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리터(L)당 2000원을 넘나드는 기름값에 운전대 잡기가 겁난다. 10만원 들고 나가 장바구니 채우는 것도 힘들다. 찬거리를 사다 보면 1만원짜리 지폐가 잔돈처럼 여겨질 정도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1%. 4%대 물가상승률은 2011년 12월 이후 10년 3개월 만이다. 물가 오름세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봉쇄가 풀리면서 전 세계 소비가 동시다발적으로 늘었는데 글로벌 공급망이 차질을 빚었다. 이 와중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에너지, 원자재, 곡물 수급체계 전반이 흔들렸다. 인플레이션 공포가 확산하자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긴축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3월 금리인상에 이어 5월 초 양적긴축에 돌입하면서 추가로 금리를 한번에 0.5%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내년 중반 미국 금리가 3.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기준금리가 현재 1.25%이니 앞으로 2.5%포인트는 더 올려야 자본 유출을 막을 수 있다.
물가는 앞으로도 더 오르면 올랐지 내릴 조짐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봉쇄 조치로 중국산 원부자재 공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번 인플레이션은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생산단가가 높아짐에 따른 것으로 물가급등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된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3.1%에서 3.0%로 내려잡는 한편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1.9%에서 3.2%로 크게 높일 정도다.
이처럼 물가 문제가 5월 출범하는 새 정부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물가는 단순한 경제지표에 그치지 않는다. 민생과 직결되는 중대 사안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물가를 포함한 민생안정 대책을 새 정부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라고 강조한 배경이다.
물가관리가 핵심 업무인 한국은행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 내정자는 ‘인플레이션과 경기하강의 동시 확대’를 우려했다. 국제 금융기관에서 활동한 경험을 살려 난제를 풀어주길 기대한다.
문재인 정부 홍남기 경제팀은 현재 20%인 유류세 인하폭을 5~7월 한시적으로 30%로 확대하기로 했다. 휘발유 1L를 구매할 때 유류세는 820원이 붙는다. 교통·에너지·환경세(교통세) 529원, 주행세(교통세의 26%) 138원, 교육세(교통세의 15%) 79원 등 746원의 유류세에 부가가치세(유류세의 10%)를 덧붙인 금액이다.
정부의 유류세 20% 인하 조치로 휘발유 1L당 세금은 총 656원으로 기존(820원)보다 164원 내려갔다. 30% 인하 조치를 적용하면 세금은 574원으로 더 줄어든다.
유류세 인하 효과가 상당하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제안대로 굳이 5월까지 기다릴 일이 아니다. 시행령 개정 입법예고 등을 서둘러 유류세 추가 인하 시점을 하루라도 앞당겨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교통세를 조정하면 인하폭을 37%까지 확대할 수 있다.
탄력세율이 적용되는 교통세는 현재 법정세율 L당 475원보다 높은 529원이다. 법정세율인 475원을 기준으로 유류세를 30% 인하하면 유류세는 516원까지 내려간다. 기존 820원에서 37%가량 인하되는 셈이다.
더구나 유류세를 재원으로 하는 교통시설특별회계는 매해 수조원의 여유자금이 쌓이고 있으니 국제유가가 내려갈 때까지 유류세를 37% 인하해도 특별회계의 재원 부족 문제는 나타나지 않을 게다. 기름값 때문에 화물차 운행 중단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회계기금에 여윳돈을 쌓아놓아선 곤란하다.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이긴 정부는 없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공습은 개발도상국들을 민중항쟁 및 국가부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페루에선 물가급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민중 봉기로 번졌다. 스리랑카에선 국채 가격이 급락하면서 디폴트 우려가 제기된다.
윤석열 정부도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돈풀기 공약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주요국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대거 풀었던 자금을 거둬들이는 판에 대선 공약인 소상공인 손실보상용 50조원 추경 편성을 고집하는 역주행을 해선 안 된다. 병사 월급 200만원으로 인상 등 선심성 공약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물가관리와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는 새 정부의 첫 시험대이자 능력을 판가름하는 중차대한 숙제다. 경제안보 차원에서 정책 역량을 총동원해야 할 것이다. 고물가 충격을 완화하는 다각도 대책을 마련해 민생 안정을 꾀해야 한다. 대통령 집무실에 물가 및 공급망 상황판을 설치하고 점검하는 자세도 요구된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