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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일제강점기 다양한 역사·문화유산 엿볼 기회
제주 한바퀴 올레길 걸으며 건강·행복·배움 얻어

 

"걸어서 행복해져라. 걸어서 건강해져라. 오래 사는 최선의 방법은 끊임없이, 목적을 갖고 걷는 것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말이다.

 

제주의 대표 도보여행길 올레길을 걷다보면 대문호의 말처럼 '건강'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할 수 있다.

 

제주의 '역사·문화'다.

 

걸으면서 건강과 행복, 게다가 배움도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제주를 한 바퀴 잇는 올레길 437㎞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 문화유산과 흔적들을 만나보자.

 

◇ 제주 자연풍광 담은 보물 '탐라순력도'

 

올레길을 걷다보면 탁 트인 바다와 오름 곳곳에 숨어있는 절경 등에 저절로 감탄을 하게되곤 한다.

 

동시에 '지금 봐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그 옛날에는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돋기도 한다.

 

이를 조금이나마 해소해 줄 수 있는 게 바로 조선시대 제주의 모습을 그린 기록 화첩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보물 제652-6호)다.

 

조선 숙종 1702년 3월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도내 각 고을 순시를 비롯해 한 해 동안 거행했던 여러 행사 장면을 화공(畵工) 김남길에게 그리게 하고 간략한 설명을 곁들여 만든 화첩이다.

 

 

43면으로 된 가로 35.5㎝, 세로 55㎝ 크기 탐라순력도에는 41가지 그림이 담겼다.

 

올레길 1코스에서 만나볼 수 있는 성산일출봉은 '성산관일'(城山觀日)이라는 제목으로 화첩에 실렸다.

 

이형상 목사 일행이 성산일출봉에 올라가서 해 뜨는 장면을 보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성산일출봉을 입체감 있게 표현하면서도 봉우리까지 올라가는 길이 매우 가파르게 묘사돼 있는데 지금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파도치는 바다 한가운데 떠오르는 해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며 그 아래 우도의 모습도 함께 그려져 있다.

 

탐라순력도 '천연사후'(天淵射帿)에 담긴 올레길 7코스 천지연의 모습은 독특하다.

 

제주목사 일행이 천지연 폭포에서 활을 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폭포의 한쪽 편에 과녁을 설치해 화살을 쏘는 모습, 폭포 좌우에 줄을 동여매고 짚이나 풀로 만든 인형인 추인(芻人)을 달아 화살을 주고 건네받는 모습을 통해 경치를 감상하며 무예를 즐기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올레길 8코스에 있는 천제연 폭포에서도 '현폭사후'(懸瀑射帿)란 제목의 그림으로 이와 비슷하게 활을 쏘는 모습이 표현돼 있어 눈길을 끈다.

 

이외에도 다양한 올레길 풍경이 화첩에 담겨 있다.

 

깊어가는 가을 사방에 주렁주렁 매달린 귤로 금빛 풍광을 담은 '고원방고'(羔園訪古), 용이 사는 연못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용연(龍淵)의 다른 이름 취병담(翠屛潭)에서 배를 타며 풍류를 즐기는 '병담범주'(屛潭泛舟), 산방산의 산방굴 안에서 술잔을 드는 모습을 그린 '산방배작'(山房盃酌) 등이 제주의 아름다운 옛 올레길 풍경을 보여준다.

 

 

◇ 제주 역사·문화 걸으며 보고 배우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만 올레길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선사시대부터 탐라국, 고려·조선시대,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제주 역사와 제주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는 다양한 문화유산들이 있다.

 

제주의 남서쪽 해안을 따라 이어진 올레길 12코스에는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고산리 유적이 있다.

 

우리나라 신석기 유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받아 중·고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고고학적 가치를 인정받는 유적이다.

 

고산리 유적은 수월봉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넓은 들판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지난 1991년부터 3차례의 발굴조사를 거쳐 한반도 빗살무늬토기보다 2천년 앞서 만들어진 '고산리식 토기'와 후기 구석기 전통 석기 등 한국 신석기문화 형성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유물이 나왔다.

 

이로써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시작점이 종전 강원도 오산리 유적을 기준으로 했던 기원전 6천년에서 기원전 8천년으로 수정됐다.

 

올레길에는 고산리 유적뿐만 아니라 신석기·청동기 유적이 발견된 강정동 유적, 탐라국(耽羅國) 형성기로 여겨지는 기원 전후 형성된 취락 유적인 화순리 유적 등이 있다.

 

 

올레길 2코스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에는 탐라국을 세운 고·양·부(高·梁·夫) 삼신인(三神人)이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를 맞아 혼인을 올린 연못 혼인지(婚姻池)가 있다.

 

벽랑국 공주는 지금의 온평리 바닷가에 떠내려온 나무상자 안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이 해안을 '황루알'이라고 부른다.

 

전설에 따르면 이 나무상자 안에서 오곡의 씨와 송아지, 망아지 등이 나와 제주의 농경과 목축이 시작됐다고도 한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혼인지는 지난 1971년 제주도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됐다.

 

온평리마을회에서는 제주 고유의 혼례잔치 축제인 '혼인지 축제'를 매년 10월 개최하고 있다.

 

올레길 10코스가 지나는 서귀포시 안덕면 용머리 해안에는 커다란 범선 한 척이 서 있다.

 

17세기 네덜란드 상선을 본뜬 하멜 상선 전시관이다.

 

하멜이 탄 선박이 난파돼 이곳에 표착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80년에 네덜란드 대사관과 공동으로 세운 것이다.

 

1653년(조선 효종 4년) 8월 16일 하멜 일행이 탄 네덜란드의 상선 스페르웨르호는 일본으로 가던 중 거센 풍랑을 만나 제주 해안에 난파됐다.

 

당시 승선원 64명 가운데 28명은 숨졌고, 나머지 36명은 조선에 억류됐다.

 

 

조선에 억류된 동안 21명이 세상을 떠났다.

 

13년 뒤 이 배의 서기였던 하멜은 동료 8명과 함께 일본으로 탈출, 고국으로 돌아가 조선에서 겪은 경험담을 자세히 쓴 보고서를 남겼다. 이를 바탕으로 출판된 책이 바로 우리나라를 서방에 처음 알린 '하멜표류기'다.

 

하지만 하멜 일행의 정확한 표착지(물결에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뭍에 닿은 곳)에 대해서는 서귀포시 대포·중문, 강정, 모슬포, 사계 해안,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한장동과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2리 사이 해변 등 논쟁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이외에도 올레길 곳곳에는 제주의 옛 관청이 있던 시설인 '제주목관아', 몽골군에 대항했던 삼별초 역사를 엿볼 수 있는 '항파두성',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중국 침략을 위한 전초기지로 사용됐던 '알뜨르 비행장' 등 다양한 역사·문화 현장을 걸으며 엿볼 수 있다.

 

최근 국립제주박물관과 제주올레가 업무협약을 체결, 올레길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제주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안은주 제주올레 대표이사는 "올레길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올레길의 매력이 더욱 확대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재열 국립제주박물관장은 "올레길을 찾는 이들이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더욱 쉽게 살펴볼 기회가 마련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국립제주박물관은 제주 역사문화의 보고로서 지역 문화유산의 가치 확산을 위해 연구와 협력을 확대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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