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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삼춘 볼락누이-민요로 보는 제주사회와 경제(33)] 행상소리

예전 제주에서는 마을어른이 돌아가시면 ‘골’ 별(別)로 ‘접군’이나 ‘골군’, 혹은 ‘유대군’이라 부르는 마을남자들이 합심하여 상여를 매고 장례 치렀다. ‘행상소리’는 이 때 부르는 장례의식요의 한 유형으로 장례의식 관련 내용과 인생무상(人生無常)을 풀어내고 있다. 먼저, 관(棺)이 방문을 나와 상여(喪輿)에 오르기 전 소금과 콩을 관에 뿌리며 액(厄) 막음했다. 그리고 상여 앞으로 마와 명을 두 줄로 매달아 그 집안여자들이 끌고, 뒤에 상여가 따랐다.

 

“술집에 갈 적엔 친구도 많았지만 북망산천 갈 적엔 나 혼자로다. 인제가면 언제 오나 한번 가면 못 올 길.” 아무리 의좋은 부부도 한날한시 같이 죽음에 이르고 싶어 하지만, 그저 ‘소망’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간다간다 나는 간다 저 세상으로 나는 간다
어화넝창 어하로다 어젠 청춘 오늘은 백발
정든 자손 버리고 나는 간다 도두봉도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산 맑고 물 좋은 곳으로 나는 간다 불쌍하구나 가련도 하다
가자가자 어서 가자 오늘은 날씨도 좋고 가련도 하다

 

천년만년 살 곳으로 나는 간다 저승길이 멀다드니 대문 밖이 저승이라
놀다 가자 어서 가자 일가 방상 하직하고 나 혼자 가네
한라산을 등지고 천년만년 산다 우리도 한번을 갈 길이로다.
너도 잘살고 나도나 살자 임은 가고 봄은 오니 임 생각이 난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영원히 간다 ᄇᆞ름(바람) 강풍아 불지마라
아까운 청춘 다 늙어간다 가자가자 어서 가자 어서 가자
어화넝창 어화로다 태역 단풍 좋은 곳으로
어서가자 청춘시절로 다 넘어 간다 인제가면 언제 와요 나는 간다

 

산천초목 다 버리고 인생 죽음이 웬 말이냐
짧은 인생 살다 그네 극락세계가 웬 말이냐
부모동생 영 이별하고 삼천 벗님 하직하고 황천극락 웬 말이냐
술집에 갈 적엔 친구도 많고 북망산천 갈 적엔 나 혼자 로다
인제 가면 언제나 오나 ᄒᆞᆫ(한) 번 가면 못 올 길인가
우리 벗님 잘들 있게 오늘 보면 하직일세(행상소리, 애월읍 하귀 2리)

 

오래 전 할아버지 장례 때다. 지금은 돌아가시면 바로 장례식장으로 모시고, 적당한 날 봐서 일포날 조문객 맞고, 영장날 화장하여 묘지나 납골당에 모시지만, 그때만 해도 큰집에서 동네 분들과 친지가 합심하여 모든 장례 절차를 치렀다. 그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염하고 저승복으로 갈아입힌 후 동네 분들이 서둘러 짠 오동나무 관 속에 시신을 모신 다음, 집 근처 밭에 가매장했다(그렇게 가매장했던 밭은 농사가 더 잘된다고 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여자어른들은 상복(喪服)과 음식을 만들고, 남자어르신들은 빌려온 천막 친 다음 ‘자릿도새기’ 잡아 삶고 청객(請客) 준비했다(그때만 해도 마을마다 사발계, 혹은 그릇계, 천막계가 있어 경조사 때 그릇과 천막을 빌려다 썼다. 서귀포시 하원마을에 천막(차일, 遮日)계 규약이 남아있다). 그 와중에 사둔집에서는 허벅에 팥죽 쒀온다. 아마 밥 먹을 틈조차 없을 때, 소화도 잘 되고 빨리 먹을 수 있으며 ‘팥색’이 가지는 주술적 상징이 어우러져 그랬지 않나 추측해 본다. 그때 나는 돼지 삶는 불 옆에 ‘주왁주왁’ 거렸다. 소위, ‘어지름 탕쉬’ 일포날은 면지서 순경들이 와서 교통정리 할 정도였다.

