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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연의 '욕망의 섬, 에리시크톤의 반격'(4) 육군서비행장은 현재 제주국제공항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조중연 작가의 소설 '욕망의 섬, 에리시크톤의 반격' 입니다. 일찌감치 제주의 역사성과 자연의 가치, 문화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던 조 작가의 소설은 제주가 가진 정체성에 대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소설은 역사적 자료와 학술논문.서적을 두루 살펴 논픽션이 가미된 제주사를 다시 픽션의 영역으로 풀어냅니다. 반듯한 사실이 주류지만 때론 작가의 상상과 추리.추정이 가미돼 등장인물과 사실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취지는 개발과 파괴로 도륙의 길을 걷고 있는 제주를 재발견하자는 취지입니다. 아울러 소설은 계간 『제주작가』 2020년 봄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저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일본 육군과 해군의 경쟁

 

일본 육군은 58군사령부와 주력병력으로 2개 사단, 1개 혼성여단, 기타 예하부대를 배치했다. 기동병단으로 한반도에 제121사단을 대기시키고 포병과 전차부대를 중국과 만주에서 이동, 58군 산하로 배속시켰다. 주진지대인 제주도 서부지역에는 관동군 제111사단과 제121사단이 배치되었다. 또 제2선의 공격준비진지대인 중앙부에는 신설된 제96사단, 유격진지대인 동부지역에는 독립혼성 제108여단을 주둔시켰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패한 후 전쟁의 주도권을 육군에 빼앗긴 해군 역시 제주도 해안가에 해군특공시설을 구축하는 등 나름대로 착실하게 ‘결7호작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귀포 삼매봉, 성산포 일출봉, 고산 수월봉, 모슬포 송악산, 함덕 서우봉에 특공기지를 구축했다. 또한 모슬포 알뜨르비행장을 운용하고 있었다.

 

이에 질세라 일본 육군 역시 비행장 건설을 서둘렀다. 육군이 처음으로 건설한 비행장은 정뜨르 육군서비행장으로, 현재의 제주국제공항이었다. 1942년 짓기 시작하여 1944년 5월 준공되었다. 활주로는 1800m×300m와 1500m×200m 크기 2본이었다. 1944년 완공된 후에도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서 은폐와 엄폐,활주로 정비공사를 시켰다. 활주로 서쪽 도두봉에는 네 개의 동굴 진지가 존재했다. 여기에 참호를 파고 제96사단 주력부대가 배치되었는데, 임무는 육군서비행장을 경비하는 것이었다.

 

하나로는 만족할 수 없었는지, 아니면 해군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과시하려 했는지 육군은 또 하나의 비행장을 건설한다. 신촌 진드르에 착공한 육군동비행장은 원당봉 진지구축 공사와 맞물려 진행되었다. 신촌에서 원당봉까지 도로를 정비했고, 원당봉 진지구축 공사 현장에서 나온 흙과 돌들이 비행장 땅을 고르는 데 사용되었다. 원당봉 진지 역시 진드르비행장을 경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공사에는 1943년부터 마을주민들이 동원되었다.

 

진드르비행장

 

김수남은 이 글을 읽는 순간, 삼양에서 신촌으로 이어지는 일주도로를 떠올렸다. 최근 형성된 대규모 아파트단지인 화북삼화지구를 지나면 탁 터진 너른 들판이 나타난다. 보통 제주 시내권과 동쪽 면지역을 구분하는 경계이기도 했다. 그 일주도로 갓길에서 봄에는 딸기, 여름에는 수박을 파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얼기설기 세운 원두막이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도로 주변 너른 땅에서 재배한 과일을 한철 노점으로 팔고 있었다. 이곳은 한경면 고산 일대처럼 보기 드물게 평평한 지역이었다. 바로 그 지점에 진드르비행장이 건설되었다는 말이었다.

 

그나마 모슬포 알뜨르비행장은 지금도 활주로의 모습이 선연히 남아 있고, 지하터널이나 유개엄체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비행장이 있었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육군서비행장은 현재 제주국제공항으로 바뀌어 그 규모나 형태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드르비행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이런 논문이나 자료가 없었다면 몰랐을 사실이었다. 그런 장소는 또 있었다. 서귀포 1호광장과 서귀포고등학교 서쪽에 조성되었다는 비행장이었다. 도무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 위치였다. 그 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김수남은 계속 자료를 읽기 시작했다.

