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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연의 '욕망의 섬, 에리시크톤의 반격'(17) 기존 정석비행장 활용이 최선?

 

2016년 제2공항 예비타당성 검토 용역의 전말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서 불거져 나왔다.

 

2012년 제주도는 이미 국토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하여 네 곳의 공항 후보지를 선정한 바 있다. 내륙형으로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 해안형으로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와 성산읍 신산리, 해상형으로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가 후보에 올랐다. 예상 사업비는 김녕리 7조300억원, 신도리 3조7,050억원, 신산리 4조5,630억원, 위미리 해상은 18조2,299억원으로 발표되었다.

 

이중 해상형인 남원읍 위미리는 해안 매립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구좌읍 김녕리는 접근성이나 지형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주변의 세계자연유산 때문에 불가능해 보였고, 성산읍 신산리는 정석비행장과 공역이 겹치는 문제와 녹지 훼손 문제가 제기되었다.

 

누가 봐도 대세는 대정읍 신도리였다. 신도리 해안형은 기상 여건, 지형조건, 최저 사업비라는 측면에서 두루 장점을 갖추고 있었다. 장애물도 적고 바닷가의 평탄한 지형인 데다가 지반도 단단해서 누가 봐도 최상의 입지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실시된 제2공항 예비타당성 검토 용역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겉으로 내세운 이유는 땅값 때문이었다. 2012년 용역 발표 이후 신도리 인근 땅에 투기꾼들이 몰려들어 최소 다섯 배 이상 땅값이 상승했기 때문이었다. 토지 보상금 규모가 커졌으니 예상 사업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이번 용역에서는 설계과정에서 최악의 형태로 활주로를 배치하여 의도적으로 탈락시켰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다음으로 손꼽힌 곳은 신산리 해안형이었다. 정석비행장과의 공역 중첩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그런 것은 언제든지 조율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발표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바닷가 인근의 신산리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한참 올라간 중산간지대 온평리로 낙점된 것이었다. 온평리는 지금까지 제2공항 후보지로 단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는 곳이었다. 제2공항 논의가 분분했던 지난 25년간 누구도 단 한 번 입에 올리지 않던 땅이었다.

 

신산리 해안형에서 온평리 중산간지대로 후보지가 이동한 이유는 무엇일까? 온평리 주민들은 제주도의 공항 확충 논의에서 완전히 빠져 있던 성산읍 중산간지대가 갑자기 후보지로 등장한 것에 배후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예비타당성 용역을 주도한 ㈜유신의 관계자는 이렇게 해명했다.

 

2012년 국토연구원 용역 당시 신산리보다 현 온평리 후보지의 소음피해 가구가 좀 더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보상비와 공사비 등 적정한 사업비 등을 종합해서 결정했다. 2012년 용역 당시에는 정석비행장에 대한 고려가 조금은 미흡했던 것 같다. 정석비행장과의 공역 중첩이 온평리로 후보지가 바뀌게 된 최우선적 요인이다.

 

김수남은 선뜻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두세 번 더 톺아 읽어봤으나 오타가 난 것도, 잘못 이해한 것도 아니었다. 갑자기 가슴 밑바닥에서 불덩이가 치솟았다.

 

보통 공항 확충을 할 때는 기존공항의 확장안과 신공항 건설안을 두고 소요예산, 주민 피해, 환경 피해 등 전반적인 항목을 비교 검토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런데 사업비를 이유로 주민의 소음피해와 환경 파괴가 더 늘어나는 온평리로 옮겼다니……. 솔직히 말해서 소음피해나 환경 파괴 정도가 적거나 같다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지나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말은 해명도 아니고 핑계감도 되지 않는 말이었다.

 

실제로 이번 예비타당성 용역 결과 2012년 국토연구원 용역 당시 신산리 해안형보다 항공기 소음피해 지역이 더 늘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온평리 마을은 허리가 잘리고, 신산리, 난산리, 수산리, 고성리 외에도 오조리, 시흥리, 구좌읍 종달리, 상도리, 하도리 그리고 표선면 신천리까지 대거 소음피해 지역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사업비 몇 푼 때문에 조상 대대로 살던 원주민이 강제로 이주당하는 것은 물론 천연 보고 중산간지대의 환경 파괴까지 누가 봐도 재앙이 분명했다. 온평리 특유의 투수성 지형인 숨골이나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긴 수산동굴과 수많은 동굴을 시멘트로 메워야 하고, 오름을 절취하고, 활주로 끝에 걸린 하도리 철새도래지의 철새들도 쫓아내야 했다.

 

김수남은 잠시 심호흡을 하고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래도 뒷덜미에서부터 찌릿 편두통이 치고 올라왔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저번 용역에서는 정석비행장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었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인가. 하루 평균 여덟 번 뜨는 항공대학교 학생들의 학습권과 대다수 주민이 입게 될 소음피해, 환경 파괴와 맞바꿀 만한 가치가 있단 말인가.

 

정말이지 어처구니없는 해명이었다. 고작 하루 평균 여덟 번 뜨는 정석비행장 훈련 항공기와 공역이 겹치는 것을 피하려고 온평리로 낙점했다니……. 지나가는 개한테 물어봐도 웃을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최악수를 두고도 이따위로 노골적이며 뻔뻔하게 정석비행장을 두둔할 수 있단 말인가.