 

가자가자 어서 가자 북망산천으로 어서 가자
인제 가면 언제 오리 명년 이때는 다시 올거라
못 가겠네 못 가겠네 처자식 두고도 못 가겠네
무정하다 무정도 ᄒᆞ(하)다 저싱(저승)사자가 무정도 다
저싱길이 멀다드니 대문 밖이 저싱이다
청춘가고 백발오니 애답고도 슬프도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꼿(꽃)진다고 설워(서러워)마라
명년 삼월 봄 돌아오면 꼿을 다시 피것마는
우리 인생은 ᄒᆞᆫ(한) 번 가면 다시 오기가 어려워라
가다 오다 만난님은 정으로나 살건마는
우리 부모 보낸 길을 인간 공업들이 살아야 ᄒᆞᆫ(한)다
인제 가면 언제나 오나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
세 살적에 아버님 죽고 네 살적에 어머님 죽어
갈 때 올 때 없어가지고 세상 거리를 헤매어 신디(는데)
이제 일생 커나 가지고 살만 하니 허사로다
인간 공로가 너무 불쌍하여 이 세상거리를 헤매도다
갈 길마다 가는 길이 불쌍하고도 허무로와
외나무길로 가는 길이 단 둘이가 허사로다
친구 벗님 많다 해도 어느 친구 동행
 ᄒᆞ리(하리)
일가친척 많다 해도 어느 일가 대신 하리
청춘가고 백발오니 애답고도 슬프도다
혼자 길로 가는 인생은 이 곳 뿐이 아니로다(행상소리 서귀포시)

 

“세 살 적에 아버님 죽고 네 살적에 어머님 죽어, 갈 때 올 때 없어 세상 거리를 헤매어 신디.” 실제 우리 할아버지는 세 살 때 생모(生母)가 돌아가셨다. 어릴 때 내 기억으론, 할아버지가 약주 드시고 돌아 오셔서 신세 한탄하실 때면 그 말씀부터 시작하셨다. 말미엔 꼭 자손들이 모두 무탈 건강해서 더 바랄 나위 없다며 마무리하셨다. 지금 돌이켜보니 할아버지는 자주 외로움을 느끼셨던 거 같다. 요즘 말로 하면, 성장과정에서 생긴 ‘분리 불안’ 같은 게 아니었나 싶다.

 

상여는 시신을 싣고 장지까지 옮기는 도구이다. 가마보다 더 길고 크기가 크며, 몸채 좌우에 밀채가 앞뒤로 길게 뻗어 있다. 밀채 앞부분과 뒷부분에 각각 채막대를 가로로 대고, 앞의 채막대 좌우로 두 줄씩 끈을 달아 뒤의 채막대에 붙잡아맨다. 앞뒤 채막대와 몸채 사이 중간 채막대를 일정한 간격으로 가로질러 줄과 묶어 상두꾼들이 상여를 메는 끈으로 삼는다. 상여 몸채는 단청으로 화려하게 채색하고, 네 귀에 포장을 쳐 햇볕을 가리도록 하며, 뚜껑은 연꽃이나 봉황새로 장식한다.

 

간다간다 나는 간다 저 세상으로 나는 간다
어젠 청춘 오늘은 백발 정든 자손 버리고 나는 간다
도두봉도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산 맑고 물 좋은 곳으로 나는 간다
불쌍 ᄒᆞ구나 가련도 ᄒᆞ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가련도 ᄒᆞ다

 

천년만년 살 곳으로 나는 간다 저싱길이 멀다 드니 대문 밖이 저싱이라
놀다 가자 어서 가자 일가방상 하직하고 나 혼자 가네
할로산(한라산)을 등지고 천년만년 산다 우리도 ᄒᆞᆫ번을 갈 길이로다
너도 잘 살고 나도 나살자 임은 가고 봄은 오니 임 생각이 난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영원히 간다 ᄇᆞ름(바람) 강풍아 불지마라
아까운 청춘 다 늙어간다 태역 단풍 좋은 곳으로 어서 가자
청춘 시절도 다 넘어간다 인제 가면 언제 와요 나는 간다(행상소리 제주시 도두동)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인 ‘제주도 영장소리’는 장례절차에 따라 행상소리, 꽃염불 소리, 진토굿 파는 소리, 달구소리로 유형화되었다. 이 소리는 사설 면에서 공통요소를 간직하고 있으며 제주도내 지역별로 약간 변이된 형태의 후렴이 조금 달리 불리고 있다.

