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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주인] 김학준 제주어교육연구소 대표 ... '제주어사전' 소명의 인생사
'제주어모바일사전'으로 청년과 대화 ... "제줏말, 자유로운 생활언어 정착이 꿈"

 

"드러 썸시민 게므로사 못 살리카양!"(마구 쓰다보면 그렇다한들 못 살리겠습니까)

 

어린 시절, 동네에서 꽤나 똑똑하단 소릴 들었다. 서귀포에서 한라산 넘어 제주시로 유학을 갔을 때도 전형적인 '범생이'었다. 영화와 책을 좋아했던 학생은 고향 제주를 떠나 서울로 떠났다. 그때 까지도 제주어는 커녕 제주에 대해 별달리 생각해 본 바가 없었다. 

 

하지만 철학을 전공하던 대학시절 어느 한 수업시간에서 지명의 유래를 꼭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직접 듣고 오라는 과제가 있었다. '내 고향 제주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나?'라는 생각에 부끄러웠고, 미안했다. 

 

"내 마음에 스파크가 튀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꿈틀거림과 울렁거림의 시작이 그 때다.

 

"제주어를 지켜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지킴을 실천해 왔고, 제주어가 생활언어가 되는걸 꿈꾸게 됐다. 

 

김학준 제주어교육연구소 대표.

 

그는 서귀포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린 나이에 한라산을 넘어 제주시로 '유학'을 갔다. 제주 최고의 도회지인 제주시로 가는게 유학이던 시기다. 학교와 책방, 영화관, 도서관 그 곳들이 전부 내 놀이터였다. 다른 말론 공부가 그의 유일한 놀이였다. 

 

그렇게 공부 좀 하던 그는 서울로 대학을 갔다. 이것도 유학이다. 제주에서 온 촌놈이 공부 좀 하니까 다들 몰려들었다. 김 대표는 "나도 그때 잘난 줄 알았다"며 웃었다. 그렇게 고향 제주를 떠나 서울생활에 적응할 무렵의 일이다.

 

'지명의 유래'를 묻는 과제가 출제되자, 내 고향 제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게 부끄러웠다.

 

그렇게 대학교 1학년, 2학년 방학때마다 무작정 배낭 하나 메고 제주도를 걸었다. 그제서야 제주도가 눈에 들어왔다. 제주도를 알아가다보니 제주어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관심만 있을 뿐 삶이 바빴다. 

 

그렇게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마치고 제주로 돌아와 교직에 섰다. 고교에서 교편을 잡고 철학과 윤리를 가르쳤다. 그때 또 다시 꿈틀거렸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엔 표준어 정책이 있었다.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칠 때, 수업할 때, 모두 제주어가 금기시 됐다. 사투리였다. 교실에선 쓸 수 없는 말이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교단에 서고 보니 여전히 학생들은 제주어 대신 표준어를 썼다."

 

자연스러운 표준어 구사와 잊혀진 제주어가 현실이었다. 제주어 보존에 대한 열정이 폭발했다. 

 

먼저 제주어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참고할 만한 자료가 거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들을 정리하고 더 깊이 알아가야 했는데 한참을 찾다 보니 대학 도서관에 관련된 자료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 책은 제대로 된 사전도 아니고 그냥 엉터리로 정리된 책이었다."

 

답답했다. 아예 사전을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친구·동료들에게 사전을 만든다고 했더니 다들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고생만 할 거라며 다들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래도 읽기 쉽고 재미있으며, 스토리가 있는 사전을 만들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책방에서 구할 수 있는 사전으로 만들자"고 결심했다.

 

"100권만 팔아도 기적이다"고 주변에서 말했다. 그럼 "목표는 1000권!"이라고 받아쳤다. 그렇게 기를 쓰고 만들어낸 사전이 '제주사 사용법 안내서-제줏말 작은 사전'이다. 5년이 걸려 사전을 완성했다. 2021년 9월의 일이다. 2000권 이상 팔렸다. 인생에서 만난 가장 기쁜 순간들 중 한장면이다. 

 

제주어사전을 만들고 난 뒤 다른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21세기 대한민국은 IT강국 아닌가?" 

 

요즘 젊은 세대들은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작은 휴대전화, 테블릿PC에 정보를 저장하거나 찾아본다. 그때 생각이 들었다. '사전은 쉽게 찾아볼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제주어모바일사전을 만들어야겠단 결심이 섰다.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바일 웹 플랫폼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기술적인 부분이 어려웠다.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업데이트가 필요했고, 기술자와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게다가 모바일 웹 개발비용도 만만찮았다. 어찌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서귀포 감귤농장에서 푼푼이 벌이는 해보고 있지만 쉽사리 덤벼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혜성이 나타났다. IT쪽 분야에서 일을 하는 아들이 거들었다. 그 덕에 포기하지 않고 밀고 갈 수 있었다. 8월 세상에 선을 보인 '제주어모바일사전'은 그렇게 탄생했다. 1년6개월여의 구상과 기획, 도전의 결과다.

 

반응은 뜨거웠다. 주변의 찬사와 박수소리가 들렸다. 신문과 방송 등 여러 언론에서도 그의 모바일사전의 탄생을 얘기했다. 그동안의 고생이 보람으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제주어모바일사전은 제주어에 담긴 문화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제주어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그는 이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제주어교과서!'

 

체계적으로 제주어를 가르칠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포부다. 제주어 교과서를 통해 체계적이고 세심하게 제주어를 교육할 환경을 만들어 줄 거라 기대한다. 그렇게 조금씩 제주어를 듣고, 쓰고, 말하다 보면 분명 효과는 있을 것이란 판단이다. "결국 교육밖에 답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에게 주변에서 던지는 질문이 있다. "제주어 보존의 끝은 어디냐?"고 물어본다는 것이다.

 

"명확하다. 제주어를 생활 언어로 다시 되살리는 것이다. 표준어와 제주어를 이중으로 구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제주어가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김 대표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기쁜게 아니라 기뻐지는거지", "마찬가지야 슬프다도 슬퍼지는거지."

 

"그렇기 때문에 '제주어를 지킨다'가 아니라 '제주어를 지켜가는 거지.'"

 

그는 오늘도 묵묵히 길을 가고 있다. 그 길 위에 다른 이들이 함께 걸어갈 수 있는 흔적을 남기고자 한다. 그의 제주어 사랑과 애정은 그렇게 순수하다. 제주어 보존을 향한 열정은 더 뜨거웠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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