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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의 프리즘] 대선 앞둔 정치권의 추경 증액 담합

 

나라살림, 재정은 국민과 기업들이 부담하는 세금으로 마련해 쓰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세금만으로 재원을 충당할 수 없어 국가가 채권을 발행해 조달할 경우 여러 부작용과 후유증을 낳는다.

 

정부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압박에 못 이겨 한국전쟁 와중이던 1951년 이후 71년 만에 1월 추가경정예산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대선을 앞둔 선심성이란 비판을 무릅쓰고 14조원 규모로 편성했다. 35조원(더불어민주당), 50조원(국민의힘)으로 늘리자는 요구가 이어지더니만,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에서 4배에 가까운 54조원으로 뻥튀기됐다.

 

추경 증액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3ㆍ9 개나리 대선과 6ㆍ1 지방선거 등 잇따른 선거에서의 표를 의식해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증액에 대해선 여야 합의보다 행정부 판단이 고려돼야 한다’며 반대하자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부총리의 월권’ ‘임명 권력은 선출 권력의 지휘를 받는 게 정상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사이 채권시장에선 금리 발작이 나타났다. 시장금리의 기준인 국고채 금리가 여야의 추경 증액 방침이 전해진 1월말부터 치솟았다. 특히 여야가 추경을 35조~50조원 규모로 증액하기로 합의한 8일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2.303%로 전일 대비 0.066%포인트 급등했다. 2.303%는 2018년 5월 이후 45개월 만에 최고치다.

 

추경 재원은 대부분 국채를 발행해 충당해야 한다. 수십조원 국채가 발행되면 시장에 채권 물량이 많아지고, 채권값이 떨어지면 채권 금리는 뛴다. 그 영향을 받아 시장금리가 오르고, 대출금리도 상승한다. 결국 대출이 많은 소상공인ㆍ자영업자는 물론 영끌ㆍ빚투를 감행해온 2030 세대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추경을 편성해 소상공인들에게 코로나19로 인한 손실을 보상한다지만, 정작 대출금리가 상승해 이들 취약계층과 한계기업의 어려움이 커지는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 세계적인 금리인상 추세에 맞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판에 정부와 정치권이 기름을 부어대는 꼴이다. 

 

 

급증하는 나랏빚이 국가신용등급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 또한 간과해선 안 된다. 국고채 금리가 급등한 그날 홍남기 부총리는 추경 증액에 반대하며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사의 움직임을 전했다. 아직은 코로나 위기 속에서 한국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을 이해하는 편이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한계에 와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역대 최상급으로 평가하고 있다. 코로나 위기 상황에도 등급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및 그에 따른 국가채무 증가 속도에 대해 지난해부터 경고음을 발령해왔다.  

 

무디스는 지난해 5월 보고서에서 “오랜 기간 확립돼온 한국의 재정규율 이력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치는 지난 1월 보고서에서 여야 유력 후보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대선은 중장기 재정 전망에 불확실성을 가져올 것”이라고 언급했다. 

 

국가채무는 올해 슈퍼 팽창 본예산(608조원) 기준으로 1064조원, 정부 추경안(14조원)을 감안하면 1075조원으로 1000조원을 돌파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50%를 넘어선다. 여야 합의로 추경을 증액하면 그만큼 국가채무가 불어나고, 상반기 국제 신용평가사와의 협의 과정에서 이해를 구할 일도 많아질 것이다. 행여 국가신용등급이 낮아질 경우 우리나라 기업과 은행들의 신인도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1997년 말 닥친 외환위기를 짧은 기간에 극복한 경험이 입증하듯 건전재정은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인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주요국과 비교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아직 낮으니 빚을 내서 재정을 팽창시켜도 괜찮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한국은 급하면 달러나 유로, 엔화를 찍어낼 수 있는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미국·유럽·일본 등과 단순 비교해선 곤란하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수치보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우려하듯 가파른 나랏빚 증가 속도가 더 문제다. 현 정부는 마음껏 쓰고 부담을 뒤로 넘기는 ‘세대 착취’ 논란도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국회가 예산심사권을 갖는 한편 정부에는 증액 동의권이 있다. 역대 최장수 경제부총리인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교통정리를 하는 책임의식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불공정 판정 논란을 딛고 베이징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첫 금메달을 딴 황대헌 선수의 소감이 눈에 들어온다.

 

“깔끔한 경기 중 가장 깔끔한 경기로 전략을 세웠다. 저를 응원해준 국민 여러분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사실 이 태극마크, 국가대표라는 자리가 무겁고 또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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