 

어허 농창 어허 노세 인생 ᄒᆞᆫ번은 죽어나 지면은
북망산천을 찾아나간다 무정세월에 여유 ᄒᆞ야
원수 백발이 돌아 나오면 읏은(없는) 망녕도 절로 나난다
무정세월아 가지를 마라 옥빈홍안도 다 늙어지네
친구들과 놀 적엔 친구도 많고 공동묘지 갈 적엔 친구도 없네
저싱길이 멀다 해도 대문 밖이라 북망산천아 말 물어보자
임 그려 죽은 무덤 몇몇이 되나 열두 대문을 넘어갈 적에
인정을 걸어서 베풀어다오 천지면목도 절로 하더니
인생하처 불상봉이랴 사람이 나서 원수 원망을 맺지 말고
노변 협처에 난 회피니라 길 좁은 곳에서 만났을 적엔
피하기가 그렇게 어렵구나 좋은 일만 골라서 하여나 다오
천지지간 만물 중엔 사람밖에 또 있는가
석가여래 공덕으로나 아버님 전 뼈를 빌고
어머님 전 살을 빌어 이내 일생을 탄생하여서
ᄒᆞᆫ 두 살에 철을 몰라 이삼십이 근당하여도 부모님 은공 다 못 갚구나
애닯고도 서러운 지고 무정세월이 여유 ᄒᆞ야
원수 백발이 돌아나 오면 없는 망령도 저절로 나고
망령이라근 숭(흉)을 보고서 구석 웃는 모양 좀든(잠든) 날이다
근심 걱정을 다들 하며는 단 사십도 못사는 인생
오늘날 북망산천이 일가친척 처자식들아
설워(서러워)를 말아 설워를 말아 내가 가서도 안녕을 위해
북망산천이 바로 여기로다 원망을 말어라 원망을 말어
자식의 행복을 가져다주마
오늘 날씨가 하도 좋아서 영천에 갈 길이 아주 좋은 걸(행상소리 구좌읍 종달리)

 

“오늘 날씨가 하도 좋아서 영천에 갈 길이 아주 좋은 걸.” 이 대목에서 드라마 ‘도깨비’가 생각난다. 걸핏하면, ‘날이 좋아서’, ‘날이 안 좋아서’ 하더니 다 유래가 있었구나.

 

대부분 마을 외딴 곳에 상엿집을 짓고 그곳에 상여를 마을 공동재산으로 보관하였다. 마을주민들은 이를 ‘곳집’ 혹은 ‘행상집’ 으로 불렀다. 상엿집에는 상여 뿐 아니라 산역(山役) 도구와 천막을 보관했다. 이전에는 목재와 흙을 사용해 와가형 또는 초막형 상엿집을 지었다. 1970년대 이후 시멘트 블록으로 지었다.

 

얼마 전 서귀포시 도순 마을청년회에서는 도순공동묘지에서 1995년경 마지막으로 이용된 후 지금까지 보관 중이었던 상여를 꺼내 조립한 후 운구(運柩) 시연(試演)을 했다(도순리 출신 강만익박사의 페이스북 인용). 드물게 마을어장이 없는 도순은 저력(底力)있는 마을이다. 1905년 처음 제주도 오일장 개설 때, 중문보다 먼저 도순(道順)에 오일장이 있었다. ‘도순’ 하면 흔히 천연기념물 녹나무가 유명하지만, 그 보다 민족종교나 항일독립운동 차원에서 도순이 제주지역 성지(城地)라 할 수 있다. 이를 입증할 근거는《도순향토지》에 참고 넘친다.

