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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시평세평(9) 도지사의 신앙과 종교를 도정에 끌어들이지 말라

 

 

 

스무 살 쯤에 이청준의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감동한 나머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날부터 1년여 남짓 왕복 1시간 넘게 어두운 들길을 오가며 새벽예배를 보러 다녔다.

 

교회를 다니는 내내 단테의 ‘신곡’ 속에서 베르길리우스의 인도에 따라 신의 모습을 보려는 나름의 간절함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칼날 같은 이성의 눈을 부릅뜬 채 ‘한 번 따져보자’고 덤비는 피 끓는 청년에게 성령은 강림하질 않았다.

 

그런 나의 간증(?)에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하나님께 너를 맡겨라”라는 목회자의 말은 가슴에 와 닿을 리가 없었다.

 

부질없거나 주제 넘는 일이라고 체념한 이후에도 아예 등지면 억울할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주술에 걸려든 것 같기도 하여 아주 떠나지 못한 채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부러 외면하려고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나 가장 문학적인 (우주)과학책이라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등을 어설프게 읽고는 무신론으로 나의 신념을 무장하려고도 해봤다.

 

아무리 그래봤자 지천명을 넘긴 후에도 이어령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에 미혹되고, “하느님을 믿느냐?”는 김수환 추기경의 물음에 “애매하게 믿는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대답을 무지 공감하기도 했다.

 

세월은 한 인간의 기억을 묽게 하는 만큼 정신세계를 짙게도 할진대, 여전히 나의 영적세계는 스무 살에 머물러 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신앙과 종교에 대한 말은 참 어렵고 조심스럽다.

 

내 깜냥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답이 없는 것 같다.

 

어차피 이성적 바탕 위에 있지 않는 것이므로, 각자의 신념에 대한 것이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원희룡 지사가 엊그제 한라산신제의 초헌관 자리를 거부했다는 뉴스를 보고, 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속이 시끄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이건 아무래도 유일신이나 사후세계의 존부를 떠나, 정치인 도지사로서의 종교의 자유가 어디까지 존중되어야 하는가 하는 헌법가치의 문제인 것 같다.

 

우리 헌법은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원칙을 동시에 명시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인간의 질서인 정치가 유일신 체제에 구애받지 않고, 인간 스스로에 내재되어 있는 이성을 바탕으로 한 인위적 질서(법)에 의해 삶을 영위해나가도록 조직되었다,

 

오랜 세월 신의 질서에 종속되었던 정치질서(법의 질서)의 영역을 엄격히 분리함으로써, 인간사회를 지배해 온 신의 질서로 부터의 해방을 제도한 것이다.

 

개인의 내면적•영적인 종교의 자유와 함께, 국민의 세속적 행복을 추구하는 정치가 특정종교에 지배되지 않도록 보장한 것이다.

 

# 사례 1

 

2005년 10월 천주교 신자인 고동주씨는 “천주교 신자로서 누군가를 적으로 상정해 미워해야 하는 군대에 들어갈 수 없다”며 병역의 의무를 거부했다.

 

# 사례 2

 

2015년 3월 도지사이자 개신교신자인 원희룡씨는 종교적인 이유로 전국체전의 성공기원을 비는 한라산신제에서 조례로 정한(조례의 합헌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초헌관 자리를 거부했다.

 

한라산신제는 토템을 숭배하는 민속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 도민이 전부 한라산신을 유일숭배하지는 않는다.

 

이 제사를 조례로 정한 것은 각자의 신앙에도 불구하고 도민 모두의 염원을 우리 도의 상징적 자연물에 비는 도민공동체의 행사적 성격이 짙은 측면이 있다.

 

일개 시민이 도민 전체가 참여하는 산신제에 종교적 이유로 참여를 거부하였다면 우리사회가 충분히 종교의 자유를 포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도민 공동체가 민속신앙의 방식을 빌려 전국체전의 성공기원을 비는 공적행사에, 정치인 도지사가 종교적 이유로 직무수행을 거부하였다면 이는 다른 시각으로 봐야한다.

 

 

 

첫째 정교분리란, 도지사는 도민의 세속적 생활에만 관여하고 신앙적·내면적 생활까지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라면, 도지사가 자신의 신앙이나 교리를 공적직무의 영역에 끌어들이는 것이 정교분리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만약에 수석 법조인의 판단으로 볼 때, 특정 토템을 숭배하는 한라산신제를 조례로 공적 제도화 한 것이 정교분리의 원칙에 위배된다면(일면 그런 점이 없지 않다는 생각은 든다), 이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오히려 초헌관 자리를 거부하는 것 보다 깔끔하다.

 

둘째 도지사의 종교적 자유(초헌관 거부)가 정치의 목적인 도민의 행복보다 우선하는가 하는 문제다.

 

이는 지극히 이성적으로 판단해야할 정치 지도자의 기본적 소양이라고 생각된다.

 

도지사의 도정수행이 특정 종교의 교리에 매몰되면 종교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도민사회의 소통과 결속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는 공동체적 연대가 허약해 질 수밖에 없다.

 

셋째 도지사를 포함한 일부 종교인 외에 어느 도민도 한라산신제를 특정 종교의 행사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과거 조상대대로 이어져온 우리 삶에 정성을 기울이는 모습일 뿐이다.

 

초헌관제는 토테미즘이라기보다 유교제례에서 인용된 것이 아닌가.

 

도민공동체의 간절함을 여러 전통문화를 섞어 구성한 것이지, 그 이상의 종교적 의미는 없다고 보는 것이 도민사회의 일반적 정서라고 본다.

 

성산일출제에서는 태양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정월대보름 들불축제에서는 불을 향해 가족의 건강을 염원하는 수많은 도민들을 이교도로 보는 도지사의 내면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선량한 도민이 될 수 없다.

 

이것이 정교일치의 폐해를 바로잡은 헌법의 역사적 뿌리가 아니겠는가.

 

임진왜란 때 승병장이었던 서산대사는 살생을 할 수 없다며 출병을 거부하는 범승들 앞에서 날아가는 매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파드득 떨어지는 매를 향해 ‘아미타불!’을 외치는 범승들에게, 서산대사는 “지금 저 매를 죽이지 않으면 저 매가 수많은 새를 잡아먹고야 말 것이다”며 출병을 독려했다. 도지사는 그냥 범승이 아니다.

 

우리는 장로나 집사를 뽑은 게 아니라 도지사를 뽑은 것이기 때문이다.

 

 

☞김성민은?

 

=탐독가, 수필가다. 북제주군청에서 공직에 입문, 제주도청 항만과 해양수산 분야에서 30여년 간 공직생활을 했다. 2002년엔 중앙일보와 행정자치부가 공동주관한 제26회 청백봉사상 대상을 수상한 전력도 있다. 그해 12월엔 제주도에 의해 행정부문 ‘제주를 빛낸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8년 월간 한맥문학사의 ‘한맥문학’에 의해 수필부분 신인상으로 등단한 수필가다. 공직을 퇴직한 후에는 그동안 미루어 왔던 깊은 독서의 매력에 흠뻑 젖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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