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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고병수의 '영화와 만난 의학' ... (3) 공포의 전염병 한센병과 콜레라

한 남자가 코코넛 열매를 엮어 만든 작은 배에 올라서 조류를 따라 벼랑에서 멀어지고 있다. 짙푸른 바다는 거친 파도로 절벽의 바위들을 때려대고..... 나지막하게 음악이 흐른다. 영화 ‘빠삐용(Papillon, 1973)’의 마지막 장면이고, 음악은 영화의 주제곡이다.

 

억울하게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앙리 샤리에르(스티브 맥퀸)는 감옥에서 가슴에 새겨진 나비 문신 때문에 ‘빠삐용’이라고 불린다. 프랑스 말로 빠삐용은 나비라는 뜻이다. 

 

위조지폐범인 루이 드가(더스틴 호프만)와 함께 둘은 프랑스령이면서 적도 부근에 있는 절해고도의 감옥에 갇힌다. 다혈질인 빠삐용은 탈옥을 여러 번 시도하다가 독방에 갇히기를 반복한다. 

 

시간이 지나 몸도 허약해지고 나이가 든 두 사람..... 드가는 섬을 빠져나가기를 포기하고 섬에 안주하고자 하지만, 빠삐용은 끝내 코코넛 배가 벼랑에 부딪히지 않는 법도 알아내어 탈출에 성공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두 번째 탈출을 시도하다가 섬의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도움을 요청하게 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 마을의 대장은 한센병이 심해 손가락은 잘린 채로 헝겊으로 감겨 있고, 어두운 움막 안에서 살짝 비춰지는 얼굴은 흉하게 얽었다.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쳐다보는 것은 물론 접촉을 두려워할 텐데, 대장이 입에 물고 있던 시가를 주자 빠삐용은 서슴치 않고 받아서 연기를 뻐끔대며 태운다. 그 모습을 보고 대장은 탈출할 수 있는 배를 구해주기로 한다. 징그러운 전염병이지만 피하지 않고 다가와준 빠삐용의 용기를 인정했다는 의미이다.

 

한센병의 역사

 

한센병은 전염력이 그다지 세지 않은 병이다. 단순한 피부접촉이나 입맞춤, 성접촉 정도로는 옮기지 않는데, 환자의 외형이 워낙 기형이고 피부나 관절 손상이 심해서 두렵게 보일 뿐이다. 

 

호흡기나 상처가 난 피부를 통해서 옮길 수 있어서 주의하면 되고, 또 치료를 시작한 사람으로부터는 감염력이 없다. 

 

하지만 빠삐용이 감옥에 간 1930년대에는 원인은 밝혀졌어도 치료법인 항생제가 개발되지 않을 때여서 사람들은 여전히 공포스러워 할 때이다. 

 

빠삐용이 전염되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한센병 환자가 물던 담배를 받아서 입에 댄 것은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절박함 때문이었으리라.

 

한센병은 오래전 영화인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벤허(Ben-Hur, 1959)’에도 중요한 소재로 나온다.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라 나이 든 분들은 물론 젊은 사람들도 거의 한 번쯤 봤을 것이다. 

 

세기가 시작할 무렵 로마의 통치를 받는 유태인 귀족 출신 주다 벤허(찰튼 헤스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렸다. 예기치 않은 사고로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쫓겨나서 유랑걸식 하다가 한센병에 걸리고 만다. 

 

벤허가 황폐해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반가워도 만나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쳐다만 봐야했던 모녀.....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동굴에서나 예수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힐 때도 뭉그러진 손가락과 흉측해진 얼굴을 천으로 감싼 채 등장한다.

 

문둥병 또는 나병으로 불리던 한센병은 오래전부터 하늘이 내린 저주받은 병으로 알려져 왔다. 지독히 흉한 외모 때문에 외딴곳에 격리되는 게 일반이었고, 민가로 들어오면 폭행을 당해서 죽기도 했다. 기원전 2000년경 인도나 파키스탄의 미라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닌 한센병은 동아시아나 인도 지역에서 유럽으로 퍼진 전염병이라고 본다. 

 

실체를 몰라서 공포의 병이었던 것이 노르웨이 출신 미생물학자 한센(G. H. A. Hansen, 1841~1912)에 의해 1873년 원인균이 ‘나균(Mycobacterium leprae)’이라고 처음 밝혀지면서 세상에 실체를 드러냈다. 1882년경, 독일의 미생물학자이면서 의사인 로베르트 코흐(Heinrich Hermann Robert Koch, 1843~1910)가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을 처음 발견하고 보니 둘은 같은 가족이었다. 