 

 

저싱길이 멀다 해도 창문밧기(밖이) 저싱일세
사람 살면 몇 해나 사나 막상 살아야 칠팔십 고개
형제자매 다 버리고 내 갈 길을 나는 가네
노세 놀아 젊아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인생 일장춘몽인데 아니 노지는 못 하리라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천추 만년 날 사를(살) 곳에
우리 인생 죽어지면 요 모양 요 꼴일세(행상소리 표선면 표선리)

 

영장날, 할아버지를 꽃단장한 상여로 모셔 마을공동묘지로 갔다. 지금이야 비용만 내면 장의업체에서 작은 포크레인으로 규격에 맞게 땅 파고 봉분 만들어 준다. 비석이나 잔디 등도 다 대행업체에서 알아서 해 준다. 유족은 옆에서 제(祭) 지내고 봉분 위치나 방위만 정확히 알려주면 된다.

 

그때는 가자마자 근처에 흙 파오고, 태역(잔디) 파오고, 봉분 올라가면 다지고, 잔디 입히고, 돌아가며 밟고 등등 할 일이 많았다. 그래서 관련 민요도 작업별로 다 다르다. 여자어른들은 제 지낼 음식 준비하고 곡(哭)하고 장지(葬地)까지 와주신 조문객들을 정성껏 대접했다. 짧으면 3박4일, 길면 7박8일 슬퍼할 새도 없이 정신없이 지나간다.

 

어화롱창 어화로세 짧은 인생 살다 가다
극락세계가 웬 말이냐 부모형제 이별하고
일가방상 이별하여 어화롱창 어화로세
산천 벗님네 하직을 하고 황천극락 웬 말이냐
술집에 갈 적에는 친구도 많건마는
북망산 갈 적에는 나 혼자 뿐이로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ᄒᆞᆫ번 가면 못 올 길을
우리 벗님네 잘들 있소 오늘 보면 하직일세
우리 인생은 초로와 같고 황천길은 문전에 있네
인생일장은 춘몽일세 인생의 거래는 철칙인가
파란곡절을 다 겪고 갖은 향락을 다 못하고
자녀 손에 번영을 못하고 황천거사가 웬 말이냐
이제 가면 언제 오나 ᄒᆞᆫ번 가면 못 올 길을
우리 벗님네 잘들 있소 오늘 보면 하직일세(행상소리 한림읍 월림리)

 

그런데 다 그렇지만, 큰일 뒤처리는 언제나 큰집 몫이다. 그날도 다들 피곤한 탓으로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고 모두 내려가 버렸다. 마을 상여계에서 빌려온 상여를 반납하지 않고 장지에 그대로 내버려둔 채. 나중에 마을회에서 반납하지 않았다는 연락이 와 그때서야 부랴부랴 당시 중학생이던 사촌동생 혼자 경운기 끌고 가 상여를 운반해 왔다. 큰아버지네 막내인 사촌동생은, 아무도 모르는 그 얘기를 하며, 지금도 섭섭함을 토로한다. 내가 큰집이 되어 보니 이제야 알겠다. 난 그걸 ‘큰집아이 증후군’이라 부른다.

 

간다간다 내가 간다 요디(여기) 갈 줄을 누가 알아 신고
느가 가면은 언제 오시나 천년만년 살길을 간다
우리가 인생 ᄒᆞᆫ번 가면 다시 못 올 길을 내가 가느냐
느가 가면 언제 오시려나 천년만년 살길을 갔네
고치(고추)는 작아도 매웁기만 하여도 새는 작아도 알을 낳아
인생 손님이 누구실까 내가 간들 너희를 잊을소냐
우리 마을에 풍년이 들면 내가 온 줄 알아주소
내가 간들 어느 세월에 이런 꼴을 당해야 가나
동네 청년들 고맙수다 내가 인도를 ᄒᆞ여(하여) 주소
우리가 살길을 버려 땅속으로 가는 구나
뉘가 잘나서 일색이냐 내가 못나서 바보더냐
우리가 살면은 몇 백 년 사냐 막상 살아도 칠팔십이여
내가 간들 섭섭이 마라 내가 가면 그냥 가나
지옥에 가면 그만인데 얼씨구나 좋기는 좋다

 