 

“지금 삼양 저쪽에 검문소가 있지요? 그 남쪽부터 시작해가지고 신촌까지 활주로가 있었습니다. 활주로는 완전히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삼양 저쪽 문화방송 있는, 철탑 있는 곳까지 연결하려 하다가 못했는데, 그디에 아까돔보라는 비행기가 서너 대 있었어요. 지금의 일주도로, 그 도로가 활주로입니다. 그 일대가 꽤 넓었는데, 그때 우리가 도로꼬로 흙을 실어다가 평탄작업 한 결과물입니다.”

 

삼양검문소에서 신촌입구삼거리까지 실제 거리는 1.8km였다. 이는 제주서비행장의 활주로와 맞먹는 크기였다. 증언은 계속된다.

 

“아침 7시가 되면 일하러 가고 저녁 7시쯤 돼야 일이 끝납니다. 하루 종일 곡괭이로 굴을 파는 거죠. 이렇게 둘러쓰는 군인 헬멧 닮은 것을 줘요. 요새 잠수들 쓰는 안경 닮은 것도 주곡. 그런데 마스크는 물량이 딸리는지 안줬수다. 수건 고튼 걸 집에서 가져당 입이여 코여 칭칭 둘러 감싸고. 우리가 흙을 파 담아놓으면, 다른 인부가 맡아서 비워가고, 다시 갖다주곡……. 그디가 원래 밭이라났수다. 들이 하영 넓은 곳인데. 그 비행장 공사를 허난 울퉁불퉁한 디가 사라지고 탁 터지게 수평을 이룬 들이 돼 버렸어요. 활주로 주변은 몬딱 잔디밭이었수다.”

 

인부 대부분이 제주도사람들이니까 대화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때를 잘못 만나부난 영 헌다.” “낳기를 잘못 낳아서 죽게 고생만 헌다.” 묻지마 갑자생들의 신세 한탄이었다. 그나마 북해도로 징용 가지 않은 게 어디냐며 씁쓸하게 웃기도 했다. 죽어도 제주도 안에서 죽으니까 뼈다귀는 제주도 안에 있을 거 아니냐며 이는 필시 조상 산천이 좋아서 그렇다며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그들에게 북해도는 죽어도 뼈조차 못추리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공사를 시작한 지 2년 가까이 되자, 어느덧 활주로가 어연번듯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원당봉 진지공사도 거의 마무리되었다. 근로봉사대 학생들이 조를 짜서 활주로 주변 듬성듬성한 곳에 잔디를 메우고 있었다. 계절은 완전히 옷을 바꿔입고 완연한 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58군 참모장에게 ‘육군동비행장 전면 공사 중지’라는 긴급 명령이 떨어진다. 미군의 제주도 상륙이 임박했다는 위기감에 초조한 나날을 보내던 무렵이었다. 해방을 불과 석 달 앞두고 일촉즉발로 신경이 곤두섰던 때였다. 공사에 동원됐던 주민들도 1945년 6월 이후 공사가 중지됐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때 멀찌감치 서 있던 다른 증언자가 참지 못하고 한발 앞으로 나섰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산지 몰르크라. 2년 넘게 죽게 고생해서 만든 비행장 아니라? 완공을 코앞에 뒀시민 끝을 봐야 헐 거 아녀게. 나가 지금 일본놈들을 두둔허는 게 아니여. 무사 경 했신지 이해가 안될 뿐이라. 여기 계신 선생님들이 좀 밝혀줍써. 지금도 궁금해서 죽어지쿠다. 공사가 중지되난 집에 갈 수 있어 그땐 생각도 못했주마는, 난중에 따져보고 따져봐도 영문은 끝까지 오리무중. 일본놈들이 경 무대뽀로 일하는 놈들이 아니란 말이여.”

 

하지만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육군서비해장이나 동비행장이 위치상 노출이 잘 되어 미군의 폭격 표적이 되기 십상이라는 추측만 무성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중연= 충청남도 부여 태생으로 20여년 전 제주로 건너왔다. 2008년 계간 『제주작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탐라의 사생활』, 『사월꽃비』가 있다. 제주도의 옛날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이를 소재로 소설을 쓰며 살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제주도지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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