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정부의 희생자 보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70여년만에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물꼬가 트였다고 하지만 가족관계 불일치, 일반재판 수형 희생자 등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들은 쌓여있다.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미디어제주·제이누리·제주의소리·제주투데이·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함께 희생자의 유족 인터뷰를 통해 명예회복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4·3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74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참석했다. 당선인으로선 처음으로 추념식에 온 것이라 그 의미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만큼 차기 정부에서 4·3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할 것이란 기대도 커지고 있다.
이날 윤 당선인은 추념사에서 ‘명예회복’을 강조했다. 희생자와 유가족의 명예회복. 이는 제주4·3특별법에서 ‘진상규명’과 함께 주축을 구성하고 있다. ‘회복’이란 원래의 상태로 되돌린다는 뜻이다. 4·3 당시 자행됐던 국가폭력으로 인해 훼손된 희생자와 그 가족의 명예를 되찾아주는 것. 이는 국가의 책무로 규정돼 있다(4·3특별법 제4조).
지난해 4·3특별법 전부 개정이 이뤄지면서 희생자와 유가족의 명예회복에 큰 진전이 있었다. 공권력에 의해 피해 입은 사람들과 그 가족에게 정부가 보상하는 법적인 근거가 마련됐다. 또 당시 불법 군사재판에서 ‘죄인’으로 낙인찍힌 수형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법무부가 나서서 풀어주는 근거가 마련됐다.
하지만 ‘온전한 명예회복’까지는 갈 길이 멀다. 정부가 인정하는 ‘희생자’(또는 유족)로 결정되는 일조차 어려운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호적(가족관계등록부)상 관계와 실제 관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다. 4·3은 대한민국 단독 정부가 수립되기 전, 미군정이 한반도 이남을 점령한 기간을 포함하고 있다.
해방 이후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혼란스러웠던 시기, 출생·혼인·사망신고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웠다. 게다가 가족 중 누군가 목숨을 잃었다고 하면 ‘빨갱이’로 몰려 변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신고를 하지 않은 사례도 많았다. 부모가 학살당해 지인이나 친척의 호적상 자녀로 들어간 유족도 드물지 않다.
7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4·3으로 뒤엉킨 가족관계를 바로잡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 가족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아버지 묘를 파내서 DNA를 채취하고 개인이 법정 소송(친자확인소송)을 감당해야 한다. 이마저도 가족의 적극적인 지지가 없거나 경제적인 여건이 여의치 않을 경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또 불법 군사재판에 대한 직권재심 제도는 70여년만에 겨우 마련됐지만 일반재판에서 억울하게 ‘죄인’이 된 희생자들은 배제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엄격한 법적 절차의 잣대를 들이대며 난색을 표한다. 하지만 70년 전 공권력은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무차별적으로 제주도민들을 짓밟았다.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해 전제되어야 할 조건은 그 누구도 배제돼선 안 된다는 점이다. 과거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지금의 법적 기준을 가지고 ‘희생자’를 걸러내선 안 된다. 어떤 이유에서든 폭력이 정당화하는 경우는 없다. 더군다나 윤 당선인이 강조하는 '자유 민주주의국가'라면 말이다.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는 올해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와 공동으로 4·3 유족들의 사례를 보도해 희생자 명예회복의 현주소와 과제를 짚어보려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한 달여 앞두고 있다. 이번 공동 기획보도는 차기 정권이 “온전한 명예회복”이라는 약속을 지키는 데 필요한 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환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제주투데이=조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