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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1)
영화 제목 ‘세상 버리기’ ... 인간 싫어 도시 떠나는 주인공
자발적 단절 택한 철학자들 ... 주말농장 인기도 매한가지
사람이 싫어질 만한 뉴스들 ... 도시 벗어난들 답 있을까

영어 원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Leave the World Behind)’의 제목은 조금 불친절하다. 직역하면 ‘세상 버리기’ 쯤 될 것 같으니 아무래도 어색해서 그냥 ‘쿨’하게 영어 원제목으로 내보낸 것 같다.

 

 

‘leave ~ behind(뒤에 ~을 남겨두다)’는 표현은 대개 특정한 구호로 많이 동원된다. 미군의 모토는 “No Soldier Left Behind(한명의 낙오병도 남겨두고 가지 않는다)”이다. 미국 조지 부시 행정부의 초등 교육정책은 “No Children Left Behind(낙오 학생 없애기)”를 구호로 내세웠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런 구호들을 차용했는지 “한명의 낙오된 국민도 없게 하겠다”는 웅장한 포부를 밝혔었다. 참 좋은 말이지만 구호라는 것이 대개 그렇듯 그 비현실성은 어쩔 수 없다. 그저 마음은 그렇다는 정도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런데 이 구호에 대개 따라붙는 ‘no’를 떼어버리면 말이 조금 야박하고 살벌해진다. 영화 제목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는 그래서 조금 살벌한 느낌을 준다. ‘버리는’ 대상도 특정 개인이나 집단 정도가 아니라 아예 ‘세상’이다.

거치적거리는 세상을 내갈겨버리겠다고 한다. 세상이 도대체 주인공에게 무슨 몹쓸 짓을 했길래 이러는지, 지구를 버리고 화성이나 목성쯤으로라도 가버리겠다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뉴욕시에서 광고 마케터로 일하는 아만다(쥴리아 로버츠 분)는 어느 토요일 이른 새벽, 남편 클레이(에단 호크 분)와 아이들에게 상의도 안 하고 충동적으로 ‘주말 뉴욕시 탈출’을 결심한다.

롱 아일랜드(Long Island)에 있는 펜션을 예약하고 미리 짐을 다 싸놓고 남편과 아이들이 깨기를 기다리며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표정이 가족들과 오랜만에 떠나는 주말여행에 설레는 모습은 분명 아니다. 마치 큰 수술을 하러 들어가는 입원 가방을 싸놓거나 피난 짐을 싸놓고 망연히 창밖을 보는 아줌마의 모습이다.

롱 아일랜드 지역은 뉴욕시에서 자동차로 1시간 쯤 걸리는 거리에 있는 뉴욕주(州) 교외의 대표적인 부촌(富村)이자 부자들의 별장들이 많은 조용하고 풍광 좋은 곳이다. 아만다가 예약한 펜션 이틀 사용료도 2000달러(약 278만원)로 만만치 않다.

대학에서 영문학과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남편 클레이와 16살짜리 아들, 13살짜리 딸은 뜨악해 하면서도 별 문제 제기 없이 아만다를 따른다. 이 집안 ‘가풍(家風)’이 원래 그런 모양이다. 롱 아일랜드를 향하는 자동차 안의 분위기도 ‘놀러 가는 가족 분위기’가 아니다. 아무도 말이 없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던 어떤 카드회사 광고 장면과 같은 신나고 즐거운 모습은 아니다.
 

 

뉴욕을 탈출해서 한적한 도로로 들어서자 아만다는 차창을 내리고 신록(新綠)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교외의 풍경을 보면서 그제야 ‘안전지대’에 들어선 것처럼 안심이 되는지 생기가 돌면서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혼잣말처럼 ‘나는 인간이 싫다’고 말한다. 

보통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전원을 찾을 때 ‘도시 혐오’를 들먹이지 ‘인간 혐오(misanthropy)’를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만다가 주말만이라도 ‘leave behind’ 하고 싶어 했던 세상은 뉴욕이라는 ‘도시’가 아니라 그 도시에 사는 ‘인간’들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자신도 인간이면서 인간이 싫다는 것은 분명 우울하고 두려운 일일 텐데 아만다는 자신이 인간을 싫어한다는 데 자부심마저 느끼는 듯 묘하게 뿌듯한 표정이다. 아만다의 ‘혐인(嫌人)’ 발언은 가족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듯 운전을 하던 클레이는 그저 떨떠름하게 웃는다. 뒷좌석에서 앉은 아이들도 무덤덤하다. 

영화가 여기에 이르면, 감독이 영화를 시작하면서 아만다의 침실을 비쳐준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만다 부부 침대가 놓인 벽면은 온통 전위작가의 작품처럼 거친 붓질로 파란색 칠이 돼있는데 여기저기 깊이 패인 균열 위로 파란 칠이 덧칠돼 있다. 그 크고 깊은 균열 위에 파란 페인트칠한 모습은 아만다의 가릴 수 없는 ‘인간 혐오증’이라는 정신적인 상처와 균열을 상징하는 듯하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를 줄기차게 부르짖었던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루소(Rousseu)는 이미 1700년대 프랑스 파리를 향해 ‘도시는 신의 가래침’이라는 둥 혹은 ‘쓰레기를 조심스럽게 쏟아 놓은 곳’이라고 거의 저주를 퍼부어댔다. 법정 스님과 톨스토이가 매우 사랑했던 미국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ay David Thoreau‧1817~1862년)도 숲 속으로 돌아가 자발적 단절과 빈곤을 택했다.

미국의 시인이자 농부인 웬델 베리(Wendell Berry‧1923년~)는 ‘컴퓨터가 혁신이라면 진정한 혁신은 컴퓨터를 거부하는 것’이라며 도시에서 획득한 모든 부와 명예를 거부하고 산 속으로 들어가는 등 ‘도시 탈출자’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본래 ‘살어리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靑山)에 살아리랏다’라는 ‘청산 전통’이 있는 우리나라에도 ‘나는 자연인이다’란 방송 프로그램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도시탈출자들을 몇 년째 소개해도 끝나지 않는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귀촌’이든 ‘주말농장’이든 ‘전원주택’을 꿈꾸기도 하고 무리를 해서라도 저질러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도시생활의 소음과 환경오염이나 각박함에 지친 도시 혐오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아만다처럼 인간 자체가 싫어서 도시를 탈출하고 싶다는 것은 조금 당황스럽다. 
 

 

도시 혐오와 인간 혐오 현상이 사실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 혹시 루소나 데이비드 소로, 웬델 베리의 도시 혐오는 인간 혐오를 우회적으로 표현했을 뿐이고, 아만다의 ‘나는 인간이 싫어서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인간 혐오가 더 솔직한 진술일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행위들만이 아니라, 더욱 심각한 것은 인간 혐오를 유발하는 행위인 듯하다. 오늘도 굳이 애써 찾아보지 않으려고 하고, 혹은 외면하려 해도 인터넷에 인간 혐오를 유발하는 온갖 뉴스와 정보들이 넘쳐난다. 도시를 벗어난다고 인간 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미국의 한 사회보고서를 보면 30년 전만해도 대도시에 쏠렸던 인간 혐오(misanthropy) 현상이 10여년 전부터는 지방 소도시로까지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예외는 아닐 듯하다. 아마 그래서 귀촌이든 전원주택이든 주말농장을 실행에 옮겼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머금고 다시 도시로 철수하는 모양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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