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회 제303회 임시회가 28일 그동안의 일정을 끝으로 폐회했다. 이번 임시회에서는 제주사회에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여러 현안에 대한 처리가 이뤄졌다. 더구나 의장의 ‘직권 상정보류’라는 전격적인 카드를 꺼내들며 일부 현안에 대해 논란도 일단락 됐다. 그러나 논란은 여전하다.
제주도의회는 지난 18일 개회식을 갖고 제주도와 제주도교육청으로부터 올 한해 추진할 업무보고를 받았다. 개회식에서 박희수 의장은 “해군기지 관련 시뮬레이션 관련 우근민 지사가 전격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의회와 사전 협의 없이 발표했다. 이후 여러 가지 얘기 했고 말미에 ‘참 희한한 친구들’이라고 표현한 것이 있다”며 “이런 부분이 의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희한한 친구들의 수준’이라는 것이라는데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우근민 도정에 날을 세웠다.
박 의장은 또 “도정의 올바른 정책 집행에 대해서는 협력을 아끼지 않는 의회”라면서도 “도민과의 소통을 소홀히 하고 도민 위에 군림하려는 도정이라면 단호히 거부할 줄 알고 불의와 타협치 않는 올바르고 건강한 의원이 가득한 의회가 되겠다.”며 순탄치 않은 의회 진행을 예고했다.
28일까지 진행된 11일 간의 회기 동안 ▶제주특별법 5단계 제도개선 동의안 ▶한국공항의 지하수 취수량 증산 동의안 ▶노루를 유해동물로 지정하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 조례안 등 25건의 조례안과 3건의 동의안에 대한 심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도의원들의 올라온 사안에 대해 각종 문제점을 지적, 최종적으로 24건의 조례안이 통과됐을 뿐 동의안은 1건도 처리되지 못했다.
한국공항의 지하수 취수량 증산 동의안…의장 직권으로 상정보류
도의회 내부 갈등으로 확산(?)…한진의 도민공감대 형성 여부가 열쇠
제주사회에 끝을 모르고 계속되고 있는 논란인 ‘한국공항의 지하수 취수량 증산 동의안’은 환경도시위원회(위원장 하민철)를 통과했지만 28일 본회의 4시간 전인 박희수 의장이 전격 기자회견을 통해 ‘직권으로 상정을 보류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파장을 불러왔다.
박 의장은 “의원들 간에 논란이 있고, 도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26일 동의안을 조건부 수정 가결한 하민철 위원장은 “의장의 권한이라서 뭐라 말할 수 없다”면서도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와 합의한 사안이었다. 농민 등 도민들을 위한 조치였다”며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 의회 내부에서도 ‘의장의 권한 남용으로 상임위를 무력화 시킨 것 아니냐’는 쪽과 ‘급한 불을 껐다’는 쪽으로 나눠졌다.
28일 본회의에 앞서 제주 사회도 찬반으로 나눠졌다. 심지어 지역주민까지 찬·반으로 나뉘어 대리전 양상으로 치달았다. 서귀포시 표선지역 주민들은 “증산을 허용해줘야 한다”는 반면, 제주시 조천지역 주민들은 “공공의 자원을 사유화 시킬 수 없다”며 반발했다. 상임위 통과 이후 반대 측은 기자회견과 성명 등을 통해 도의회를 압박했다.
논란은 박 의장의 결단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앞으로 한국공항이 어떻게 도민공감대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논란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 조례안…압도적인 찬성으로 조건부 통과
제주 노루 3년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환경단체 반발 계속
논란이 됐던 또 하나는 ‘제주 노루의 유해야생동물 지정 여부’였다. 도의원들은 공감은 하면서도 “도정이 눈치만 보면서 제주도의회가 처리해주기를 바란다”고 집행부를 강하게 질타했다. 하지만 환경도시위원회는 동료의원들이 발의한 ‘제주특별자치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 조례안’에 대해 부대조건을 달아 수정 가결했다.
3년이라는 조건을 달고 체계적인 조사를 통해 포획하자는 방안이다. 결국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됐지만 여전히 환경단체에서는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측은 “환경수도로 인증 받겠다고 하면서 가장 후퇴한 환경정책을 한 것”이라며 “3년 뒤에 재지정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조례 통과로 제주도정은 한시름을 덜었지만 도의회는 농민들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제주특별법 5단계 제도개선 주요과제 동의안…의장 직권으로 상정보류
도민공감대 형성도 없고 논란도 부를 과제도 많아…다음 회기 재상정(?)
이번 회기에서는 제주도정이 도의회를 무시한다는 지적도 다수 쏟아졌다. 특히 제주특별법 5단계 제도개선과 관련해서는 도의원들의 집중 추궁이 이어졌다. 게다가 박 의장은 최종적으로 이 안건에 대해 ‘직권 상정보류’라는 카드로 제주도정을 제지했다.
행정자치위원회(위원장 김용범)는 27일 오전·오후에 걸쳐 이 안건을 심의했다. 당시 의원들은 “도민 공감대를 형성하고 최종적으로 도의회 동의 거쳐 제출해야 한다”며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 도민 사회에 정확하게 알리고 의견을 구하는 절차가 먼저”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행자위는 이 동의안에 대해 ‘국제학교 이익잉여금의 회계 간 전출 허용 과제’ 부분을 빼고 수정 가결했다. 또 부대조건으로 “국회에서 제주도와 의회, 제주특별자치도 지원위원회와의 토론회 및 공청회를 개최해 추가적으로 지시되는 제도개선 요구사항을 포함해 반영하는 것”을 제시했다.
하지만 강경식 의원은 28일 본회의에서 5분 발언을 통해 도민 공감대 부족과 논란거리가 많은 과제 등을 문제 삼아 동료의원들에게 부결시켜줄 것을 호소했다.
결국 박 의장은 동료의원들의 양해를 구하고 직권으로 상정을 보류했다. 다만 해당 상임위의 논의를 거쳐 다음 달 임시회에 상정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도지사가 ‘법률안 제정 건의권’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도의회 동의를 얻지 않아도 정부에 법률 개정을 요청할 수도 있다. 때문에 도정이 시간이 촉박하다는 핑계로 일부 과제에 대해 권한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도정이 이를 쉽게 행사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일단 박 의장이 상정을 약속했고 직권으로 권한을 행사했을 경우 도의회를 무시하고 파트너로 보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회기에서는 여전히 철거 위기 논란이 되고 있는 ‘더 갤러리 카사 델 아구아’와 환경문제와 실효성이 제기되는 ‘비양도 케이블카’도 의원들의 도마에 올랐다.
특히 더 갤러리를 놓고 “제주도정이 부영에 이중 잣대를 대고 있다”고 강한 비난이 쏟아졌다. 비양도 케이블카 사업도 “정류장이 있는 곳은 유원지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절대보전지역 상공으로 로프웨이 선로를 설치하는 것은 관련 법령에 명시되지 않아 불가능함에도 도정은 면밀한 검토 없이 추진하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이외에도 준비 없이 추진되고 막대한 혈세 낭비 논란을 겪는 서귀포의료원의 재활병원 수탁, 주민의견 없이 추진되는 대정해상풍력발전단지, 사조직 논란으로 추진되는 민생추진기획단 등도 도의원들의 칼날을 비켜나지 못했다.
결국 이번 회기에서 도정은 총체적으로 업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박희수 의장은 폐회사에서 “집행부는 절차적 하자가 있는 사업임에도 면밀한 검토 없이 추진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또 “사조직, 위인설관 조직으로 눈총을 받고 있는 한시기구인 민생시책기획추진단을 해체하라는 충고에 대해 각별히 명심하라”며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