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관광객들로 붐비던 면세점도 이제 과거가 됐다. 코로나19(COVID-19)가 발발한 지 6개월, 제주도내 면세점은 임시휴업을 이어가는 등 유례없는 수난을 겪고 있다.
제주도내 시내면세점은 지난 1일부터 임시휴업에 들어갔다. 롯데면세점 제주점은 사실상 무기한 휴점을 선언했다. 신라면세점 제주점도 한 달간 임시휴업을 하며 좀 더 지켜본다는 입장을 내놨다. 코로나 팬데믹(pandemic, 세계적 유행 현상) 여파로 외국인 관광객이 급감해서다.
"이미 지난 4월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출근했어요. 사드 당시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신라면세점 제주점의 한 입점 브랜드 직원인 A(32.여)씨는 면세업계에 10년 가까이 종사했다. 그가 기억하기로는 제주도내 면세점이 한꺼번에 문을 닫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한.중 갈등에 불이 붙었던 2016년. 약 1년 만에 한 달 39만9084명이었던 외국인 관광객이 9만3943명으로 76.5%나 줄어 제주 관광업계에 불안감이 휘몰아친 적이 있다.
지금 사태는 그보다 더 심각하다.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에는 한 달에 외국인 약 14만8000명이 관광차 제주를 찾았다. 하지만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고 무사증마저 중단된 지난 2월에는 고작 2만9229명의 외국인만 제주로 왔다. 한 달 새 80%가 증발했다.
그나마 사드 당시에는 내국인 관광객은 줄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월의 경우 59만9575명의 내국인 관광객이 제주를 찾았다. 전달(110만4438명)에 비해 45.7% 줄었다.
A씨는 사상 처음으로 무사증이 중단된 지난 2월 4일을 똑똑히 기억한다고 한다. 늘 단체관광객들로 꽉 찼던 매장에 하루 사이 손님이 '뚝' 끊긴 날이었다. 둘, 셋씩 짝지은 작은 무리조차 없었다. 한 두명 정도만 매장을 찾았다.
무사증 중단 사흘 전인 지난 2월1일에는 900여명의 중국인이 비행기를 타고 제주공항에 내렸다. 하지만 같은달 4일 오후 2시 기준 55명의 탑승객만 중국직항 노선을 타고 제주로 왔다. 이마저도 내국인과 중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도내 면세점 매출은 수직하강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제주 면세점 매출은 636억6422만원(내국인 223억7114만원, 외국인 412억9307만원)으로 지난 1월(2257억6362만원) 대비 72% 급락했다.
방문객 수도 29만7792명(내국인 24만8481명, 외국인 4만9311명)으로 지난 1월 60만2191명(내국인 45만2438명, 외국인 14만9753명)보다 51% 급감했다.
3월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22만5930명(내국인 19만1683명, 외국인 3만4247명)이 572억2393만원 (내국인 179억8320만원, 외국인392억4073만원)을 쓰고 갔다. 지난 2월에 비해 24% 덜 왔고 10% 덜 썼다.
'휴업' 소문은 이쯤부터 돌았다. A씨의 경우 4월부터 일주일에 1~2번만 출근하기 시작했다. 손님도 오지 않고 매출도 나오지 않으니 한 사람씩 돌아가며 출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신라면세점 내 다른 매장도 비슷한 처지였다.
출근해서도 뒤숭숭한 나날을 보냈다. 손님없는 매장을 지키고 있노라면 '어느 매장은 무급휴직을 권고했다', '어느 매장은 연차를 쓰라고 했다' 등 흉흉한 소문이 들려왔다.
결국 소문은 현실이 됐다. 지난달 26일, 시내면세점이 6월 1일부로 임시휴업에 들어간다는 공고가 내려왔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A씨지만 급한 통보에 착잡함을 감출 수 없었다. A씨가 있는 매장은 기존 급여의 70%를 지급하기로 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같은 면세점 내 영세 브랜드는 휴업기간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곳도 있어서다.
도내 시내면세점 2곳이 휴점에 돌입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소속 협력.도급업체 직원 2000여명이 사실상 실직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퍼졌다.
A씨의 매장처럼 면세점에 입점한 브랜드 업체 직원과 유통·물류 등 업무를 하는 도급 업체 직원들에 대해 각 회사 사정에 따라 권고사직, 무급휴직 등이 진행됐다.
면세점의 한 관계자는 “본사 차원에서 각 브랜드에 유급휴직 등을 통한 고용 유지를 권고하고는 있다”면서도 “영세한 브랜드들은 코로나19로 타격이 크기 때문에 인건비라도 줄이려고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A씨는 "앞날이 깜깜하다"고 표현했다. 휴업 공지는 받았지만 개점에 대해서는 '추후 공지한다'는 답변이 끝이었다. 지금은 유급이지만 회사가 언제까지 70%의 급여를 줄지도 불투명하다. 10년 가량 몸 담은 면세업계를 쉽사리 떠날 수도 없다. 아직 회사에 소속돼 있으니 '투잡'도 언감생심이다.
앞으로 상황은 나아질까. 지난달 제주에는 내국인 76만4493명, 외국인 2341명이 관광차 방문했다. 전달인 지난 4월 (내국인 54만1099명, 외국인 1159명)에 비해 각각 41%, 101% 늘어나 회복세에 접어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면세점의 경우 지난 4월 23만1739명(내국인 20만9551명, 외국인 2만2188명)이 356억9603만원 (내국인 210억7535만원, 외국인 146억2067만원)을 쓰고 갔다. 지난 3월(내국인 19만1683명, 외국인 3만4247명)에 비해 2.5%가 더 방문했지만 매출액은 오히려 37.6% 줄었다.
이는 면세점 매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은 줄고 코로나로 해외대신 제주로 눈을 돌린 내국인 관광객이 증가한 데 따른다.
제주를 방문하는 내국인 관광객은 3월 47만7176명, 4월 54만1099명, 5월 76만4493명으로 점차 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도 4월 1159명, 5월 2341명으로 소폭 늘어났다.
그러나 면세점 매출이 급감하기 전인 지난해 12월의 14만8000명을 회복하려면 아직도 갈길이 멀다. 지금의 63배만큼의 외국인 관광객이 더 와야 한다. 제주도내 면세점은 당분간 안갯 속을 헤맬 전망이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