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코코넛 열매를 엮어 만든 작은 배에 올라서 조류를 따라 벼랑에서 멀어지고 있다. 짙푸른 바다는 거친 파도로 절벽의 바위들을 때려대고..... 나지막하게 음악이 흐른다. 영화 ‘빠삐용(Papillon, 1973)’의 마지막 장면이고, 음악은 영화의 주제곡이다. 억울하게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앙리 샤리에르(스티브 맥퀸)는 감옥에서 가슴에 새겨진 나비 문신 때문에 ‘빠삐용’이라고 불린다. 프랑스 말로 빠삐용은 나비라는 뜻이다. 위조지폐범인 루이 드가(더스틴 호프만)와 함께 둘은 프랑스령이면서 적도 부근에 있는 절해고도의 감옥에 갇힌다. 다혈질인 빠삐용은 탈옥을 여러 번 시도하다가 독방에 갇히기를 반복한다. 시간이 지나 몸도 허약해지고 나이가 든 두 사람..... 드가는 섬을 빠져나가기를 포기하고 섬에 안주하고자 하지만, 빠삐용은 끝내 코코넛 배가 벼랑에 부딪히지 않는 법도 알아내어 탈출에 성공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두 번째 탈출을 시도하다가 섬의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도움을 요청하게 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 마을의 대장은 한센병이 심해 손가락은 잘린 채로 헝겊으로 감겨 있고, 어두운 움막 안에서 살짝 비춰지는 얼굴은 흉
2017년에 만들어진 ‘철의 심장을 가진 남자(The Man with the Iron Heart)’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당시, 독일군 고위 장교 하이드리히 암살사건을 다룬다. 전쟁 중의 내용을 다루면서 영화는 감염병 역사의 중요 순간을 다루면서 지나간다. 영화에서 의학의 내용을 꼭 집어서 소개하는 필자로서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소개해보려고 한다. 1942년 5월 어느 날, 프라하 교외에 있는 대저택의 넓은 정원이 보이고, 맑은 햇살 속에 분수가 뿜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평화롭게 뛰어노는 가운데 한 남자가 저택 안으로 들어간다. 하켄 크로이츠(나치 최고의 영예인 철십자 훈장)를 왼쪽 가슴에 단 그는 잠시 후 컨버터블(convertible)을 탄 채 프라하의 복잡한 시내를 지난다. 커브를 돌다가 속도가 줄어지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정체 모를 남성이 나타나 차를 막고 기관총을 들이댄다. 그리고 영화는 과거로 돌아간다. 때는 1929년의 독일 어느 해군기지. 해군사관학교를 거쳐 해군 장교가 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제이슨 클락)는 문란한 사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군사법정에서 심문을 받고는 불명예제대를 하게 되었다. 이후 파티장에서 우연히 독일 명문가 집안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입니다. ‘영화관에서 만나는 의학의 세계’는 영화 속에서 드러난 의학 이야기를 다룹니다. 감염병의 역사와 감염 질환 이야기, 정신의학뿐만 아니라 여러 질병들을 영화 속에서 찾아내 소개합니다. 오랫동안 지역 의료현장에서 진료를 하며 보건의료 정책 및 교육 활동을 하는 고병수 의사가 필진으로 나섭니다. 많은 애독바랍니다. /편집자 주 수천 년 동안 인류를 괴롭히던 감염병이라고 하면 두창(천연두), 중세 때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 콜레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오래도록 눈으로 볼 수 없어서 그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뭉뚱그려서 역병(疫病)이라고 불렀다. 최근에는 1918년 스페인 독감 정도가 전 세계를 떨게 만든 것이었을 뿐, 세균학이 발달하고 항생제가 넘쳐나는 근래에 “그깟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무슨 문제냐”고 우리 인류는 자신했다. 게다가 사스(SARS), 메르스(MERS),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렸어도 잠시 그때뿐이었던 기억을 해보면 과거처럼 대규모 감염병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공상과학 영화나 상당히 과장된 드라마가 아니면 생각할 수 없던 문제로 받아들였다. 1995년에 만들어져서 상영될 때만 해도 '상상
▲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코로나19 백신피해자들과 함께하는 행사에서 백신 접종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문제점과 대안 관련 토론이 펼쳐졌다. 2021년 11월 10일 오전 10시. 필자는 국회에서 열린 코로나19 백신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그분들의 요청으로 피해자대책협의회와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 필자가 속한 건강정치위원회 주관으로 행사를 열었다. 이 글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색을 보이기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처지와 목소리가 너무 간절하고 처절했기 때문에 글로 담는다는 점을 먼저 알린다. 코로나19 피해자들의 목소리 필자는 피해자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상황을 이해하는 1부 행사의 사회를 맡았고, 2부 순서에서는 관련 토론자로 참여해서 현재 코로나19 백신 접종 피해자분들에 대한 정부의 문제점과 대안을 발표했다. 우리는 신문이나 방송에서 매일 코로나19 백신 피해 소식을 접한다. 멀쩡하다가 접종 후 갑자기 사망한 고등학생, 건강하던 젊은이, 나이가 있는 부모님들 가리지 않고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거나 사망했다는 이야기들. 