청년들아 내말 들어라 일생일장 춘몽인데
이내 먹고는 못 노는데 술 ᄒᆞᆫ(한) 잔 먹고 쉬고나 갑시다
인생이 가면 얼마나 가나 우리 살길을 찾아보게
새는 인생을 살건마는 우리 인생은 막간 거여
놀고 갑시다 자다가 갑시다 저 ᄃᆞᆯ(달)이 지도록 놀고나 갑시다
공동묘지가 몇 굽(구비)이더냐 우리가 가면 아니
고개고개를 넘어가면 수적 방풍 나는 몰라
가자 왓소이다 요내 오늘은 마지막인데 술 ᄒᆞᆫ 잔 먹고 들어갑시다(상여소리 우도면 우목동)

 

“동네청년들 고맙습니다. 내가 인도하여 주소. 청년들아 내말 들어라. 일생 일장춘몽인데, 이내 먹고는 못 노는데 술 한 잔 먹고 쉬어 갑시다.”

 

“고추는 작아도 맵기만 하고 새는 작아도 알을 낳아, 인생손님이 누구실까 내가 간들 너희를 잊을 소냐. 우리 마을 풍년들면 내가 온 줄 알아주소.” 이처럼 그날 일 도와준 청년들에게 고맙다 하고, 그 보답으로 마을풍년을 위해 큰 역할 하리라 다짐한다.

 

북망산천에 찾어 가자 나는 간다 나는 간다
인제 가면은 언제 오나 인생일장은 춘몽인데
ᄒᆞᆫ 번 가면 못 오는 길 북망산천 어디메냐 인생 마지막 길 북망산천이다
우리 어머니 날 낳을 적에 무엇하러 태어낫나
부처님에게 공을 빌고 어머님 전에 복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나니 어린 것도 욕은(철 든)것도
지나가보니 어제요 살아보니 오늘이라

 

어딜 가냐 나의 갈 길을 북망산천이 더 이시냐
삼천갑자 북망서기는 태어나서 안 죽어시냐
태어나면 죽어야 하는 것 죽으면 북망산천이라
청춘홍안 너 자랑이라 이팔청춘이 낙엽이라

 

살았을 적에 사랑도 베풀고 형제에도 우애해라
동네사람들이 나간다고 절대 섭섭이 생각마라
인생은 일장춘몽인데 공수래에라 공수거라
ᄃᆞᆯ(달)아 ᄃᆞᆯ아 볽은 ᄃᆞᆯ아 이태백이 놀던 ᄃᆞᆯ아
저 ᄃᆞᆯ 속에는 계수나무 옥도끼로 찍어 내어(상여소리 우도면 오봉리)

 

 

제주지역에서 ‘화단’으로 불리는 상여는 초상(初喪) 때 시신을 장지까지 운반하는 제구(祭具)로, 모양은 가마와 비슷하지만 이보다 더 길다. 위 사진은 1763년 서귀포시 신효리와 하효리 사람들이 1인당 포목 16척(尺)과 조 5되 8홉씩을 모아 공동으로 마련한 ‘제주상여’다. 1947년 만들어진「입의(立議)」에 따르면, 마을사람들이 돈을 모아 “새 목재를 구입하여 썩고 부서진 상여를 새로 만드니 오히려 옛 것보다 나아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상여는 1991년 6월 4일 제주도민속자료 제6호로 지정되어 현재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크기는 가로 79㎝, 세로 230㎝, 높이 98㎝이다. 오색(五色) 천으로 여섯 단을 두르고 쇠붙이 장식이 매달렸다. 상여 지붕에 민화풍(民話風)의 그림을 그려 놓았다.

 

가자가자 어디로 갈 거냐 북망산천을 찾어 가자
우리가 가면 어데로 가나 가나 가나 북망산천이여
이 세상 사람들아 누구 덕으로 나왔는가 부모님께는 공을 드리고
석가여래의 덕을 빌어 젊은이들 놀고나 가자
이 세상에 허망한 것이 우리 인생이네 청춘홍안아 자랑마라
일생일장은 춘몽일세 ᄒᆞᆫ 번 나면은 ᄒᆞᆫ 번 가는데
이렇게 매정하게 살아시냐 일생이 험악한데

 

나는 좋다 동네사람들아 놀다나 가세
우리 갈 길이 어디 메냐 ᄒᆞᆫ 번 가면은 못 오는걸
어라어라 놀레나 가세 산천갑자 동방석이는
자기 죽을 것을 생각 못했구나

