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 주인공 아만다(줄리아 로버츠 분)와 집주인인 조지의 딸 루스는 첫 만남에서부터 앙숙이다. ‘인간혐오자’들의 만남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흑인인 조지와 루스 부녀父女는 맨해튼의 모든 ‘연결’이 끊기고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자 주말 이틀 동안 아만다 가족에게 임대한 롱아일랜드 자신의 전원주택을 찾아와 ‘하룻밤’을 부탁한다.
![탄핵정국에서 각 진영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더스쿠프|뉴시스]](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209/art_17407034084712_03f911.jpg)
아만다는 조지와 루스 부녀를 보자마자 ‘흑인혐오증’까지 더해진 ‘인간혐오증’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점잖은 교양인이자 어느 정도 ‘박애 정신’을 함양한 조지는 아만다의 선 넘는 무도와 무례에도 끝까지 ‘젠틀함’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막 대학을 졸업하고도 질풍노도기를 아직 통과하지 못한 듯한 루스는 흑인이란 이유로 부당한 의심을 보내고 무례하게 구는 아만다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교양 있는 아버지 조지가 겨우 달래서 하룻밤을 지낸다. 다음날 아침부터 아만다 못지않게 인간을 혐오하는 루스는 아만다에게 작심한 듯 무례한 태도와 말들을 쏟아낸다. 두 인간혐오자의 본격적인 충돌이 시작된다. 보기에 아슬아슬하다.
그러던 중, 초연결사회의 붕괴가 가속화하면서 아만다의 아들 아치의 두통과 구역질이 심해진다. 이빨까지 하나둘 빠지는 이상증세도 심각해진다. 이 와중에 그야말로 하늘이 두 쪽 나도 드라마 ‘프렌즈(Friends)’ 최종회는 봐야만 한다는 아만다의 13살짜리 딸 로즈가 가출을 해버린다.
아마도 프렌즈를 볼 수 있는 곳을 찾아 무작정 집을 나간 모양이다. 설상가상이다. 아만다의 남편 클레이와 조지는 이웃에게서 아치의 치료약을 구하러 나서고, 조지의 딸 루스는 아만다와 로즈를 찾아 숲속을 헤맨다. 아만다와 루스는 인간을 혐오하는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불편한 동행의 장면들을 보여준다.
# 장면1 = 루스는 당연히 짜증이 난다. 재난 속에 또 다른 재난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 아만다 부부의 자식들인 아치와 로즈다. 그런데도 아만다는 루스에게 미안한 기색도 없이 뻔뻔하고 무례한 태도를 보인다. 마침내 숲속 외딴 헛간에서 아만다를 향한 루스의 분노가 폭발한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항상 날이 서 있고 화가 나 있는가. 그래서 얻은 게 무엇인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내 입장을 배려하는 태도는 눈곱만큼도 없는가.” 그제야 움찔한 아만다가 쉽게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한다. 루스의 시선을 피해 창밖을 내다보면서 인간혐오자의 ‘자기 변론’만 늘어놓는다.
![영화 속 아만다와 루스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서로를 돕는다.[사진|더스쿠프 포토]](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209/art_17407034081515_f8eaed.jpg)
“내가 왜 이러냐고. 나는 광고마케터를 하면서 사람들을 연구했다. 사람의 속마음을 알아야 거짓말도 잘할 수 있고, 그들에게 쓸데없는 물건도 팔아먹을 수 있으니까… 내가 알게 된 것은 인간들은 서로 이용해 먹을 생각만 하고, ‘인간은 끔찍한 존재’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저 아닌 척하고 남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런 위선도 혐오스럽다.”
아만다는 자연계 모든 생명체들의 등골을 빨아먹고 멸종시켜가며 살면서 ‘종이 빨대나 동물복지 제품 소비 따위로 가장 의식 있고 개념 있는 척하면서 죄책감도 없이 살아가는 인간’들을 그 위선의 예로 든다.
그 말은 곧 아만다가 왜 자신을 돕는답시고 함께 로즈를 찾아나선 루스에게 전혀 감사한 마음이 들지 않는지를 설명해준다. 루스가 자신과 함께하는 것 역시 진심이 아닌 위선과 가식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감사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아만다를 공격하던 루스가 움찔하고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다. 자신이 아만다와 함께 로즈를 찾아나선 것도 진심이 아닌 위선과 가식이었음을 인정한다. 루스는 아만다의 말에 모두 동의하면서 자신도 아만다와 똑같은 인간혐오자임을 커밍아웃한다. 슬픈 표정으로 ‘사족’을 하나 붙인다. “그래도 인간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인간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 장면2 = 아만다는 루스를 헛간에 남겨두고 혼자 로즈를 찾아 다시 헛간을 나선다. 루스는 자신이 아만다를 돕는 척하는 것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들킨 이상 다시 아만다를 따라 로즈 찾겠다고 나서는 게 ‘뻘쭘’했는지 엉거주춤하게 헛간에 남는다.
아만다가 헛간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백마리의 사슴떼가 헛간을 에워싸고 홀로 남은 루스를 위협한다. 루스는 조여오는 ‘무시무시한’ 포위망에 공포에 질려 얼어붙는다. 숲속 언덕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아만다는 망설인다. 인간혐오자인 자기다운 선택은 모른 척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 들은 ‘그래도 의지할 것은 인간밖에 없다’는 루스의 말이 자꾸 떠오르는 듯 망설인다. 결국 언덕을 달려 내려와 사슴떼를 향해 팔을 휘두르고 소리를 지른다. 그제야 루스도 용기를 내어 함께 팔을 휘두르고 소리를 질러 사슴 떼를 쫓는 데 성공한다. 사슴떼가 흩어지고 인간을 그토록 혐오한다는 아만다와 루스는 서로를 안아준다.
# 장면3 = 사슴떼를 쫓아내고 아만다는 다시 로즈를 찾아 숲속으로 발걸음을 뗀다. 아만다가 얼마나 절박한 심정인지, 그리고 아만다에게도 자신이 의지가 된다는 것을 루스도 알지만, 빨리 집에 돌아가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왔는지부터 확인하고 싶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기는 쉽지 않다.
![상호불신과 상호혐오로 광화문과 여의도가 화염에 휩싸이는 듯하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209/art_1740703407832_44a309.jpg)
그렇게 몸을 돌려 집으로 향하는 순간, 둔중한 폭음이 들리면서 멀리 보이는 맨해튼이 화염에 휩싸인다. 그 자리에 얼어붙은 루스 옆에 아만다가 다가와 아무 말 없이 루스의 손을 꼭 잡는다. 루스의 말이 옳았다. 아무리 인간을 혐오해도 절박한 상황에서 의지할 것은 인간밖에 없다.
불타는 맨해튼은 인간들끼리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혐오하는 사회의 필연적인 종말을 상징하는 듯하다. 우리사회도 상호불신과 상호혐오로 광화문과 여의도가 화염에 휩싸이는 듯하다.
우리도 영화 속 아만다와 루스가 ‘외적’인 사슴떼의 공격 앞에서 비로소 단결하고 협력했듯이, 우리도 북한군이 내려오고 일본 자위대가 바다 건너 들이닥치면 그제야 ‘동지’가 될 수 있을까.
영화가 보여주는 서로를 향한 불신과 혐오가 창궐한 미국사회의 전면적인 붕괴는 그것을 막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 같다. 우리사회도 혹시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닐지 불안하다. 아만다와 루스처럼 불타는 맨해튼을 바라보면서 뒤늦게 서로의 손을 꼭 잡아봐야 아무 소용 없을 듯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