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회초리는 매서웠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파란색으로 물들었던 서울 지도가 4ㆍ7 보궐선거에선 온통 붉은색으로 변했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8일 서울시장 취임)가 40대를 제외한 나머지 연령대에서 앞섰다. 특히 20대 남성은 72.5%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다. 20대 이하 여성과 40대 남성만이 오세훈 후보보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던졌다.
민심이 폭발했다. 외형상 국민의힘이 압승했지만, 엄정하게 보면 민주당의 참패다. 국민의힘이 잘해서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무능과 오만, 위선으로 스스로 무너졌다. 민주당은 조직력을 총동원하고 ‘생태탕’ ‘엘시티’ 등 네거티브 공세로 국면 전환을 꾀했지만 끝내 참패했다.
민심 이반의 근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4년 내내 이어진 집값 폭등이다. 25차례의 부동산대책에도 치솟은 집값은 빈부격차를 심화시켰다.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분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정권에서 계층간 격차가 되레 확대됐다.
이 와중에 주택시장 안정과 국토의 효율적 이용이 책무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의 땅투기 사태가 불거졌다. 게다가 치솟는 집값과 전월세를 잡겠다며 임대차법 개정을 주도한 청와대 정책실장과 임대차법 개정을 대표 발의한 민주당 의원이 개정 임대차법 시행 직전 임대료를 대폭 올린 사실이 드러났다.
집값 급등에 따른 공시가격 대폭 인상 또한 유주택자들을 화나게 했다.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가 큰 폭으로 오르고 건강보험료 부담이 늘어나자 1주택자들은 “누가 집값 올려달라고 했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강남·강북 가리지 않고 서울 25개구 전역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밀린 배경이다.
‘공정’ ‘정의’를 유달리 강조해온 정권에서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가 횡행했으니 국민의 배신감이 컸다. LH 사태만 탓할 수도 없다. 민주당은 재ㆍ보궐선거의 원인을 제공할 경우 후보를 내지 않겠다던 대국민 약속을 깨고 당헌당규를 바꿔 후보를 냈다.
국민의 짜증을 돋운 조국 사태와 추미애·윤석열 갈등, 180석 거대 의석으로 밀어붙인 일방통행 입법 등 스스로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저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미국 유력지 뉴욕타임스가 보궐선거 결과를 보도하면서 한국 국민이 비판하는 여당의 태도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며 ‘내로남불(Naeronambul)’ 표현을 소개했을 정도다.
여권은 그동안 40%의 절대 지지층이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레임덕이 없는 유일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그 집토끼 지지층에 균열이 갔다. 사안과 상황에 따라 진보와 보수를 오가며 제대로 하는 쪽을 지지하겠다는 ‘스윙 보터(swing voter)’가 늘어났다.
더 이상 진영논리에 매몰돼 갈라치기 정치를 해선 안 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집토끼, 한쪽 진영만 바라보며 정치를 했다가는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할 것이다. 스윙 보터가 많아짐은 정당들로선 불편하겠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게 만드는 긍정적 효과를 지닌다. 여권은 그동안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진행해온 대립과 증오의 정치를 접고, 4년 전 취임 때 약속한 대화와 타협의 협치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 등 무리한 공약과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가 횡행하는 정치의 계절에 경제와 코로나19 사태 등 민생 문제는 뒷전에 밀렸다. 일부 거시 경제지표가 나아졌다지만, 취업난과 뛰는 생활물가 등으로 민생은 힘들고 고달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후회되는 일로 부동산정책 실패를 꼽았다. 고인의 실패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실패로 레임덕을 자초한 양상이다.
여권은 1년 전 총선에서 압승을 몰아준 민심이 왜 정반대로 바뀌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겸허한 성찰을 바탕으로 부작용이 노출된 정책의 기조를 전환하고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 민생을 안정시키는 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4차 대유행 단계인 코로나19 확산 차단과 백신 접종에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그래야 내년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기대할 수 있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선거에서 이긴 것은 여권의 실책과 LH 사태로 반사이익을 누린 덕분이다. 선거 승리에 취해 내부 알력을 빚거나 대안정당으로서 수권 역량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면 내년 대선에서 다시 심판받을 수 있다.
잔여 임기가 14개월인 서울ㆍ부산시장을 뽑는 데 824억원의 선거비용이 들어갔다. 여야 정치권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 거액의 국민세금이 투입된 4ㆍ7 보궐선거의 교훈을 잊지 않아야 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