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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 공동기획]③ 미군정의 4‧3책임...한국 너머 세계사로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지 21년 만에 전부 개정이 이뤄지고, 최근 3년간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수형인들이 재심에서 연이어 무죄 또는 공소기각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완전한 해결’을 향해 이제야 단 몇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4·3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선 70여 년 전 제주도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주체에 대해 책임을 묻고 규명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시 남한 지역을 통치했던 미군정이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통일을 외치던 시민들을 강경하게 탄압하며 제주를 대학살의 현장으로 이끈 사실이 여러 보고서와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책임을 밝히고 이에 대한 후속조치를 요구하는 작업은 아직 미진한 상황.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미디어제주·제이누리·제주의소리·제주투데이·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5차례의 공동 기획보도를 통해 4·3 당시 미군정의 책임에 대한 진단부터 이를 규명하기 위한 학술운동, 대중운동의 성과와 과제를 진단해 본다. /편집자주

 

 

제주4‧3의 본격적인 진상규명 운동사(史)는 1987년부터 시작됐다.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었던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그 출발점이었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군사정권은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붕괴의 조짐을 보였다. 군부독재와 맞섰던 민중의 함성과 희생은 전국 민주화 운동에 불을 지폈다. 그해 제주시내 남문로터리, 중앙로터리에서도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위가 연일 이어졌다. 

 

4‧3에 대한 미국책임론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도 이 때쯤이다.

 

대학가와 재야에서 전두환 군부의 광주 5‧18학살을 미국이 묵인한 점, 레이건(Ronald Reagan) 행정부가 전두환 군사정권을 지지한 데 대한 반감이 불거졌다. '분단'과 '반미'가 국민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 시절 4‧3은 학생·사회운동권 내에서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제주4‧3의 참혹상은 광주사태와 비교가 안된다’는 인식과 함께 학살의 배후로 미군정이 지목됐다. 4‧3 당시 미군정이 실질적 권한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결국 6월 항쟁의 ‘호헌철폐’와 ‘독재타도’ 구호는 4‧3이라는 금기의 벽마저 부쉈다. 4‧3의 진실회복운동은 곧 민족민주운동이었다. 대학가나 재야단체 운동권은 제주4‧3을 ‘민중항쟁’으로 규정하고 미국의 책임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 1980~90년대 학생운동 이후 4‧3 진상규명에 대한 시민사회 흐름

 

한 해를 지나 1988년 3월 14일 일본의 도쿄 팡세홀에 500명의 청중이 운집했다. 미국의 역사.정치학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교수 초청강연회가 열렸다. 커밍스 교수의 강연 주제는 바로 ‘제주도4‧3사건과 미군정’이었다. 4‧3 학살에 대한 미국 책임론이 미국 학자에 의해 처음으로 거론된 것이다.

 

같은해 11월에는 존 메릴(John Merrill) 박사가 서울을 방문, ‘한국전쟁의 기원’을 주제로 한 강연을 하면서 제주4‧3을 언급했다. 강연 내용이 한겨레신문에 소개되자 제주4‧3에 관한 미국의 책임을 두고 전국 곳곳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4‧3 사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레 추모와 진상 규명의 움직임이 일어났다. 1989년 41주기 4‧3추모제 준비위원회가 꾸려지고 제주시민회관에서 추모제가 봉행됐다. 같은해 5월10일 제주4·3연구소가 발족됐다. 1993년 10월에는 제주지역총학생회협의회가 4‧3특별법 제정과 특위 구성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또 1995년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는 ‘제주4‧3사건 피해실태 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4‧3 진상규명 움직임은 점점 더 힘을 얻어갔다. 4‧3 50주년을 1년 앞둔 1997년 4월 ‘제주4·3 제50주년 기념사업추진 범국민위원회’가 결성됐다. 범국민위는 정부에 대해 양민학살 사실인정과 자료공개를 요구하고, 국회에는 4‧3특위 구성, 4‧3특별법 제정 및 명예회복 조치를 강력히 촉구했다. 그와 동시에 미국에 보낼 서한문을 채택했다.

