑 뭐가 다르냐", "탑동엔 야자수가 있어야 그림이 된다"는 불만이 이어졌다. 시는 서둘러 도시숲심의위원회를 열고 삼도2동·건입동 주민 설명회를 열었다. 

 

그 결과 계획은 전면 수정됐다. 탑동사거리에서 옛 라마다프라자호텔까지 구간에는 워싱턴야자수 68그루를 다시 심었다. 이미 제거했던 구간에 다시 나무를 심은 것이다. 반면 김만덕객주에서 탑동사거리 구간은 기존 계획대로 이팝나무를 심었다.

 

이 과정에서 들인 추가 비용은 명확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야자수 한 그루를 운반하고 이식하는 데 드는 비용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이다. 이미 제거한 나무 일부는 애월 고내리 레포츠공원과 곽지해수욕장 등 다른 관광지로 옮겨졌고, 그 역시 모두 혈세로 충당됐다.

 

단 한 번의 공사로 끝낼 수 있었던 사업이 도민 반발과 행정의 번복으로 '두 번 예산'을 쓰게 됐다.

이 사업 전체에 투입된 예산은 약 3억20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 중 상당수가 사실상 '되돌리기' 비용으로 쓰인 셈이다.

 

 

더 심각한 건 '행정 신뢰'다. 애초에 지역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수종을 바꾸려 했다가 여론에 떠밀려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삼도2동 도민 정모씨는 "이게 무슨 '긴급 재난 상황'도 아니고 나무 뽑고 심는 데 계획도 절차도 없이 예산부터 쓰는 게 말이 되느냐"고 쏘아붙였다.

 

도내 조경 전문가 역시 "수종 교체는 최소 10년 단위의 계획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반복되는 공사는 경관 혼란은 물론 예산 낭비를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제주시는 "SNS에서 '대한민국의 LA'. '대한민국의 하와이'로 불릴 만큼 제주의 야자수가 상징적 경관 자원으로 인식된다"며 지역성과 관광 가치를 반영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 설명은 애초 계획대로 이팝나무가 식재된 구간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정작 시민이 묻고 싶은 것은 단 하나다. 왜 처음부터 듣지 않았느냐는 것.

 

주민이 반발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계획을 뒤엎고, 그 뒤엔 '심고 뽑고 다시 심는' 소모적 행정이 반복된다면 결국 그 대가는 도민이 치르게 된다.

 

이번 일로 드러난 사상 초유의 '행정 유턴'은 나무 한 그루의 문제가 아니다. 행정은 뿌리를 내려야 할 곳에 내리지 못했고, 대신 돈만 쏟아부었다. 남은 건 다시 심은 야자수가 아니라 정책 신뢰의 붕괴와 허공으로 날린 세금에 대한 원망이다. 야자수는 되돌아왔지만 오락가락 행정에 대한 시민불신은 더 커지고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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