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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새벽 일이 하루 삶을, 한날 일이 일년 삶을 지탱해 준 어머니 인생

어쩌다가 밤낮이 바뀌어버린 아기처럼 요즘 들어 어머니는 낮에는 달처럼 주무시고 밤에는 해처럼 배회하신다. 엊그제는 거의 하룻밤 하룻낮, 24시간을 주무시기만 하셨다.

 

‘혹시나….’ 하는 걱정이 불안스레 꿈틀거려서 가만히 어머니 얼굴에 귀를 대보았다. 아무래도 숨결이 너무 약하신 듯하다. 갑자기 덜컥 두려움이 솟구친다. “아고게! 어머니, 얼른 일어 나십서! 저녁때가 다 되어수게!”하고 큰 소리로 깨워본다. 반응이 없으시다. 그 순간 ‘아직은 안 돼!'하는 조급함이 급하게 심장을 두드린다. 얼른 몸을 기울여서 어머니의 눈꺼풀을 뒤집어 본다.

 

그 순간 “야이, 무사?(얘, 왜 그래)”하면서 거칠게 밀치신다. ‘아고, 더 주무십서, 예! 미안허우다. 어머니가 나만 나둬동(놔두고) 솔째기(살짝이) 아버지한티 가불카부댄(가버릴까 봐)....’이라고 멋쩍게 물러선다. ‘역시, 우리 어머니시네….’ 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아직은 어머니에게 호령할 기운이 남아 있으시다.

 

오늘은 정오쯤에 일어나셨다. 거실로 나와 당신의 자리에 앉자마자 마당을 쳐다보시더니 한숨을 쉬신다. 더위에 시달리다 못해 머리를 숙인 상추들이 숨을 죽이며 온몸을 늘어뜨리고 있다. 예년보다 급하게 찾아든 무더위가 웬만한 채소들을 녹여버릴 태세다.

 

그래도 우리 집 상추는 제법 선방하였다. 날마다 잎사귀를 솎아내고 뜯어내도, 하룻밤만 지나면 원기를 회복한다. 고개를 치켜들고 나 보라는 듯 생글거리는 모양이 어머니 표현대로라면 ‘세상에 어신(없는) 상추’다. ‘종자가 좋은가, 땅이 좋은가, 심은 사람이 좋은가….’라고 중얼거리는 어머니에게 내가 상추를 한 아름 안겨드리며 큰소리를 친다.

 

“자네들도 어머니 닮아수게! 어머니도 한창일 땐 동트기 전에 일어낭, 갈중이(갈옷) 걸치멍 빌레왓으로 내돋지 않읍디강? 해가 중천으로 올라왕 과랑 과랑 열기를 내뿜으민, 우리들 몸에서 똠이 배롱배롱 솟아낭 임댕이(이마)에서 눈으로 물고랑 흐르듯 떨어지곡. 어그라(얼른) 흙 묻은 손으로 임댕이를 쓱 훔치민, 그 짠맛 머금은 땀이 귀한 깨한티 방울방울 떨어지주 마씸. 그제야 소뭇(사뭇) 깨가 저드라진(걱정스런) 어머니가 얼굴이 벌겅허게 달아오르멍 어그라(얼른) 일어사십디다 예.

 

그때는 깨가 배랑(별로) 귀한 건지, 우리가 그냥 덕분 어신 건지 몰라신디, 이제 왕 생각해 보난, 아명해도(아무래도) 어머니는 깨 편을 든 거 닮수다. 더위 먹은 나가 털썩 하니 땅바닥에 퍼질러 앉앙 엉덩이를 질질 끌멍 검질(김) 매는 시늉을 허민, 검질보다 먼저 깨가 꺾어지멍 자빠집디다(쓰러집디다) 예! 경 허민(그렇게 하면) 모음이 다급해진 어머니가 얼른 골갱이(호미)를 내려놓으멍, 우리를 막 다울렸주(재촉했지) 마씸. "제게(얼른) 일어낭 바당더레 돌으라! 더 일허당은 히여뜩 해영(어지러워서) 자빠짐직 허다, 이!”