 

태어나면 가는 곳이 삼각산이고 하늘이 원칙이다
나가 가더라도 너의들(너희들) 만은 서로 서로 더듬어 삽시다
일장춘몽은 ᄒᆞᆫ(한)가지여마는 말로서는 못 ᄒᆞ느니
간다간다 나는 간다 못 갈 길을 나는 간다
인생은 일장춘몽인데 젊었을 때 착한 일 ᄒᆞ라(하라)
상주야 큰 똘(딸)아 큰사위야 메누리(며느리)야 이것이 바로 삶이로구나
공수래에다 공수건데 인생이 얼마나 험악ᄒᆞ냐
짤막한 인생에 잘 살앙 잘 베풀어야지 악한 ᄆᆞ음(마음)
갖지를 마라 좋수다 동네 사름덜(사람들) 고맙수다
나 갈 길을 반겨줘서(상여소리 우도면 오봉리)

 

 

 
▲ 진관훈 박사

“인생은 일장춘몽, 젊었을 때 착한 일 해라. 상주야, 큰 딸아, 큰사위야, 며느리야 이것이 바로 삶이로 구나.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인생이 얼마나 험악하냐, 짤막한 인생에 잘 살고 잘 베풀어야지, 악한 마음 갖지 마라.” ‘부디 착하게 살라’ 라며 마지막 당부 전하고 이승을 떠난다.

 

산천초목 나날이 가고 우리 인생은 언제나 가나
가자가자 어서 가자 산천초목으로 가자
술집이 갈 적인 친구도 많다 공동묘지 가실 적엔 내가 혼자로다
갑시다 갑시다 어서 어서 가자 산천초목으로 어서나 가자
서룬(서러운) 어머니 나를 날 땐 무슨 날에 낫는가 일천간장 다 태와 두고
저 산 앞의 풀잎새는 해년마다 오건마는
우리 인생 ᄒᆞᆫ 번 가면은 언제나 오나
어린 자식 부모 동생을 버려나 두고 북망산천 돌아간다
돌아를 간다 인제 가면 언제나 돌아를 오나
우리 부모 나를 날 때는 저싱 팔제(팔자)가 궂어서
산천으로 가자 인제 가면 언제 나면은 돌아를 올까(상여노래 제주시 외도동)

 

꽃염불 소리는 젊은 사람이 요절했거나 마을을 위해 공헌을 많이 한 사람이 사망했을 때 부르는 노래다. 장사 치르기 전날 꽃상여차려 빈 상여 어깨에 메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꽃염불을 부른다.

 

니나노 난시가, 니나노 난시나 난시나노 니나노 난시가 풀이로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풀이진다고 설워(서러워)를 말아
저싕질(저승길)이 멀다 한들 창문 밖이 보다 더 멀소냐
산에 올라 옥을 캐니 이름이 좋아서 양산인가
이산 저산의 양산간의 울고 가는 건 고목산아
한우리 살면은 수 만년 살거나 막상 살면은 팔구십 살지
이산 저산 양산간의 울고 가는건 고목산아
산에 올라 옥을 캐니 이름이 좋아서 양산인가
니나노 난시가, 니나노 난시나 난시나 니나노 난시가 풀이로다(꽃염불소리, 제주시 화북동)

 

송성대(宋成大) 교수님이 하늘나라 가셨다. 76년, 조금 못미처 사셨다.

 

<참고문헌>

 

김영돈(2002),『제주도 민요 연구』, 민속원.
네이버지식백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민속문학사전.
제주연구원〉제주학아카이브〉유형별정보〉구술(음성)〉민요
http://www.jst.re.kr/digitalArchive.do?cid=210402
http://www.jst.re.kr/digitalArchiveDetail.do?cid=210402&mid=RC00007212&menuName=구술(음성)>민요
좌혜경 외(2015),『제주민요사전』, 제주발전연구원.

 

☞진관훈은? =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 역임, 현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 제주대학교 출강.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국제자유도시의 경제학』(2004), 『사회적 자본과 복지거버넌스』 (2013), 『오달진 근대제주』(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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