 

마이코박테리움 속(屬)에 속하고 치료도 일부 비슷한 약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문둥이, 문둥병이라는 표현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비하하는 것이어서 더 이상 쓰이지 않지만, 과거 문학 작품에서만 간혹 볼 수 있다.

 

공포의 전염병, 콜레라

 

한번 유행하면 몇 개의 나라를 초토화시켜 버리며 인류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감염병들은 페스트, 콜레라를 들 수 있다. 한센병이나 두창(천연두), 홍역들은 흉측하거나 사망률이 높긴 하지만 거센 유행은 하지 않는다. 

 

콜레라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 ‘페인티드 베일(The Painted Veil, 2006)’은 1920년대 영국 런던과 중국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다. 

 

춤추기를 좋아하고 보통의 남자로는 성에 차지 않는 키티(나오미 왓츠)는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만나지도 않았던 월터 페인(에드워드 노튼)과 결혼을 해버린다. 그리고 결혼하자마자 세균을 연구하는 의사인 월터를 따라 중국으로 떠나게 된다. 

 

상하이에서도 현미경과 책만 들여다보고, 소심하면서 말주변도 모자라는 월터와의 신혼 생활은 키티에게는 무료하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사교 모임에서 외교관으로 와 있는 찰리(리브 슈라이버)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는 키티. 찰리는 결혼한 처지인 걸 알면서도 월터와 너무나 다른 매력에 이끌려 불륜을 저지르고 만다. 이런 사실을 월터가 알게 되어도 키티는 오히려 타박하듯이 말한다. “여자의 사랑을 못 받는 건 남자 탓이지, 여자 탓이 아니예요.”

 

보건소장 대리인 자격으로 월터는 콜레라가 창궐했다는 양쯔강 유역으로 가기로 자원을 한다. 감염된 절반이 죽는다는 얘기, 매일 실려 나가는 시체들, 구토나 심한 설사를 하는 사람들, 고열 등 콜레라가 가지는 여러 증상들이 영상으로 나온다. 

 

월터는 조사 끝에 마을 사람들이 마시는 우물에서 콜레라균을 검출하고는 그 우물을 폐쇄하도록 조치를 한다. 시체를 강가에 묻는 마을 사람들의 풍습을 보고 조사 범위를 넓혔더니 강물도 오염된 걸 확인하게 된다. 

 

강에 접근하는 것도 통제시키자 마을 사람들은 식수가 부족해져서 원망을 하고, 급기야 폭동 수준으로 치닫는다.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가고, 오지에서의 생활은 고난의 연속이다. 월터와 키티 부부는 사이가 좋아질 기미가 안 보이고.....

 

영화의 시대 배경인 1920년대는 유럽에서 여섯 번째 콜레라 유행 시기였다. 유럽에서 처음 콜레라가 창궐한 것은 1810년대이다. 

 

원래 유럽이나 다른 대륙에서는 나타나지 않다가 식민지 확장과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아시아권에서 유럽으로, 나중에는 점차 미 대륙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식민지 쟁탈에 이은 교역의 확대로 동아시아의 풍토병이던 것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기회가 만들어진 셈이다. 

 

1800년대 초‧중반에 세 차례 유행을 했는데, 이 때 기억해야 할 의사가 영국의 존 스노우(John Snow, 1813~1858)다. 그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런던에 유행하던 콜레라의 원인이 오염된 식수임을 밝히고, 하수와 상수 시설의 정비를 강화하게 했다. 아직 그 원인을 모르고 단순히 역병이라고 부를 때였다. 존 스노우의 연구 방식은 지금까지 이어져서 역학의 기초가 되었다.

 

콜레라라고 흔히 얘기하는 것은 감염학에서 ‘비브리오 콜레라’를 말한다. 최근까지도 계속 발생하는 전염병이고, 과거에는 치사율이 50%, 즉 걸리면 절반은 죽어야 했다. 

 

요즘은 위생과 치료 기술이 발달해서 이 병으로 인해 죽을 일은 거의 없지만, 세균의 존재를 모르던 당시에는 페스트에 비견하는 역병으로 여겨졌다.

 

콜레라는 1800년대 중반부터 말까지 다시 두 차례 대유행을 한다. 이 시기에 감염병 역사에서 중요한 업적이 이루어진다. 

