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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의 눈물 닦아주지 못하는 대한민국 ... "1년 전 약속은 어디로?"

 

“제가 태어난지 100일도 채 되지 않았던 때에요. 아버지는 아무것도 몰랐죠. 어느날 아침 마을주민들 모두 학교 운동장으로 나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갔다가 거기서 아버지가 총을 맞아 죽었습니다.”

 

1948년, 4.3의 광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한 해에 태어나 제주시 조천읍 북촌에 살던 고모(71・여) 할머니. 그는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있는 각명비 앞에 앉았다. 한 없는 회상이 밀려왔다.

 

3일 제71주년 4.3희생자추념식 본행사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 고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을 떠올리며 술 한 잔을 올렸다.

 

고씨의 아버지가 숨을 거둔 것은1949년 1월17일이었다. 학교 운동장으로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 총살을 당했다. 고씨는 “나오라는 말에 겨울이었지만 옷도 대충 입고 나갔다고 들었다. 아버지만이 아니라 우리 식구 모두가 학교 마당으로 나갔다. 남자들은 따로 모아서 다 총살시켰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여자들은 학교 마당에 앉아서 나오라고 하면 나갔다. 그렇게 사람들이 끌려 나간 뒤 멀리서 총소리가 들렸고, 그럼 ‘저건 죽었구나’ 했다.”

 

 

고씨는 “저는 그 때 1살이었고 언니가 8살, 14살, 오빠가 8살이었다”며 “저희 어머니도 ‘나오시오’해서 나가려는데 언니가 어머니를 붙잡았다. 어머니는 1분이라도, 10분이라도 더 살아보려고 남았는데, 나오라고 부르는 것이 거기서 멈췄다. 그래서 우리는 살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고씨의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조천읍 신촌에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시아주버니에게 술을 한 잔씩 올리기 위해 4.3평화공원에 찾아온 김모(82・여)씨도 71년 전을 회상했다.

 

“말할 게 뭐가 있겠어. 그 때는 다 비참했다.”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 사는 고모(86・여)씨는 1948년 4월3일 숨을 거둔 오빠와 조카의 이름을 각명비에서 찾았다. 눈가엔 이슬이 맺혔다.

 

“오빠는 당시 남원읍 표선읍에서 경찰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경찰관서에서 숙직을 하고 있는데 경찰서를 습격한 이들에 의해 죽었다. 오빠의 아들은 경찰의 아들이라고 해서 죽였다”

 

고씨는 “그 때 기억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 “당시 성산으로 피난을 갔다. 성산에서 살다 다시 표선으로 돌아오니 곡식도 다 가져가고 소도 다 몰아가고, 남은 게 없었다”고 그 때를 회상했다.

 

그렇게 71년 전을 회상하던 고씨는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고씨는 71년간 그렇게 가슴 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쉽사리 꺼내지 못한 채 살아왔다.

 

행방불명인표석 앞에서는 고령의 어머니를 모시고 온 한 아들이 할아버지를 기억했다. 그의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발발 후 예비검속으로 끌려간 뒤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는 “할아버지는 대전형무소로 끌려갔다 거기서 행방불명됐다. 시신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시아버지다. 작은시아버지의 이름도 저쪽에 있고, 샛(둘째)시아버지의 이름도 저기에 있다. 다 예비검속으로 돌아가셨다. 아무일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다 잡혀가셨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은 28일 전 숨을 거뒀다. 작년까지는 매년 이곳에 함께왔다. 시아버지가 끌려가신 대전도 매년 함께 가서 제를 지냈다”고 말했다. 어느덧 그는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시신의 일부만 찾은 이도 있었다. 한 유족은 “아버지가 지금의 공항 인근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않았다. 겨우 시신의 일부만 되찾았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 시신은 여전히 공항 언저리에 묻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숨기고만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들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던 유족,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기억하고 그 흔적을 찾아나서는 이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고 당시를 “비참했다”고 회상하는 이들.

 

제71주년 4.3희생자 추모식에는 여전히 상처를 품고 있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71년이 지났지만 상처는 여전하다. 4.3평화공원을 찾은 이들의 눈가에는 여전히 눈물이 가득했다. 희생자추모식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쉼없이 들렸다.

 

1년 전, 4.3평화공원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다. 비극은 길었고 바람만 불어도 눈물이 날 만큼 아픔은 깊었지만 유채꽃처럼 만발하게 제주의 봄은 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1년이 지났고, 다시 한 번 제주에는 유채꽃이 만발했다. 하지만 제주의 봄은 아직이다.  4.3의 비극은 여전하다. 여전히 불어오는 바람에 유족들의 마음에는 아픔이 서린다. 눈가에는 눈물이 흐른다.

 

이날 이낙연 국무총리는 “제주도민들이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4.3특별법 개정안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날 4.3추념식에 참석한 여야 당대표들은 4.3특별법 개정안의 빠른 처리에 대해 입을 모았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3특별법은 매우 중요한 법”이라며 “하지만 아직 처리가 안되고 있다. 오늘 71주년 추념식에서 여러 당대표들이 그 의미를 아셨다. 빨리 법안이 통과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4.3특별법 개정을 반드시 이뤄내겠다”고 말했고 정의당 이정미 대표도 4.3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올해 처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도 “4.3특별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못한 것은 대단이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4.3의 온전한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특별법 개정에 미온적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도 "4.3은 반복돼선 안될 대한민국의 비극적 사건이다. 추모해야 하고 우리 미래로 나아가도록 국민들이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년 전 70주기 추념식장을 찾은 여야 당대표 모두 '특별법 개정'을 약속한 건 지금과 다를 바 없다.

 

아직 듣지 못한 소리가 많다. 풀리지 못한 한도 많다.

 

1년 전 대통령의 약속이, 이날 국무총리의 발언이, 여야 당대표들의 공약은 언제면 실현될까? 지금도 4.3유족들과 제주도민들의 가슴에는 피멍이 들고 있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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