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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연의 '욕망의 섬, 에리시크톤의 반격'(5) 제주 동부 산간지역의 수상한 병력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조중연 작가의 소설 '욕망의 섬, 에리시크톤의 반격' 입니다. 일찌감치 제주의 역사성과 자연의 가치, 문화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던 조 작가의 소설은 제주가 가진 정체성에 대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소설은 역사적 자료와 학술논문.서적을 두루 살펴 논픽션이 가미된 제주사를 다시 픽션의 영역으로 풀어냅니다. 반듯한 사실이 주류지만 때론 작가의 상상과 추리.추정이 가미돼 등장인물과 사실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취지는 개발과 파괴로 도륙의 길을 걷고 있는 제주를 재발견하자는 취지입니다. 아울러 소설은 계간 『제주작가』 2020년 봄호에 발표된 작품으로 저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거문오름 사령부

 

한편 제주도 동부 산간지역에서 수상한 병력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었다. 육군서비행장이 완공된 후 진드르비행장에 파견되었던 제12공병대가 공사를 중지하고 원대 복귀를 했다. 그러나 그 예하 작업대는 밤 사이에 어디론가 이동했다. 비밀스러운 움직임이었다. 구좌 평대에 주둔하던 108여단 공병대도 내륙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쪽 산간쪽이라고 했다. 한라산 동쪽 중산간 어디쯤에서 큰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즈음 조천 선흘리 거문오름과 구좌 송당리 체오름 일대에 독립혼성 제108여단의 주저항진지가 구축되었다. 성읍2리 개오름에는 전진거점이 구축되었다(주저항진지는 인근 위장진지나 전진거검에서 주력을 다하여 지키는 핵심기지다). 거기다 제주 동부권 작전을 직접 지휘하는 여단 사령부가 거문오름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라산 방향 쪽으로 들어앉은 무언가를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 방어하는 형세였다.

 

일본 육군 제3비행장

 

일본 육군은 애당초 조천읍 신촌리에 진드르비행장을 건설 중이었으나, 정뜨르비행장에서 직선거리로 10km밖에 안되는 곳에 비행장을 또 하나 건설하는 오류를 범했다. 미군이 지나가는 길에 폭탄 하나만 더 떨어뜨리면 폭격할 수 있는 위치였다. 위치상 치명적 실수를 인정한 참모본부는 진드르비행장 완성을 목전에 두고 과감히 공사 중지를 명한다. 그리고 한라산 중산간지대쯤에 새로운 비행장이 들어설 만한 땅을 찾아 나선다.

 

그 무렵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인근 주민도 알지 못한 비행장이 건설되고 있었다. 1945년 4월 13일, 일본군 참모본부는 58군사령부에 교래리 비밀비행장 건설을 지시한다. 비행장 공사가 제때 진행되지 않았는지 상위부대인 제17방면군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비행장 건설을 독려했다는 표현도 등장한다. 1945년 6월 말까지 극비리에 비행장을 완공하라는 강도 높은 지령 때문이었다.

 

교래리 비밀비행장은 참모본부에서 야심차게 건설한 소규모 비행장이었다. 이에 따라 108여단 공병대가 긴급 투입되고 수많은 인력이 동원되어 맨땅이나 들풀을 최대한 단단하게 다져서 신속하고 은폐성 있게 활주로를 만들었다. 지역 주민이 공사를 하는지도 몰랐을 만큼 속전속결로 진행되었고, 경비 또한 삼엄했다. 교래리 비밀비행장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활주로는 길이 1000m 폭 100m(1000m×100m), 길이 900m 폭 50m(900m×50m)의 크기 두 본이었다.

 

교래리 비밀비행장

 

이 대목에서 김수남의 눈에 걸리는 문장이 있었다. 소규모 비행장이란 무얼 의미하는 걸까. 미군의 폭격에 쉽게 노출되지 않는 중산간지대에 비행장을 조성했다는 말은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활주로 길이가 너무 짧았다. 알뜨르 해군비행장은 활주로가 1400m×70m이고, 정뜨르비행장은 1800m×300m였다. 공사가 중지된 진드르비행장의 길이도 1.8km 어간이었다. 정뜨르비행장의 경우, 처음부터 대형기의 이착륙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다.

 

일반적으로 활주로의 길이에 따라 띄울 수 있는 비행기의 기종이 달라진다. 프로펠러가 달린 비행기를 이륙시키기 위해선 최소 1000m의 활주로가 필요하다. 비행기의 크기와 바람에 따라 300m 이내에서도 가능하긴 하다. 전투기를 이륙시키기 위해선 1500m가, 소형 여객기는 2000m, 보잉 747을 띄우기 위해선 2500m 이상의 활주로가 필요하다. 현재 제주국제공항의 활주로는 3750m와 1910m짜리 두 본이다.

 

그러나 교래리 비밀비행장 활주로는 각각 1000m×100m, 900m×50m의 크기였다. 물론 지역적으로 중산간지대이고, 건설하는데 시간적 제약과 많은 품이 들었음을 감안하면 어찌어찌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크기라면 대형기는 고사하고 중형기인 미쓰비시 중공업의 제96식 육상공격기의 이착륙도 불가능했다. 규모가 더 작은 소형기만이 뜰 수 있는 크기였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띄우려고 소형 활주로를 만들었을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조중연= 충청남도 부여 태생으로 20여년 전 제주로 건너왔다. 2008년 계간 『제주작가』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로 『탐라의 사생활』, 『사월꽃비』가 있다. 제주도의 옛날이야기에 관심이 많아 이를 소재로 소설을 쓰며 살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제주도지회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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