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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명숙→김향옥→김나연…"잊혀가는 일노래 널리 알릴 것" 제주인의 풍습·삶·애환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문화

제주의 전통 음악 문화유산인 일노래.

 

일노래는 쉽게 말해 밭일, 바닷일, 집안일 등 일하면서 불렀던 노래를 일컫는다. 한자 말로 노동요다.

 

제주에는 1천400여 수의 다양한 일노래가 전해온다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잊히고 사라지고 있다.

 

제주의 풍습과 전통, 제주어를 고스란히 간직한 일노래의 의미와 가치, 전승 방안을 2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 3대째 이어가는 제주 일노래 전통

 

제3회 제주 일노래 상설공연 개막식이 열린 지난 11일 오후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앞마당.

 

제주도무형문화재 제16호 제주농요 2대 보유자인 김향옥(70) 씨와 그의 외손녀 김나연(20) 씨가 함께 무대에 올랐다.

 

할머니와 손녀가 각기 무대에서 공연하고, 마지막에 모든 출연자와 함께 제주 민요 '느영나영'을 불렀다.

 

출연진은 물론 행사장을 찾은 관객들 역시 흐뭇한 모습으로 볼 수밖에 없는 그 날의 명장면이었다.

 

김향옥 씨와 김나연 씨는 지난 2007년 타계한 제주농요 1대 보유자 고(故) 이명숙 명창의 큰딸이자 증손녀다.

 

3대에 걸쳐 제주 일노래, 제주농요 전통을 이어가는 셈이다.

 

제주농요는 일노래 중 하나다. 농사할 때 부르는 노래인 만큼 다른 일노래에 비해 종류도 다양하고 수도 많다. 척박한 화산지대에서 한가지 농사만 지을 수 없었던 제주의 특수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명숙 명창은 1993년 전국민요경창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해 명창 칭호를 받은 뒤 2002년 5월 제주도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된 제주 민요사에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의 각종 공연장, 일본 도쿄·오사카 등지의 공연을 두루 다니며 제주 농요를 알렸고 제주농요보존회의 전신인 한라예술단을 만들었다. 음반 녹음을 통해 일노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명창이 타계한 뒤 어머니의 뒤를 이어 보유자가 된 첫째 딸 김향옥 씨와 전승교육사가 된 둘째 딸 김향희 씨를 중심으로 제주농요 전통이 이어졌다.

 

이들은 제주농요보존회를 통해 제주농요의 보존과 전수를 위한 각종 강의와 공연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전통은 다시 김나연 씨로 이어지고 있다.

 

김나연은 6살부터 외할머니 김향옥 명창으로부터 제주농요와 창민요를 배우기 시작했다. 제주전국민요경창대회에서 우수상 등을 수상했고 제주농요보존회원으로 제주농요 전승공연과 탐라문화제공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김나연은 제주의 전통예술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갈 성장하는 젊은 소리꾼이다.

 

◇ "소중한 제주전통문화 알리고 싶다"

 

"어머니는 해녀셨고 소리꾼이었죠. 언제나 바쁘셨어요. 물질하러 나가셨고, 밭에서 일하시고, 집안일 하시고…."

 

김향옥 씨는 어머니 이명숙 명창에 대한 기억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마음이 아픈 듯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알아주는 소리꾼이었기 때문에 제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소리를 잘해서 이명숙 명창이 무대에 오르면 관객들의 어깨춤이 절로 날 정도였다.

 

농요를 비롯한 제주 일노래에 대한 이 명창의 열정은 대단했다.

 

일노래 사설(판소리나 민요 등에서 소리와 소리 사이 또는 같은 가락이 이어지는 부분에 이야기하듯 말하는 부분)을 일일이 동네 삼춘(이웃 남녀 어른을 친근하게 부르는 제주어)들에게 묻고 내용을 채록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해 글을 몰랐지만 급한 대로 손바닥에 자신만 알 수 있는 신호로 적어 기억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 명창이 부르는 일노래 사설 속에 제주 사람들의 삶의 고충, 애환이 그대로 담겨 있다.

 

김향옥 씨는 "어머니는 항상 '감정과 혼을 담아서 애환의 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며 "노래 속 사설의 감정, 의미에 관해 설명해주시곤 했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었다"고 말했다.

 

제주의 일노래는 그냥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다.

 

쉴 새 없이 불어오는 바람과 싸우며 밭에서 일하다가도 물때가 되면 손에 든 호미를 내던지고 바다로 뛰어들었던 강인한 제주 여성들의 삶을 몸으로 마음으로 이해해야만 부를 수 있었다.

 

김씨는 "글로만 배우면 안 돼요. 물 때 좋으면 바다로 들고, 새벽 4시에 일어나 밭에 가 온종일 뙤약볕 아래 피부가 검게 타도록 밭에서 김매고, 집에 들어가서도 쉴새 없이 살림하며 한평생 맺힌 서러움, 한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도 제주 일노래 사설을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그걸 느끼지 못한 사람은 그 맛을 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이명숙 명창은 지난 2007년 5월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두 딸에게 당부했다.

 

김씨는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날 제 손을 잡으면서 이것(제주농요 전통)만은 꼭 지켜달라고 말했다"며 "다른 것은 버리더라도 소리만은 지켜달라는 어머니와의 약속, 그 당부를 지금까지 마음에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제주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어가야 할 중요한 전통이기 때문이다.

 

다시 그 전통을 잇는 이 명창의 증손녀 김나연 씨는 20대 젊은 세대로서 꿋꿋이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과거 경험하지 못한 부분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며 생소한 제주어로 된 제주농요를 부르기가 쉽지 않지만, 할머니이자 2대 보유자인 김향옥 씨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고 있다.

 

김나연 씨는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하다 보니 아주 익숙해졌다"며 "잊혀가는 제주 일노래를 힘을 보태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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