 

앞서 말한, 훗날 세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는 로베르트 코흐는 이 당시 콜레라 유행지역인 인도에서 이집트를 따라 조사하게 됐다. 

 

원인이 콜레라균임을 증명(1884년)하고, 염색법과 현미경을 통해 처음 우리 눈으로 보게 하면서 그 실체를 밝힌다. 이제 원인균이 무엇인지 밝혀졌으니 치료할 일만 남는다. 하지만 감염병 치료인 항생제 개발은 그 후로도 50년의 시간이 지나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당시에는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 했다. 

 

1900년 초 유럽에서 다시 유행할 때 영국의 의사 레오나르도 로저스(Leonard Rogers, 1868~1962)는 콜레라의 치료 등 열대병 해결에 큰 역할을 한다. 콜레라 치료를 위해 짙은 농도의 식염수(hypertonic saline)를 사용해서 많은 사람을 살리는 업적을 남겼다. 

 

그는 훗날 열대의학의 선구자라고 불리게 된다. 아직까지도 저개발국가를 중심으로 유행을 하는 이 콜레라 전염병은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항생제 치료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쌀뜨물 같은 설사를 수없이 하다 보니 하루나 이틀만에 탈수로 죽기 때문에 수분(식염수) 공급만 원활히 하고 버티면 낫는 병이다.

 

이 영화는 ‘달과 6펜스’로 유명한 영국 작가 윌리엄 서머싯 모엄(William Somerset Maugham, 1874~1965)의 소설을 각색해서 만들었다. 그는 외교관의 아들로 자랐고, 의과대학을 마친 후 작가로 돌아섰기 때문에 이런 의학 내용을 담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는 원작의 영어 제목 그대로 사용했지만, 한국에서는 ‘인생의 베일’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또 다른 영화인 ‘콜레라 시대의 사랑(Love in the Time of Cholera, 2007)’은 콜레라가 중요한 소재로 나타날 것 같아서 봤다면 낭패를 보게 된다. 영화는 원래 콜롬비아 출신 가브리엘 마르께스(Gabriel G. Márquez, 1927~2014)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 1985⌟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 

 

마르께스는 마콘도라는 지역을 가상의 배경으로 삼아 부엔디아 가문의 역사를 몽상적으로 다루면서 남미의 현실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써내려간 ⌜백년의 고독(One Hundred Years of Solitude, 1967)⌟이란 소설로 198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의사와 결혼해버린, 사랑하던 여인 페르미나 다사(지오바나 메조기오르노)를 51년 9개월 4일 동안 기다려온 플로렌티노(하비에르 바르뎀)의 집요한 구애를 그려냈다. 

 

플로렌티노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끙끙 앓아눕고, 어머니는 혹시 이 녀석이 콜레라에 걸린 게 아닌가 의심하면서 전전긍긍하게 된다. 당시 전 세계는 간헐적인 콜레라 유행으로 큰 곤욕을 치르고 있었고, 마침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도 피해갈 수 없어서 수십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영화의 원작 제목이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라고 한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나는 콜레라가 남미에 유행하던 시대 배경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그 감염병처럼 죽도록 열병을 앓게 되는 사랑이 담긴 이야기란 것이다. 콜레라라는 감염병이 잠깐의 소재로 쓰였지만, 마르께스의 원작이라 영화는 꽤 볼만하고, 하비에르 바르뎀의 능글맞은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고병수는?
= 제주제일고를 나와 서울로 상경, 돈벌이를 하다 다시 대학진학의 꿈을 키우고 연세대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나와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 전공의 과정을 마쳤다. 세브란스병원 연구강사를 거쳐 서울 구로동에서 개원, 7년여 진료실을 꾸리며 홀로 사는 노인들을 찾아 다니며 도왔다. 2008년 고향 제주에 안착, 지금껏 탑동365의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열린의사회 일원으로 캄보디아와 필리핀, 스리랑카 등 오지를 찾아 의료봉사도 한다. '온국민 주치의제도'와 '주치의제도 바로 알기' 책을 펴냈다.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KAPHC) 회장, 한국장애인보건의료협회(KAHCPD) 부회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아 보건의료 선진화 방안과 우리나라의 1차 의료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보건정책 전문가다. 2020년 4.15 총선에 정의당 후보로 나와 제주갑 선거구에서 분루를 삼켰지만 총선 직후 곧바로 코로나19 감염이 창궐하던 대구행 의료자원봉사에 나서 숱한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정의당 제주도당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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