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만다(줄리아 로버츠 분)와 클레이(에단 호크 분) 부부가 펜션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미 인터넷은 먹통이 된다. 유조선의 항법장치도 먹통이 돼 백사장으로 기어 올라온 것이 수긍이 된다. 이른바 인터넷 세상의 ‘블랙아웃’이다.
아만다와 클레이가 펜션에 돌아와 보니 안테나 TV가 아닌 IPTV도 먹통이다. 리모컨에 달린 모든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텅 비어있는 ‘블루 스크린’만 보인다. ‘초연결(hyper-connection) 시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블루 스크린 쇼크다. 심장마비처럼 공포스러운 일이다.
초연결 시대는 참으로 위대한 신세계처럼 보이지만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다. 지난 7월 미국 사이버 보안업체의 프로그램 업데이트 오류 하나가 ‘클라우드’를 통해 전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사태처럼 ‘초연결’된 작은 한 부분만 비틀어져도 대형유조선이 백사장으로 올라와 앉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
2018년 우리도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서울시 거의 전역이 ‘인터넷 블랙아웃’ 상태에 빠졌던 일을 겪은 적 있다. 다행히 그때만 해도 지금보다는 덜 초연결 사회였는지 전국이 먹통이 되진 않았다.
초연결 사회에서 한순간 접속과 연결이 끊어져버리면 우리는 태엽 풀린 인형으로 전락한다. 스마트폰은 이미 우리의 신체 일부가 돼버렸다.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나온다는 것은 심장이나 머리를 집에 두고 나오는 것과 같다. 스마트폰이 작동 안 한다는 건 심장이 멈추거나 뇌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다.
영화 속 아만다 부부의 16살 아들 아치와 13살 딸 로즈도 ‘초연결’이 끊긴 곳에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다. 초연결 인터넷 세상만 살아본 아치와 로즈는 자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그나마 아날로그 시대도 살아본 아만다와 클레이 부부는 와인을 마시며 추억의 아날로그 보드게임 ‘젠가(Jenga)’라도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만든 샘 이스마일(Sam Esmail) 감독이 수많은 아날로그 보드게임 중에서 하필 젠가를 선택한 건 우리의 초연결 사회라는 것이 젠가 탑 쌓기처럼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인 듯하다. 우리가 쌓아올린 ‘문명의 탑’이라는 것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젠가 탑처럼 부실하고 위태롭기 짝이 없다.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하늘까지 닿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에 죽기살기로 쌓아올리다 무너졌다는 ‘바벨탑’처럼 우리도 위태롭기 짝이 없는 문명의 탑을 쌓느라 여념이 없다. 우리가 도달하고 싶은 곳이 어떤 뜬금없이 곳이기에 이토록 아슬아슬한 초연결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젠가 게임은 직사각형 블록을 한층에 3개씩 놓아 18층으로 쌓아놓고 시작한다. 아래에서 하나씩 뽑아 위에 놓으면 이론상으로는 54층을 쌓을 수 있지만, 젠가 제조사가 자체 조사한 바에 따르면 ‘40층 3분의 1’이 최고기록이었다고 한다.
이스마일 감독은 우리 문명도 하부구조를 안정화하지 않은 채 더 높이 쌓아올리기만 하면 그 한계는 분명하고, 조만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아만다 부부에게 젠가 게임을 시킨 모양이다.
젠가 탑 쌓기 놀이에 블록은 무한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54개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더 높이 쌓기 위해서는 아래 블록을 빼어 쌓는 수밖에 없다. 우리의 문명탑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무한 공급되지 않고 한정된 지구의 자원을 빼어 하늘까지 도달하는 탑을 쌓으려고 한다.
지구의 한정된 자원으로 과연 몇 층까지 쌓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계속 한정된 석유나 석탄이든 광물이든 빼어서 쌓아올리기만 한다면 젠가 탑처럼 조만간 무너질 거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독일의 ‘막스 플랑크 인류역사과학 연구소(Max Plank Institute for the Science of Human History)’의 분석에 따르면 인류 역사는 어림잡아 8000세대를 걸쳐왔다고 하는데 지구를 이처럼 골수까지 빼먹은 ‘등골 브레이커’ 세대는 300년 산업화 시대를 살아온 10세대들이라고 한다.
유엔개발계획(UNDP)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전세계 인구 40%가 물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 열대우림에선 매년 축구장 15만개의 면적이 사라지고 있다. 지구의 담수는 전체 물의 2.5%에 불과하며 인구증가와 농업, 공업 등에서의 수요 증가로 인해 물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그 널렸다는 물도 ‘물 쓰듯’ 쓰면 이렇게 부족해지는데 다른 자원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겠다. 불과 300여년 동안의 산업화 시대에 우리가 땅속에서 빼어 ‘문명 탑 쌓기’에 태워버린 석유, 석탄, 광물자원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석탄자원은 이미 거의 고갈된 모양이고, 세계 석유자원 고갈 시점도 머지않은 2040년으로 예상한다고 한다.
아마도 모든 문제는 인간의 터무니없는 욕망을 충족해줄 자원이 제한적이라는 데 있는 듯하다.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을 요약하면 ‘만족(행복)= 소비/욕망’이 되겠다. ‘100(소비)/ 100(욕망)’이면 1의 만족을 얻는다. 그런데 욕망은 100인 채 소비가 10이 되면 만족은 0.1이 돼버린다. 너무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반대로 현재 상태의 소비를 유지하고 욕망을 10으로 줄이면 만족(행복)은 10배로 늘어난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소비할 수 있는 것들은 점점 줄어드는데 욕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기만 한다. 지금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모든 불행의 출발점이다.
문득 괴테(Goethe)의 「파우스트(Faust)」가 떠오른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현자(賢者) 파우스트에게 네가 욕망하는 이 세상의 모든 지식과 영광, 부와 쾌락을 주겠다고 유혹한다. 단, 조건이 있다. 아무리 만족스러워도 “시간이여 멈추어라. 너(현재)는 너무나 아름답도다”라는 말을 하는 순간 파우스트의 영혼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어느 순간에 이르러 현재에 만족하고 그 금지된 말을 뱉는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만족이란 보통 인간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적어도 파우스트쯤 되는 현자에게는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에 이런 묘한 조건을 걸었던 모양이다. 메피스토펠레스가 ‘너 딱 걸렸어’하고 파우스트의 영혼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순간 천사들이 나타나 지옥으로 끌려가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구원한다. 현재에 만족하면 천사들에게 구원받아 마땅하다.
어쩌면 우리도 이쯤에서 “시간이여 멈추어라. 너(현재)는 너무나 아름답도다”고 현재에 만족하고 멈춰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 파우스트같은 현자가 되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니 답답한 일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