 

마침내 1999년 12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정부는 4‧3특별법이 공포되고 약 2년 반 후인 2003년 10월 4‧3 진상보고서를 공식 발표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 인명살상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결론이었다. 당시 진압부대장들도 부차적 책임자로 지목됐고, 군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진압작전을 지휘했던 미 군정과 군사고문단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기록됐다. 

 

50주년 범국민위원회가 4·3전국화에 불씨를 뿌려놓았으나 제주를 벗어난 지역의 4·3활동은 거의 전무한 상태로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간 4‧3에 대한 연구는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에 초점이 맞춰졌다. 제주4‧3연구소와 학계 등에서 미국책임론을 개별적 연구로 다뤘으나 여론 확산은 학생운동 차원으로 그쳤다. 

 

하지만 불씨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제주4·3민중항쟁 60주년 정신계승을 위한 공동행동이 2008년 3월29일 제주중앙초 체육관에서 '4·3항쟁 정신계승 민중대회'를 갖고 미국정부의 공식사과를 촉구하는 서한문을 채택, 미국 정부에 전달한 것이다. 

 

 

◆ 4·3 70주년 10만인 서명운동에서 바이든 정부 대응 시작까지

 

이어 4‧3방문단이 2017년 5월 미국을 방문했다. 국제 석학들이 참가하는 학술대회를 열고, 백악관 앞에서 4·3에 대한 미국정부의 책임 인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메이지 히로노(Mazie Hirono) 상원의원실, 마크 타카노(Mark Takano) 하원의원실 등을 찾아 미국 정부가 4·3에 대한 진실 규명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청원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4‧3 미국책임론은 10만인 서명운동을 계기로 전국 곳곳에서 거론됐다. 제주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2017년 10월17일 서울 광화문 미대사관 앞에서 제주 4·3에 대한 미국과 UN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선포식을 갖고 1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4‧3 범국민위는 이듬해 4월7일 '4·3 학살에 대해 미국은 사과하고 진실규명에 나서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을 내고 미국정부에 보내는 공개서한을 전달했다. 4·3 유족들과 시민 단체들이 같은해 10월31일 제주4‧3에 대한 미국과 UN의 책임있는 조치를 촉구하는 10만인 서명 운동 서명지를 미국 대사관 측에 전달했다.

 

제주4·3을 새로이 조명하는 행보는 미국 본토 유엔 본부까지 갔다. 국제적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제주4·3 유엔 인권 심포지엄’이 2019년 6월20일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미국 대표적인 인권단체인 세계시민단체연합(CoNGO)을 포함한 한국과 미국 38개(국내 24개·미국 14개) 단체가 모였다. 

 

4·3당시 북촌학살사건의 유족인 고완순 할머니 등 유족들의 발표를 통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UN 심포지엄 이후 미국의 통신사 UPI 등 세계 언론들이 관련 보도를 잇따라 내기도 했다. 

 

같은해 9월에는 제주4·3희생자유족회, 국제연대포럼 등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된 제42차 UN 인권이사회에 참석해 4·3 등 한국 과거사 문제 해결을 국제사회에 촉구했다. ‘한국의 전환기적 정의-제주 4·3과 한국전쟁’ 등을 주제로 UN회의실에서 토론회를 여는 한편 ‘초토화 작전과 미국의 책임’을 주제로 발표를 하면서 유엔 인권위서 4‧3 책임론을 공식 거론했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지난 1월 미국 바이든 정부 출범에 즈음해 제주4·3 학살 책임이 있는 미국에 공개서한문을 보내고 공개 사과와 진실규명을 위한 공동조사를 요구했다. 이어 미군정에 대한 책임 규명과 국제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4‧3시민법정' 추진 계획을 밝혔다.

 

4‧3단체와 과거사 관련 단체 등이 참여하는 4‧3 시민법정은 내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국제적 확산세가 잠잠해질때 해외로 나갈 예정이다.

 

전대미문의 코로나가 잠시 전대미문의 참화에 대한 진상규명 발걸음을 가로막았지만 결국 역사의 발걸음은 되돌릴 수 없는 길을 따라 뚜벅뚜벅 이어지고 있다. [제이누리=이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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