 

그러면 우리는 속으로 ‘아고, 소망 일었져.’ 쾌재를 부르멍, 앉은 자리에 골갱이 대껴동(던져두고) 부리나케 바당으로 내돌아수게(내달렸지요). 아, 바다에서 불어오는 남풍이 얼마나 서늘하던지, 세상에 그때추룩(처럼) 보름(바람)이 고마운 적도 어십디다게. 어머니도 얼른 태왁구덕 짊어지곡 걸음아 나 도와주라 허멍 서둘러서 바당으로 내돌아신디, 어머니 발걸음보다 구덕소리가 더 신바람나게 들락키멍(들썩거리며) 저 먼저 달려갑디다.

 

어머니가 그추룩(그렇게) 검질 매곡 물질 허멍 2남7녀 아홉 오누이를 배 고프지 안 허게 키워주시난, 우리는 몬딱(모두) 자네들(상추)추룩 어깨가 노릇허게(쳐지게) 기 죽지 아니 해연.... 저기 봅써(보세요), 어머니! 저 나비추룩(처럼) 팰롱팰롱(팔랑팔랑) 기십(기운과 자존감) 내멍(내면서) 걱정 어시(없이) 살아수게(살았습니다)!”

 

그렇다. 세상에 어머니들은 ‘잠을 자지 않는가 보다’라고 여겨질 정도로 어머니는 사시사철 365일을 일에 파묻혀 사셨다. ‘설문대 할망은 오름도 맨들곡 섬도 맨들곡, 만덕할망은 고생고생 호멍 모은 가산 몬짝(모두) 털어그네 숭년 들엉 굶는 제주 백성 멕영 살려신디(김종두 시인의 ‘사는 게 뭣산디’ 중 제주여인 5), 게무로사 나가 핏덩이로 낳은 나 새끼들을, 밥이사 굶이민 되크냐?’라는 게 어머니의 소신이다.

 

그런 어머니가 100년이 넘도록 억척같이 일만 일만 하고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가, 오늘은 기가 죽은 목소리로 딴 말씀을 하신다. “경해도 정옥아, 이 어멍 맨날 빈다리곹이(게으름뱅이처럼) 놀만 놀만 햄신디..., 놈들도 이추룩 놀멍 살암신가, 이?” 아, 어머니는 어쩔 수 없는 제주 여인, 탐라 할망이시다.

 

일제 강점기를 사시고, 6.25와 보릿고개를 지나시고, 열 명의 자식을 낳아 아홉을 키우시느라 갈중이와 머릿수건을 풀어본 적이 없으신 우리 어머니. 오죽하면 한겨울에 눈이 펑펑 내리는 날조차 소중이(물질할 때 입는 무명 속 옷)만 걸치신 채 차가운 바닷속으로 몸을 던져 넣으며 물질을 다 하셨을까. 눈이 허옇게 쌓인 밤, 온 세상이 고요하게 숨을 죽인 새벽, 잠이 든 어린 딸들을 깨워서 바다로 데리고 가던 ‘밤바르’의 시절은, 얼마나 서럽고 아프고 힘드셨으랴.

 

남의 논을 병작해서 여름 내내 땀 흘리며 정성을 쏟은 벼들이, 그만 거들락거리며(잘난 체 하며) 웃자라는 바람에, 가을 추수에 쌀알이 영글지 않은 쭉정이를 수확하게 된 낭패라니. 논 주인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볏짚을 달구지에 실어드리던 소작인의 송구함이여.

 

겨우내 마소에게 먹일 촐(꼴)을 장만하기 위해 한라산으로 올라가서, 2박3일을 들판에서 야영하며 배어 낸 촐을 달구지에 싣고서, ‘이랴 이랴!’ 소 부리는 소리를 목이 터지라 내지르며 집으로 내려오던 노동의 고단함. 오죽하면 ‘쇠로도 못 나난 제주 예조로 나신예’라는 속담이 전해져 내려올까.