하지만 언론에서 다뤄지는 내용은 거기까지다. 심도있게 분석하고 추적하는 기사는 없다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중증환자들이 입원 중인 특수(음압)중환자실에서 간호사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황당하다. 지난 25일 제주도청이 한 일이다. 솔직히 정말 멍청한 일을 저질렀다고 본다. “신종 코로나19 확진자가 줄어 간호사 필요가 없어서 출근 안 하셔도 됩니다.” 이것은 식당이나 카페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다름 아니라 코로나19 대응을 위해서 채용하기로 했던 간호사 8인에게 제주도청에서 전화 한통으로 끝낸 말이다. 식당이나 카페 아르바이트분들에게도 이런 식으로 일방통보를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방역 전선에서 필요한 전문 인력들을 이런 식으로 대접했다는 것은 단순히 제주도청 담당자의 실수이거나 무지라고 보이지 않는다. 제주도지사나 방역당국 간부들의 안일함이라고 본다. 코로나19 최전선의 일꾼들 총칼을 쓰는 전쟁터라면 당연히 전선은 아군과 적군이 마주치는 현장이 될 터이다. 하지만 감염병과의 전쟁에서는 전후방이 따로 없다. 전세계 팬데믹 상황에다 지역 전체에 퍼진 경우인 지금은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유행지역이다. 그래서 각 공공기관, 학교, 병원
▲ 제주국제공항에 설치된 선별진료소에 캐리어를 끌고 온 입도객들이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기 위해 줄 서고 있다. 집에 들어오니 자정이 다가오는 밤 11시 30분. 글을 쓰는 2020년 크리스마스도 거룩하지만 고요하게 지나가고 있다. 내가 제주공항 워크스루 선별진료소에서 입도객들 진료 및 검사를 시작한지 벌써 수개월이 지나간다. 공항 주차장 한 편에 만들어진 컨테이너 선별진료소에서 밤 당직을 마치고 헤어지는 요원분들은 3, 4월이 지나면 코로나19 사태가 해소될 것처럼 생각했다는데 벌써 1년이 다가온다고 지난 몇 개월을 돌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언제까지 갈지 걱정의 말들을 했던 것이 집에 온 지금도 머리를 맴돈다. 제주공항 워크스루 선별진료소는... 총선 끝나자마자 대구 의료지원 다녀오고 좀 쉬고 있으려니 제주도의사회에서 연락이 왔었다. 제주공항 코로나19 선별진료소 의사 인력이 부족하니 협조해달라고 해서 진료팀에 결합해서 지금까지 온 것이다. 지난 2월에 대구에서 신천지 종교집단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폭발하자 제주도에서는 3월쯤 서둘러 공항에 선별진료소를 설치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메르스 사태 때처럼 금방 끝날 것으로 보
▲ 보건소 직원이 코로나19 검체 체취를 하고 있다. [뉴시스] 어제(15일) 제주도는 코로나-19 급증세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그것도 3일 지난 18일 0시부터 한다. 드림타워 개장 날짜와 관련설 등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다만 도민들에게는 멈추라고 하면서 정작 제주도 행정은 임무를 잘하고 있는가 살펴보고자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능사는 아닌데... 제주도의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 2단계 격상은 전국적으로 1000명 수준의 환자 발생 상황과 제주도에서도 거의 매일 10명 안팎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의 입장에선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은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이 없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도민들은 마스크 착용, 손씻기뿐만 아니라 모임 등을 자제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2단계, 2.5단계, 3단계 격상은 필요에 따라 적용할 수 있다. 문제는 시민들에게만 꼼짝 말라고 강제하면서 정작 도정은 자신들의 역할을 잘하고 있을까? 감염병 시대에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행정의 역할과 시민들의 역할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시민들은 최대한 주의하면서
▲ 제주국제공항에 서 있는 돌하르방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는 지난 11월 1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에서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대비한 대응전략으로서 세 가지를 강조했다. 환자 발생 조기 차단, 감염병 대응 인프라 구축을 통해 치명률 최소화, 방역과 일상생활 공존을 중요하게 얘기했고,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 방안 등을 발표하였다. 인류가 겪은 몇 차례의 감염병 대란 중 하나이면서 우리 시대 초유의 코로나19 침공이 장기화함에 따른 적절한 전략 방침을 발표한 것이고, 발표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하는 바이다. 비교적 상세하게 만들어진 발표였기에 이 참에 제주도 역시 발 빠른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라 여기면서 제언을 하고자 한다. 'With Corona' 시대의 제주는? - 지나친 규제나 격리 보다는 생활 속 방역으로 - 두려워하되 피하지 말기 - 일상생활을 안심하고 누릴 수 있게 보건의료 강화 - 코로나 위기를 제주 경제 강화 계기로 신
