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이전에 ‘경기도 다낭시’란 표현이 나돌 정도로 베트남을 찾는 우리나라 여행객이 많았다면, 올해부턴 일본 오사카·후쿠오카 등지가 한국인들로 붐빈다고 한다. 이동거리가 짧은 데다 저비용항공사들이 지방에서도 취항하고, 엔저로 여행비까지 그전보다 적게 들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가들이 기준금리를 올리며 긴축정책을 펴는 사이 일본은행은 통화완화정책을 유지해 엔화 가치가 하락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 100엔당 1200원이었던 원·엔 환율이 올해 4월 1000원대를 거쳐 최근 900원대 초반으로 내려갔다. 그 덕분에 일본을 찾는 여행객은 비수기인 2분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막혔던 국경이 개방된 지난해 10월 이후 여행수지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한국이 만성적 여행수지 적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데 비해 일본은 대규모 흑자를 나타내며 경상수지 개선 및 경제성장률 제고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올 4월까지 한국의 누적 여행수지는 61억2000만 달러 적자. 이와 달리 국경 개방이 한국보다 한달 늦었던 일본의 지난해 11월 이후 올 4월까지 누적 여행수지는 109억 달러 흑자다. 이는 일본 내 소비를 자극해 1분기 일본 경제가 연율 환산 2.7% 성장하는 데에도 보탬이 됐다.
여행수지 적자는 여름 휴가와 추석 등을 앞두고 늘어날 소지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한국보다 일본 물가가 싸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일본 여행이 늘어나는데, 원·엔 환율이 하락하면 일본 여행의 매력은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코로나 이전 수준의 80%가량을 회복했다. 이와 달리 한국에 온 일본인은 코로나 이전의 40%에 그쳤다.
세계가 모두 코로나 사태를 겪었는데, 왜 국경 봉쇄 해제 이후 유독 우리나라의 ‘보복 여행’이 많고 여행수지 적자가 불어날까. 한국을 찾는 관광객 중 비중이 가장 컸던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회복세가 더딘 영향도 크다.
4월 외국인 관광객은 90만명으로 코로나 이전(2019년 4월)의 55%로 회복됐다. 반면 유커는 당시의 24%에 머물렀다. 중국이 한국 단체관광의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한중국대사 발언 파문에서 보듯 한중 관계가 껄끄러워질수록 여행수지 적자는 더 커질 수 있다.
여행수지는 경상수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지만, 그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외국인 관광객이 현금과 카드를 통해 소비하면 국내 자영업자와 유통업체들이 혜택을 보고 소비 전반에도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여행수지를 포함한 서비스수지가 만성 적자지만, 큰 폭의 상품수지 흑자 덕분에 경상수지 흑자 기조를 이어왔다. 하지만 수출이 부진하니 상품수지 흑자가 줄고, 경상수지 흑자도 감소 추세다.
지난해 경상수지는 11년 만의 최저치로 위축됐다. 특히 올해 1분기엔 적자를 기록했다. 여행수지를 비롯한 서비스수지 적자가 커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거시경제 관리 측면에서도 긴요하다. 서비스수지에서 가장 큰 적자 항목인 여행수지를 개선하기 위한 국내 관광산업 활성화가 절실하다.
관광은 결코 가벼이 봐선 안 되는 산업이다. 관광객의 빠른 회복은 여행수지를 넘어 경상수지 개선과 성장률 제고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은은 우리나라 입국 관광객이 일본과 같은 속도로 회복되면 연간 0.12%포인트 수준의 경제성장 제고 효과가 있다고 추산한다.
정부는 2027년 외국인 관광객 3000만명 유치 목표를 내걸었다. 올해와 내년을 ‘한국 방문의 해’로 지정했다. 하지만 1분기 해외로 나간 우리 국민이 498만명으로 지난해 1분기(41만명)의 10배가 넘는다. 외국인 관광객도 늘어나긴 했지만 171만명에 그쳤다.
국내 관광의 매력도부터 높여 해외여행 수요를 흡수해야 한다. 관광지와 지방축제장의 음식이 비싸다는 불만이 많다. 국내 관광지 중 손꼽히는 제주도 여행비용도 마찬가지다. 골프장 등 코로나19 와중에 해외에 못 나가는 내국인을 대상으로 특수를 누렸던 업체들도 스스로 가격에 걸맞은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돌아볼 때다.
정부는 6월을 ‘여행 가는 달’로 정하고, 5만원 할인권을 주는 숙박세일 페스타를 진행하고 있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캠페인이나 단발성 이벤트로 여행수지의 기조에 깔려 있는 적자 흐름을 바꾸기는 어렵다. 너무 비싼 음식값과 택시기사들의 불친절은 외국인 관광객의 한국 재방문율을 떨어뜨리는 단골 지적사항이다. 한국 관광산업의 ‘고비용-저매력’ 구조를 바꾸기 위한 범정부적 각성과 정책이 요구된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