 

봄이 되어 산과 들에 고사리가 자라서 얼굴을 삐죽삐죽 내밀기 시작하면, 우리 마을 대포 목장이 있는 거린사슴에서 영실 일대를 노루같이 누비며, 마다리 포대가 가득 차도록 고사리를 꺾어 짊어지고는, 1100도로 버스를 기세 좋게 세우면서 속으로는 노심초사 미안하고 불안했던 마음의 등짐이여.

 

아버지가 새마을운동으로 뛰어든 미역양식이 실패하자, 그래도 ‘한 가닥씩 붙어 있는 줄기나마 건져야 한다’라며, 물 묻은 미역을 비료 포대에 잔뜩 짊어지고서, 모슬포·중문·서귀포의 오일시장을 전전하며 팔아보다가, 그래도 남은 미역을 짊어지고 집집이 행상을 돌던 미역 장시의 고달픔이여.

 

생고구마를 기계로 썰어 말려서 절간고구마로 팔던 시절의 가을밤에는, 혹시나 ‘내일 모래엔 비가 쏟아지리라’라는 일기예보에, 달 밝은 밤 온 식구가 밭으로 나가서 대충 마른 고구마를 포탄 줍듯 화다닥 주워 담던 노동의 절박함이여.

 

한라산 골짜기마다 동백나무 열매가 영글어 가는 계절이 되면, 마다리 포대 하나 허리에 차고 자루(작은 포대) 하나 가슴에 안고 한라산 골짜기로 스며들어 가서, 하루 종일 동백 열매를 주워 담아 포대 가득 채우고서,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질 즈음이면 무거운 짐을 잔뜩 등에 지고서 히여뜩 히여뜩(쓰러질 듯) 거리며 산에서 내려와, 기약 없는 버스를 기다리던 초조함과 외로움, 두려움 가득하던 새가슴이여.

 

‘농사와 물질을 합친 것보다 장사가 한 밑천 더 돈이 된다’는 도시 삼춘의 충고를 따라, 보리쌀 곤쌀을 짊어지고 오일장을 다니며 됫박으로 팔아보니, 남기는커녕 오히려 밑지는 수지타산. 막무가내 ‘홑썰(조금) 더 달라’는 아는 얼굴들의 요구를 어떻게 모른 척 하랴. ‘장사는 아무나 허는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사주’ 하시며, 마침내 구덕에 태왁을 짊어지고 바다로 달려가던 제주해녀의 순진한 실패담이여.

 

문득, 오래전 한 방송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추운 겨울 바다로 몸을 던지는 해녀 할머니에게 피디가 묻는다. ‘바다에 해산물이 많으꽈?’라고. 그러자 별걸 다 묻는다는 듯이 ‘배랑 어수다(별로 없다)’라고 답하신다. 당황한 피디가 “근데 왜 들어가세요?”라고 되묻자, 해녀 삼춘이 ‘별걸 다 묻는다’라는 표정으로 하시는 말씀. “어제도 했었거든!”.

 

그렇다. 그 무심한 듯 덤덤한 답이야말로 어머니가 백 년을 살아오시면서 삶을 견뎌 낸 비결이리라. 해녀들 속담에, ‘보지란이 퍼들다 보민, 호루 장군은 헌다(부지런히 애쓰다 보면, 하루쯤은 대상군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이제 와서 어머니의 인생을 되짚어보니, 새벽에 시작한 일이 하루의 삶을 지탱해 주고, 한 날의 일이 일 년의 생명을 이어주었다. 하루가 백 년처럼, 백 년이 하루 같이 제주도 어머니의 부지런으로 살아내다 보니, 어느새 백 년이 넘는 인생의 여정을 걸어오시게 되었다. 평생을 일만 하시고서도 백 세가 넘어서 주어진 휴식의 시간이 그저 미안하기만 한 어머니에게, 그 옛날의 광고 문구를 전해드린다.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는 노세요!”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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