▲ 소아과에 독감 예방접종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시스] 독감예방 백신접종과 연관성이 있을 수 있는 사망사고가 현재 12명째다. 제주에서도 근래에 없었던 사망 사례가 한 건 생겼다. 감염병에 대항하기 위해 필요한 접종을 적극 권하는 필자로서도 안타까울 뿐이다. 의사로서 며칠의 추이를 관찰해 본 결과 독감 접종을 일시로 멈춰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가장 큰 이유는 도민들이 불안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료실에 있으면 독감 접종해야 하는지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을 정도로 도민들은 아주 걱정이 크다. 이럴 때는 안전이 우선이며, 그를 통해 도민 안심이 먼저라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계속 강조했듯이 현재 코로나19 국면에서 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독감이 유행하지 않을 예상이라면 굳이 무리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접종할 필요가 없다. 이번 독감 접종의 안전성이 어느 정도 확인됐을 때 시행해도 늦지 않다. 독감 접종 부작용 신고가 최근 10년 사이에 유독 많은 이유도 잘 살펴야 할 것이다. 10월 20일 기준으로 전국 431건으로, 전 해에 비해서도 2배 이상 많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접종으로 인한 사망은 대부분 &lsquo
▲ 소아과에 독감 예방접종 안내문이 붙어있다. [뉴시스] 독감(인플루엔자)의 계절이 오고 있다. 보통 한국에서 유행하는 독감은 A형 인플루엔자로, 가을 중반을 지나 쌀쌀해지는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2월까지 기승을 부린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3, 4월 A와 B형이 혼재되어 다시 유행하게 된다. 이제는 독감 걱정에 코로나19라는 신종괴물까지 떠안게 됐으니 암울하다. 일부 야당, 지방정부의 독감 무료접종 주장은 옳은가? 야당인 국민의힘은 최근 청와대의 휴대전화 요금 지원 2만원에 맞서서 '전국민 독감백신 무료접종'을 주장했다. 정치 공세인지, 국민의 건강을 걱정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부 지방정부까지 가세하고 있는 듯하다. 설령 국민을 위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잘못된 정책이란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재난지원금이나 무상 마스크의 경우에는 시급성을 다투거나 비용 대비 가치가 높기 때문에 주효했어도 독감백신은 다르다. 굳이 전체를 대상으로 접종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독감백신은 '약'이기 때문에 선별적 제공을 하는 게 맞다. 아주 극소수이어도 독감백신은 부작용이 있어서 투약할 때에는 사
여름도 끝나가는 9월 초, 제주도 코로나19 환자는 계속 나타나고 있다. 아마 필자의 짐작으로는 2차, 3차 감염으로 인해 수십 명의 코로나19 양성 환자들이 검사를 받지 않았을 뿐 일상생활을 하면서 거리를 활보하고 있을 거라고 조심스럽게 짐작해 본다. 이러한 생각이 무리일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8, 9월에 재유행할 거라는 예상이 있었고, 앞으로 최소 3년은 지나야 인류는 코로나19라는 새로운 감염병에 적응을 하게 된다는 것 역시 상식적인 예상이었다. 문제는 사스, 메르스, 코로나19로 이어지는 비슷한 감염병들이 앞으로 줄줄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치료약이나 백신은 너무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절망적이다. 감염병 창궐 없는 세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허버트 조지 웰스 원작으로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진 ‘우주전쟁’을 보면 인류가 멸망할 지경까지 갔다가 외계인들이 지구의 바이러스 때문에 다 죽으면서 기사회생한다. 외계인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그렇게 될 줄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한 절망을 안겨준 것이 최근 보여지는 신종 바이러스들의 출현이다. 인간은 언제든지 역경을 이겨냈고, 바이러스 정도야 치료약이나
드디어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8월 28일 현재 제주도에서 37번째 확진자가 생겼기 때문만이 아니라 5일 연속 매일 코로나19 양성 판정 환자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육지부에서 전염되어 온 거라고는 하지만 그건 애써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필자는 이전부터 제주도는 절대 코로나19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강조했고, 이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2020년 8월 28일 현재 전국 1만9077명의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했고, 제주도에는 8월 28일 37번째 확진자가 생겨났다. 더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상황은 아니다. 이제까지 제주도 정부는 코로나 청정지역, 방역태세 만반의 준비 등을 얘기하면서 도민들을 안심시켜 왔다. 도민들은 발생 환자 수가 적기도 하고, 제주도의 이러한 자신감에 다소 편안한 생활을 즐겨왔다. 전국 어디에서보다 느슨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타지의 거리 모습과는 영 딴판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코로나19 안전지대일까? 과연 그럴까? 통계로 보는 제주도의 실상 우리는 숫자의 함정에 빠져서 착각하고 있다. 아래 통계를 보면 제주도는 절대 코로나19 안전지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