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을 요즘처럼 실감한 적도 없는 것 같다. 달걀은 ‘금란’이 된 지 오래고, 우유·라면·쌀 등 식료품과 갈비탕·백반을 비롯한 음식값이 다 올랐다. 새해 들어선 커피·햄버거값도 인상됐다.
물가 급등세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 정부 공식통계로도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7%. 10월부터 3개월 연속 3%대였다. 가격변동이 작은 공산품을 포함한 평균이 이렇지 사람들이 자주 구입하는 생활물가 상승률은 4~5%대를 넘나들었다. 2011년 이후 10년 만의 최고 상승률이다.
우리나라만 물가가 오른 게 아니다. 미국은 더 심각하다. 미국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0%. 1982년 6월 이후 40년 만의 최고치다. 물건값이 올랐을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물품을 구입하기도 적잖게 어렵다. 대형 쇼핑몰에서 빈 진열대가 자주 눈에 띌 정도다.
물가 오름세는 지난해 중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공통적 현상이다. 물가상승 배경 또한 비슷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정해지거나 왜곡됐다. 그 결과 국제유가와 원자재, 곡물 가격이 올랐다. 이들 원자재와 곡물을 가져다 만드는 각종 제품과 식료품 가격도 상승했다.
이처럼 공급 측면에서 문제가 생긴 판국에 수요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시중 유동성은 전례 없이 풍부해졌다. 세계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침체한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해 확장적으로 재정을 집행했다.
여기에 보조를 맞춰 중앙은행들도 세계적인 초저금리 상황에서 통화를 넉넉하게 공급했다. 정부의 경기부양으로 늘어난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중에 풀린 돈이 많으니 물가가 급등하는 것이다.
다급해진 미국이 돈줄을 조이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돈을 풀던 것과 반대되는 정책이 실행되는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최대 과제로 천명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경우 금리를 당초 계획보다 더 많이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연준이 이르면 3월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연준은 지난해 12월 의사록에서 올해 3차례 금리인상을 시사했는데, 시장에선 4차례 이상 금리를 끌어올릴 거란 전망도 나온다.
이래저래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등 주요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양적(통화) 긴축 속도를 높이면 국내 금융시장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으므로 기민하게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이미 심각한 금융불균형과 물가상승에 직면해 있다. 초저금리로 ‘빚투(빚내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하면서 부동산과 주식, 가상화폐 등 자산시장에 거품이 끼었다. 물가는 월급 빼곤 죄다 오르다시피 했다. 게다가 미국이 양적 긴축 조짐을 보이자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며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달러당 1200원대를 넘어섰다.
우리가 미국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과 금리인상, 이에 따른 환율상승을 주목하는 건 수출 중심인 한국 경제가 받을 직·간접 타격 때문이다. 미국이 금리인상과 양적 긴축을 본격화하면 미국 내 수요가 둔화된다. 이는 신흥국 시장의 자본 유출과 통화가치 하락을 초래할 수 있다. 신흥국 경제가 어려워져 수입 여력이 줄면 우리나라 수출에 악영향을 미친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국내 중소기업 경영이 어려워지고 수입물가를 올려 국민 실질소득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14일 새해 첫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1.00%에서 1.25%로 인상한 한국은행이 더 빠르게 추가 인상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올해 몇차례 금리인상은 불가피해졌다. 문제는 막을 내릴 것 같지 않던 초저금리 시대에서 늘어난 가계 빚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어려워진 자영업자의 현금 흐름이다.금리인상 충격은 저축은행·캐피탈 등 제2금융권을 주로 이용하는 저신용자, 잇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로 영업에 애로가 많은 자영업자들이 더 크게 받는다. 집값 등 부동산시장과 가계소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 늦기 전에 각 경제주체는 빚 다이어트에 나설 때다. 집값 등 자산시장 거품이 꺼지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정치권도 3·9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를 노린 선심성 돈 뿌리기 공약을 삼가야 할 것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