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양국이 2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개시를 공식 선언했다. 협정이 발효되면 제주도의 1차 산업 붕괴는 불보듯 뻔하다.
한·중 FTA는 한·미, 한·EU FTA와 다르다. 제주지역 1차 산업 피해 규모가 '쓰나미급'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중 FTA가 체결되면 제주 감귤 생산 감소액이 10년간 최대 1조6천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농업 분야를 민감품목으로 정해 최대한 보호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중국 입장에서는 농업 분야의 개방 확대를 요구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농산물을 최대한 민간품목으로 묶어 다양한 보호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민감품목에 대해서는 아예 개방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관세를 장기 또는 부분 감축키로 한 만큼 농산물을 민감품목에 어느 정도 포함시킬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우리 정부는 1500여개 농산물 중 15~20% 정도를 개방시 피해가 큰 민감품목으로 보고 있다.
◇제주 피해 예상 규모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중 FTA가 발효되면 2.3%의 국내총생산(GDP) 증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FTA 체결후 10년간 과일은 10억2000만달러, 채소는 9억7700만달러 규모의 생산이 줄어드는 등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했다.
제주의 생명산업인 감귤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2013년 한·중 FTA가 발효할 때 발효 10년 후 감귤생산 감소액이 최대 1644억원에 이르고 향후 10년간 감귤 누적 생산 감소액은 최소 1조624억원에서 최대 1조5969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사)제주감귤연합회의 용역 의뢰를 받아 지난해 12월 완료한 ‘한·중 FTA 추진에 따른 제주 감귤산업 대응방안 연구’에서 한·중 FTA가 2013년 발효되고 관세철폐 기간은 10년, 검역상 수입규제가 완전히 해제된 상태를 가정해 이 같은 피해 규모를 산출했다.
2023년 기준 감귤생산 감소액은 1126억~1644억원으로 전망했다. 10년간 누적 생산 감소액을 1조624억~1조5969억원으로 추정한 것이다.
특히 농업소득 감소액은 2023년 1081억~1574억원, 10년간 누적 농업소득 감소액은 1조506억~1조5787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감귤 생산액 감소에 따라 전·후방 연관산업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간접피해액, 이로 인한 가계소득 변화에 따라 유발되는 소비 감소 등 피해를 모두 합친 총 경제적 파급효과는 10년간 2조683억~3조1087억원으로 분석됐다.
이 가운데 제주지역의 피해액은 1조1940억~1조7946억원이고, 제주를 제외한 15개 시·도의 경우도 8743억~1조3141억원으로 나타나 한·중 FTA로 인한 감귤산업 피해가 단지 제주뿐만이 아니라 전국으로 확산된다고 예측했다.
산업부문별로는 제주지역 서비스업(719억∼1081억원)의 생산액 감소가 제조업(246억∼369억원)에 비해 더 큰 것으로 분석됐다.
이같은 피해 예상액은 결과적으로 양국간 본격화되는 협의 진전 여부와 민감품목 등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 조율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에서 협상 개시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국 감귤산업은?
중국 감귤류 생산량은 2000년 878만3000t에서 2009년엔 2521만1000t으로 약 2.9배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연간 생산량(74만1000t)보다 무려 34배나 많은 수준이다.
나아가 중국은 감귤우위지역 발전계획에 따라 감귤특화단지를 조성, 생산량 증대는 물론 품질향상 등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또 중국의 감귤 수출량도 과거에는 20만t 미만이었지만 2008년 이후에는 86만t까지 증가하는 등 연평균 20%가량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특히 중국의 감귤 생산비는 300평당 29만1000원이어서 우리의 생산비 131만7000원의 22%에 불과하다.
◇1차산업 종사자·야권 반발
기획재정부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등 주무부처는 협상 과정에서 취약 분야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농민들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국에서 값싼 감귤류 등 시설채소와 과채류 등이 밀려들어올 경우 국내 농업은 붕괴할 수 밖에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이날 성명을 내고 "한·중 FTA는 국가 전반에 걸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나게 큰 통상협정이고 국가의 장기적 이익이 걸린 만큼 오랜 숙고와 국민적 논의가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또 "조급한 한·중 FTA 협상개시선언이 설익은 통중봉북 정책의 발로에서 나온 것이 아니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역시 양국의 협상개시 선언 직후 성명을 내고 "320만 농민들은 한·중 FTA 협상 개시를 바라보며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중국과의 FTA를 체결하겠다는 것은 정부가 농업과 농민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라고 울분을 표했다.
이들은 "이미 중국산 농산물이 점령하고 있는 우리나라 밥상이 한·중 FTA로 전면 개방된다면 식량자급률 5%도 붕괴될 것"이라며 "이는 국민들의 먹거리주권에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정부와 통상교섭본부 등은 농수산업과 일부 중소제조업 등 한·중 FTA 취약분야의 경우 중국산 제품 수입 확대로 인한 피해가 우려되나 협상과정에서 민감분야 배려 등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관계 부처와 한·중 FTA 연구지원단간 협력 체제 하에 치밀한 협상전략과 피해대책을 마련해 경제적 효과를 최대화하고 민감산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절차를 밟게 되나
박태호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천더밍 중국 상무부 장관이 이번 베이징 접촉에서 공식적으로 협상 개시를 선언함에 따라 이달 중 양국의 첫 협상이 이뤄질 예정이다. 협상은 큰 틀에서 민감품목을 보호하기 위해 2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양국은 우선 상품과 서비스, 투자분야의 분야별 협상지침을 협상하고 그 후에 합의된 협상지침에 기초해 전면 협상을 진행할 방침이다.
1단계 협상에서는 상품·서비스·투자·규범·협력 등에 대한 협상 분야별 협상지침(모달리티)을 도출한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상품 품목을 일반·민감·초민감품목군으로 구분하고, 장기관세철폐, 양허제외 등 다양한 보호방식을 마련할 방침이다.
일반품목에 대해서는 즉시·단기 관세철폐가 이뤄지고 민감품목으로 지정되면 장기 관세철폐나 부분 관세 감축이 적용된다. 초민감품목의 경우에는 양허 제외가 이뤄진다.
1단계 협상이 끝나면 이를 바탕으로 상품·서비스·투자·규범 및 협력 등 전 분야에 대한 본격 협상이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