 

사태가 이쯤 확대되자 제주 제2공항 성산읍 반대 대책위원회에서는 일부 기업을 위해 대다수 주민이 소음피해를 입어도 되느냐면서 격렬하게 항의했다. 성산읍 수산1리에서는 이번 예비타당성 검토 용역진과 대한항공, 그리고 국토부와의 유착관계를 거론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한마디로 대한항공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인사가 이번 용역을 주도했고, 용역 결과도 대한항공측의 이해가 고려됐다는 주장이었다. 이번 용역의 총괄책임자는 한국항공대학교의 김모 교수였다.

 

한국항공대학교는 한국전쟁 중 민간항공분야를 개척하기 위해 1952년 설립한 대한민국 교통부 산하의 교통고등학교 특설 항공과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1968년에는 한국항공대학교로 개편되었고, 1979년 한진그룹이 설립한 학교법인 정석학원에 인수되었다. 이 케이스는 국립대학이 사립대학으로 변한 특이한 경우였는데, 한진그룹이 당시 유일한 국적 항공사 대한항공을 보유했던 점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김수남은 한국항공대학 출신들이 교통부와 각종 항공사에 포진하여 항공 마피아로 불리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실제로 국내 항공정책을 총괄하는 핵심부터 국토교통부 항공정책실 공무원 168명 중 35%인 58명이 이 정석인하학원 산하 대학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에는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이 공항 라운지 무료 이용, 항공기 좌석 승급 등 부적절한 특혜를 받은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바로 이 정석인하학원에 현재 대한항공 조중훈의 후손들이 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돌발 제안

 

제주 제2공항 성산읍 반대 대책위원회는 의혹 제기에서 멈추지 않고 돌발 제안을 했다. 기존의 제주공항을 확장하는 방안과 정석비행장을 제2공항으로 사용하는 방안 중 택일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후자는 제주도의 언론에서도 자발적으로 꺼내지 않는 금기 영역이었다. 기존 정석비행장을 이용하면 환경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지 않느냐고 공식적으로 물음을 제기한 것이다. 이는 제2공항 공론조사의 핵심 내용이기도 했다.

 

실제로 정석비행장은 국제공항 기능으로 활용한 전례가 여러 차례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중국―브라질 전 중국 응원단 120여 명을 태운 대한항공 전세기 보잉 737기가 착륙한 적이 있다. 또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 VIP 전용기가 제주도에 올 때 공항으로 사용되었다. 제주도의 제주발전연구원은 소음피해가 덜한 정석비행장을 야간공항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하기도 했다.

 

정석비행장은 이번 예비타당성 용역에서 성산읍과 함께 31개 후보지 중 한 곳으로 이름을 올렸으나, 2단계 후보지 평가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항목별 평가에서 공역, 기상, 환경 등에서 현저히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에 제주 제2공항 성산읍 반대 대책위원회는 너무나 집요하고 절박했다. 생존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정석비행장이 북쪽 부대오름, 부소오름 때문에 계기착륙장치를 설치할 수 없어 불가하다는 주장에는 허허벌판인 남쪽 제동목장 쪽으로 조금만 활주로를 내리면 어떤 장치도 시설할 수 있다고 맞섰다. 기존 정석비행장의 활주로를 확장하거나 방향 조정하는 작업이 중산간지대에 3,200m의 활주로 1본을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신설하는 것보다 비용과 시간도 적게 들고 환경 파괴도 덜하다는 주장도 조목조목 덧붙였다.

 

안개 문제 역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정석비행장의 안개일수는 년간 33일이고, 김포공항은 43일, 인천공항은 58일이었다.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도 잘 돌아가고 있는 판에 정석비행장이 안개 때문에 운영이 힘들다는 얘기는 어불성설이었다. 소음문제 역시 활주로 북쪽에는 인접 마을이 없고 남쪽 골프장까지 공항이 내려와도 남원읍 수망리까지 최대 5㎞ 이상 떨어져 있어 피해가 미미할 거라고 따박따박 반박했다.

 

무슨 동기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에 대해 「주간조선」 기자가 쓴 글이 있다.

 

무엇보다 정석비행장은 확실한 사유지이다. 주인이 동의만 하면 부지 매입과 보상 등 필요한 협의 절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온평리 일대에는 수많은 땅임자가 산재해 있다. 해당 부지에 위치한 주택과 토지뿐만 아니라 무덤 같은 지장물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보상과 이장절차를 협의해야 한다. 부재(不在)지주가 있을 경우 이들과 연락하는 일도 꽤 번거롭다.

 

정석비행장을 활용하게 되면 자연히 이런 문제는 해결된다. 보상절차 역시 간단하다. 심지어 혈세 투입 없이 토지교환 형식으로 공항 용지를 확보할 수도 있다. 가령 국내 15개 공항 가운데 한가한 곳을 조종사 교육장으로 대한항공 측에 제공하고, 정석비행장을 대신 받아서 제2공항으로 사용하면 된다.

 

전국 15개 공항 가운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있는 공항은 한두 곳이 아니다. 이 경우 토지보상에 필요한 수조 원의 현금이나 채권도 필요 없고, 등기부등본상에서 소유주만 바꾸면 된다. 감정차액에 해당하는 부분만 현금이나 채권으로 제공하면 그만이다. 한진해운 사태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는 한진그룹에 유동성을 일시 공급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국토교통부 나모 공항정책과장은 예전에 정석비행장에 외국 비행기가 내린 적이 있지만 상시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며 정석비행장 활용에 대해서 아직 검토하고 있는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중연= 충청남도 부여 태생으로 20여년 전 제주로 건너왔다. 2008년 계간 『제주작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탐라의 사생활』, 『사월꽃비』가 있다. 제주도의 옛날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이를 소재로 소설을 쓰며 살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제주도지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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