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제주에서 개최된 어느 세미나에 참가하러 갔을 때였다. 공항에 내려 관광안내센터에서 팸플릿을 보던 동료가 물었다. 캐나다에서 온 베키였다.
“What's so special about Jeju?” (제주도가 뭐가 특별한데?)
“As you know, it has such a beautiful nature, and..." (뭐, 자연이 아름답고...)
“I am asking about this name, Jeju Special Self-Governing Province." (내가 묻는 건 이 이름이야. 제주특별자치도.)
영문으로 된 수많은 홍보물에 제주도의 표기를 그렇게 표기하고 있었다. 베키가 다시 물어 왔다.
"Is it independent from Korea?" (제주도가 한국에서 독립했니?)
"Not really, it is a part of Korea." (아니, 한국의 일부야.)
"As far as I know, self-governing means you are independent financially. And your political body should be ruled by your own people, not controlled by outside forces." (내가 알기로 자치라 하면 재정적으로 독립되어야 하고, 지방정부가 외부 힘에 통제되지 않고 주민 스스로 다스려져야 한다는 건데.)
"Maybe not now, but in the future..." (뭐 지금은 아니지만 미래에는...)
나는 당황스러웠다. 내 고향 제주가 왜 특별자치도인지 설명을 할 수 없었던 거다. 관련된 법이 있다고 하여 뒤져 보았으나 온통 어려운 말들만 나열되어 있어서 한마디로 정리를 할 수 없었다. 세미나가 끝날 무렵 이 명칭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를 한 후 베키에게 말했다.
“Yes, Jeju is going to be independent from the central government. But diplomacy and defence are exceptions." (맞아, 제주가 중앙정부로부터 독립한다는 거. 외교와 국방만 예외로 하고.)
"So, what are they at the Jeju government supposed to do?" (그렇다면 제주 당국이 뭘 할 수 있는데?)
"It will have its own rights in education, taxation, finance, and things like that." (교육, 과세, 재정 같은 것에 자치권을 갖게 되지.)
“How do they make money?" (돈은 어떻게 만드니?)
“JDC will do that for the local government." (JDC가 지방정부에 벌어다 주겠지.)
“What is that?" (뭐하는 덴데?)
“It's a state-run company called Jeju International Free City Development Center. Jeju was named an international free city several years ago." (국영기업인데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라고 해. 몇 년 전에 제주가 국제자유도시라고 불리게 됐어.)
“How can you be international and free?"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국제적이고 자유롭게 되는데?)
"It means companies are free to do business in Jeju. People, goods, and capital can freely move around here." (제주에 오면 사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거지. 사람, 상품, 자본이 여기서는 자유롭게 왕래된다는 거야.)
"For example?" (예를 들면?)
"I heard several international schools were built. A healthcare town was under construction. And a resort complex and a science park are underway." (국제학교들이 여럿 생겼대. 헬스케어타운이 건설 중이고, 휴양단지와 과학공원은 진행중이고.)
이해를 시키기에 미진했어도 자치행정은 도청에서 하고 그 재원은 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에서 마련한다는 요지였다. 알고 보니 특별자치도라는 말이 너무 특별해서인지 온갖 곳에 적용되고 있었다. 도청 홈페이지 영문판에는 돌하르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Dolhareubangs of Jeju Special Self-Governing Province have been well-known to the world as its symbol. It is great that Jeju Special Self-Governing Province is emerging as the centerpiece of Asia and the Pacific today. The more Jeju Special Self-Governing Province grows as global tourist resort, the better reputation of Dolhareubang permeates through home and abroad.”
사실 여부나 어법의 잘 잘못은 차치하고, 굳이 번역하자면 이렇다.
“제주특별자치도의 돌하르방은 제주의 상징으로 세계에 잘 알려져 왔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아시아 태평양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대단하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세계적인 관광지로 성장할수록 돌하르방의 명성은 국내외에 더욱 알려질 것이다.”
그런데 이 짧은 문장에 Jeju Special Self-Governing Province가 세 번이나 등장하는 것에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영어는 같은 주어의 반복을 끔찍이 싫어한다. 주어가 한번 나오면 그 다음 부터는 대명사나 별명을 동원한다.
그렇지 않아도 길다고 생각되었던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은 제주특별자치도민속자연사박물관이라는 더 긴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영문은 Folklore & Natural History Museum Jeju Special Self-Governing Province였다. 아마 세계에서 제일 긴 박물관 이름 경연대회에 나가면 금메달감이리라. 개관한지 몇 년 되지 않은 제주도립미술관이 Jeju Museum of Art라고 표기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원래 표기인 Jeju Folklore & Natural History Museum으로 족하며, 굳이 도립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면 Jeju Provincial Museum of Folklore & Natural History 정도면 되겠다.
제주특별자치도는 행정법상의 명칭이다. 제주도 행정당국(Jeju government authorities)을 이르는 표기로서 계약관계의 주체이거나 법적인 효력과 관계된 곳에 쓰이는 표현이다. 제주국제자유도시도 마찬가지로 개발의 주체인 국영회사에서만 독점적으로 사용해도 될 이름이다.
외국 언론에서 한국을 지칭할 때 Republic of Korea(ROK)라 한다거나 북한을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DPRK)라고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공식 명칭을 놔두고 그냥 South Korea나 North Korea라고 부른다. 또, 서울의 행정명은 서울특별시이지만 공문서 말고 이를 Seoul Special City라고 쓰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문화광광부에서 마련한 표기법에는 서울특별시를 Seoul, 부산광역시를 Busan, 대구광역시를 Daegu와 같이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와이의 공식명칭은 State of Hawaii이지만 행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제주도 당국에서는 행정 명칭이 아니라 하와이처럼 비공식적인 이름(nickname)을 만드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하와이의 별명은 the Aloha State, Paradise, the Islands of Aloha 등이다. ‘알로하’는 하와이 원주민의 친절과 사랑이 담긴 인사다.
따라서 제주를 외부에 광고하거나 역사, 문화, 관광, 생태 등에 관련하여 표현할 때는 Jeju Special Self-Governing Province나 Jeju International Free City 라는 표현을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 특별자치도나 국제자유도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지향점일 뿐, 제주의 과거와 현재를 대변하는 이름은 아니다. 행정과 개발 주체로서의 공신력을 강조할 때 말고는 그냥 Jeju, 또는 Jeju Island라고 해도 제주를 세계에 알리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인터넷 검색어에서 Jeju와 비슷한 지명이 없는 것은 천만다행이라 하겠다.
☞강민수는?=잉글리시 멘토스 대표.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며 영자신문 편집장을 지냈다. 대기업 회장실과 특급호텔 홍보실장을 거쳐 어느 영어교재 전문출판사의 초대 편집장과 총괄임원으로 3백여 권의 교재를 만들어 1억불 수출탑을 받는데 기여했다. 어린이를 위한 영어 스토리 Rainbow Readers 42권을 썼고, 제주도와 중앙일보가 공동 주관한 제주문화 콘텐츠 전국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ELT(English Language Teaching)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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