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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세평] 매번 불참의 이유 등장한다면 오히려 속박 ... "제주도민을 믿자"

술 자리나 토론 중에 피해야 하는 주제중 대표적인 경우가 정치와 종교다.

각자의 입장이 명확할 경우 결코 합의나 타협을 이뤄내기 쉽지 않은 때문이다.

선거 때 부모 자식간이나 친구 사이에 지지자와 정당이 달라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를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여기에 종교적인 문제가 덧붙여지면 그것은 거의 파국에 가깝다. 전세계 최대 갈등은 아직도 종교문제가 그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어떤 위정자든 일방적인 종교 편향성을 보이면 그 역풍의 크기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종교지도자와의 간담회는 여느 정권 초기에도 늘 빠지지 않는 행사이기도 하다.

역사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돼야 한다는 많은 교훈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우리 정치에서도 본의 아니게 종교적 색채를 띤 지도자의 행태가 두고두고 비판에 직면한 경우도 있다.

가장 가깝게 지난 MB정부 시절 소망교회는 한국정치의 핵으로 떠올랐다. 또 보수목사들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신의 이름으로 수 없이 많은 독설을 양산,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심지어 사회적 갈등의 온상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기독교인 지도자를 지켜야한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반면, 원희룡 지사의 대(對)종교 행보는 많이 달라보인다.

기독교 신자인 원 지사는 지난 6.4선거 시절 제주도지사 예비후보로서 제주 종교계 중 오히려 불교계와 천주교계를 먼저 방문, 호평을 받은 바 있다.

9일에는 제주도내 5대 종단(불교,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유교) 지도자들과 만났다. 이런 점에서 원 지사의 행보는 시의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뜻밖의 국면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9월 한라산신제와 이번 건시대제(乾始大祭)의 초헌관 참여를 놓고 원 지사가 종교적인 판단으로 제례 봉행을 꺼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게 된 것이다.

한라산신제에 이어 통상적인 건시대제 봉행인 초헌관을 박정하 정무부지사가 대행해서 맡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불거진 논란이다. 이같은 여론이 일자 도는 원 지사가 제례 후속행사 격인 '음복'에 합류, 불가피한 일정상의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원 지사는 건시대제가 열리는 같은 시간 제주도청에서 열리는 제4회 제주 수출인의 날 행사에 참석, 해외통상자문관을 위촉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하지만 "종교적 신념으로 인한 의도적 회피"라는 의혹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이번에는 이렇게 넘어간다고 치자.

 

그럼 내년의 봄과 가을과 다시 겨울에는 어찌할 것인가? 매 시즌마다 도지사 개인의 종교적 신념이 뉴스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

원 지사는 적당한 시기에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필자는 원지사가 초헌관으로 각종 제례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점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대신, 참석한다는 입장을 밝힌 후 당일 도내외 행사와 바쁜 일정을 이유로 계속해서 정무부지사로 하여금 대리참석하도록 하는 행동 패턴을 바꾸라고 권하고 싶다.

도지사가 종교적 입장으로 초헌관을 맡을 수 없다면 그 사실을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 정치와 종교적 신념이 엄연히 다른 부분이므로 도의 수장으로서 도민을 대표해 하늘에 제를 지내거나 할 경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택해 참석해도 좋다.

아니면 종교적 신념에 위배가 되므로 앞으로 정무부지사를 중심으로 이같은 행사에 제주도정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입장을 선택해도 좋다.

이제 그만 종교를 정치와 행정의 영역에서 걷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모적인 논란으로 도정과 지사에게 지속적인 공격의 빌미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다시 권고한다. 의도치 않게 불거진 초헌관 문제에서도 현명한 대응을 하길 바란다. 필자는 그 현명함이 입장을 좀 더 분명히 하는 일이라고 본다.

앞으로 매번 이같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도지사의 행보를 쳐다보며 이번에는 무슨 행사가 불참의 이유가 될 지 우려스럽다. 

종교적 신념에 따라 초헌관으로서 제례 봉행을 할 수 있든 없든, 아니면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키든 제주도민이 원 지사를 믿는 만큼 솔직한 입장을 제시해주기를 바란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이 도정의 핵심업무인 시대는 아니다. 도지사가 어떤 판단을 내리든 솔직하게 밝혔으면 한다.

 

 

 

도민들을 믿어보는 것은 어떨까. [이재근=제이누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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